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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성문(城門) 
 
도성(都城) · 산성(山城) · 읍성(邑城) 등에 속하여 있는 모든 문을 말한다. 대부분 조선시대의 것이 남아 있고 그 이전 것은 유적만 남아 있다. 그 중 서울 한양도성(사적, 1963년 지정)은 도성의 좋은 예로서 동서남북 사방에 문이 있는데, 동쪽에는 동대문, 서쪽에는 서대문, 남쪽에는 남대문, 북쪽에는 숙정문(肅靖門)이 있고, 다시 그 사이인 동북쪽에 혜화문, 서북쪽에 창의문(彰義門), 동남쪽에 광희문, 서남쪽에 소의문(昭義門)이라 하여 모두 8개의 크고 작은 문이 있다.
 
북문인 숙정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홍예 위에 목조문루(木造門樓)를 올린 중층문의 성격을 취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동대문과 남대문은 목조문루가 중층을 이루고 있어 밑에서부터 3중층문으로 되어 있으며, 특히 동대문은 옹성(甕城 : 성문의 앞을 가리어 빙 둘러쳐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작은 성)을 두른 점이 특이하다. 또, 남대문은 조선 초기 다포양식의 문으로서 가장 귀중한 자료의 하나이다.
 
* 다포양식 : 공포(지붕과 기둥 사이에서 지붕의 하중을 기둥으로 전달하고, 처마도 지지)를 기둥 사이에도 배열
 
서울성곽 외에 도성문의 좋은 예는 정조 때 세워진 수원 화성(사적, 1963년 지정)의 문으로 남쪽에 팔달문(八達門), 북쪽에 장안문(長安門)이 있는데, 밑에는 돌로 된 홍예 위에 중층의 누문을 올려서 남대문 · 동대문과 같이 세웠고, 또 문밖에는 전축(甎築)의 옹성을 쌓았는데 옹성은 평면형태가 반원형을 이루고 있다. 또, 이 옹성 가운데는 옹성문을 두고 있으며, 이 위에 여장(女墻 : 성위에 낮게 쌓은 담)과 오성지(五星池)가 있음이 특징이다.
 
* 전축(甎築) : 벽돌 축조
* 여장(女墻 : 성위에 낮게 쌓은 담) : 성가퀴. 수비병 보호 엄폐. 여장의 틈새(타구), 총구(총안)를 통해 공격
* 오성지(五星池) : 성문 위 소방용 5개 구멍
 
이들 성문은 동대문이나 남대문과 같이 다포양식의 우진각 지붕을 하고 있으며, 모두 5칸문루를 가진 큰 규모의 성문이다. 또, 동문으로 창룡문(蒼龍門)이 있고 서문으로 화서문(華西門)이 있는데, 이들은 돌로 된 홍예 위에 단층의 목조루를 올려세운 문이다.
 
* 우진각 지붕 : 건물의 네 면(앞, 뒤, 양 옆) 모두에 지붕 경사면이 있는 지붕
 
여기에도 옹성이 둘러져 있다. 이 성에는 이 밖에도 암문(暗門)(주6)이 있어 성내 출입의 편리와 전략적 기능을 겸하고 있으며, 하천에는 수문(水門)을 돌홍예로 잘 쌓아놓고 있다.
 
* 주6) 암문(暗門) : 성벽에 누(樓) 없이 만들어 놓은 문. 적의 눈에 띄지 아니하는 곳에 만들어서 평소에는 돌로 막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에 비상구로 사용하였다.
 
이상의 예로 보아 도성에는 4대문을 사방에 두는 것이 기본이며, 필요에 따라 사이에 샛문이나 암문을 두었고, 도성이 석성(石城)인 경우 주요 성문은 돌홍예를 쌓아 목조루의 구조를 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돌홍예 : 돌 아치
 
이 때 홍예구(虹霓口)에는 두꺼운 널판문을 달고 경우에 따라 외부에는 철갑편(鐵甲片)을 붙여놓아 적의 화살이나 총탄에 견디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문을 철갑문이라 부르기도 한다.
 
