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이 너무 길어서 나눠서 올립니다.
홍범도 생애와 독립전쟁
독립기념관 > 간행물 > 독립운동가열전 > 홍범도 생애와 독립전쟁
제4장 독립군의 형성과 간도에서의 독립전쟁
6. 독립군의 근거지 이동
홍범도는 7월 중∼하순경 임시정부 특파원 이용(李鏞)의 중재로 북간도와 러시아 지역의 모든 독립군 부대들을 3개 단위로 통합하는 편성작업에 동참하였다. 이 때 동도군정서(東道軍政暑)·동도독군부(東道督軍府)·동도파견부(東道派遣部)가 결성되었다. 동도군정서는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를 개편한 것이었고 동도파견부는 러시아 지역 의용병(빨치산) 및 독립군을 통합한 것이었다. 홍범도는 대한북로독군부 북로제1군사령부장에 이어 동도독군부의 사령관이 되었는데, 의군단(義軍團)과 신민단 등 독립군 단체를 통합한 조직이었다. 동도독군부의 편제는 4개 대대와 홍범도 직속 2개 중대로 되어 있었다.
* 이용(李鏞) : 이종승(李鍾乘). 헤이그 특사 이준의 아들. 중국 항주/항저우 육사 포병과 졸업. 연해주 한인사회당. 임정 동로사령관으로 북간도 파견. 대한의용군사회 사령관. 고려공산당, 조선공산당 참여. 북한 정권에 참여. https://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95300490&localCode=cis
* 북로군정서 -> 동로군정서 : 대한군정서. 북간도 서일 등이 대종교 중심(중광단)으로 1919년 결성. 김좌진, 이장녕, 김규식 등.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왕칭/왕청현(汪淸县/縣)의 시다포스리핑/서대파십리평(西大坡十里坪) 근거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657
*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 --> 동도독군부 : 1920년 대한독립군(홍범도), 대한국민군/국민회군(안무), 군무도독부(최진동), 신민단(김규면) 등 독립군 연합 부대 https://contents.history.go.kr/front/nh/view.do?levelId=nh_048_0040_0010_0020_0010_0040
* 동도파견부 : 연해주 지역의 독립군을 통합
제1대대는 홍범도군 약간 및 국민회군에 허근(許根)이 이끄는 의군단이 혼성으로 구성되었고 대대장은 허근이었다. 허근은 본명이 허재욱(許在旭)으로 한말 군대에 있으면서 영장(營長)을 지냈기 때문에 사람들이 ‘허영장