* 홍예구(虹霓口) : 아치형 성문 통로
* 철갑편(鐵甲片) : 작은 철제 조각
 
산성도 도성의 경우와 같이 4방문을 두었는데, 일반적으로 산세가 험하거나 공사조건이 좋지 않아 도성이나 읍성보다 문의 규모나 조성기술이 떨어지는 예가 많다.
 
산성의 예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많은 것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 나타나는 문의 실존유구는 거의 조선시대의 것이다. 석성의 경우 거의가 돌홍예를 짜 목조루를 올리든지 또는 일반적으로 누 없는 암문을 만들고 있다.
 
* 유구 : 시설 흔적  /  유적 = 유구+유물
 
공주의 공산성(사적, 1963년 지정)이나 경주 월성(月城) 등 발굴에 의하여 밝혀진 백제 · 신라의 토성은 홍예가 아니고 목조누문이어서 고구려 벽화고분에 보이는 성곽도(城廓圖)와 같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산성으로서 현재 성문이 남아 있는 예는 남한산성(사적, 1963년 지정) · 강화산성(사적, 1964년 지정) · 문경 관문성(關門城) · 공주 공산성 등이 있지만, 목조누문은 거의가 조선시대에 세워진 것이다.
 
* 문경 관문성 : https://dapsa.kr/blog/?p=50751 
 
읍성의 경우도 동서남북에 4대문을 두고 있다. 현존 유구인 해미읍성(海美邑城) · 고창읍성(高敞邑城) 등의 유적에서 볼 수 있고, 또 조선시대에 그려진 성곽도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중 경주읍성은 현재 유구로는 성곽 일부만 남아 있고 조선 말기에 그려진 성곽도에는 사방에 4문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는데, 여기에서는 돌홍예를 짜 그 위에 목조누문을 올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해미읍성도 4방에 문이 있었으나 현재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진남문(鎭南門)만이 남아 있다. 이 문은 외부에 홍예를 두르고 내부에는 방형의 출입구를 돌로 짜 문짝을 달게 되어 있어 내외에 홍예를 짠 것과는 다르다.
 
* 해미읍성 진남문(鎭南門) : https://dapsa.kr/blog/?p=67006 
 
이러한 예는 다른 산성에서도 가끔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명 · 청대의 궁전 오문(午門)(주7)의 예로 반원호형(半圓弧形)의 홍예 대신 방형의 홍예를 틀고 있는데 이 방형의 홍예는 예로부터 대륙에서 사용되던 것으로 추측된다.
 
* 주7) 오문(午門) : 중국 명나라·청나라 때의 황궁인 자금성의 정문
* 방형 홍예 : 장대석을 수평으로 걸쳐 무게를 분산 https://ko.wikipedia.org/wiki/%EC%98%A4%EB%AC%B8_(%EC%9E%90%EA%B8%88%EC%84%B1) 
 
우리나라의 중층의 홍예성문은 그 내측의 양옆에 문루로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을 마련하고 있으며, 위에서는 무사석(武沙石)(주8)에 맞추어 여장을 둘러쌓고 양측 계단이 닿는 부분, 출입하는 협문을 목조 또는 전축으로 만들어 판문을 단다.
 
* 주8) 무사석(武沙石) : 네모반듯하게 다듬어 성벽이나 담벼락에 높이 쌓아 올린 돌.
* 판문 : 두꺼운 나무 판재로 만든 문짝
 
누바닥은 중앙부에는 마루를 2중으로 깔아 그 밑이 바로 돌로 쌓은 홍예의 내부널판자가 되도록 하고 있고, 이 널판자에는 밑에서 용틀임의 그림을 단청으로 그려 문의 위엄을 더 한층 높여 주고 있다.
 
또, 여장 안으로 들어오는 빗물을 내보내기 위하여 홍예석 위쪽 양옆에는 석루조(石漏槽 : 돌로 만든 홈통)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석루조(石漏槽 : 돌로 만든 홈통) : 누조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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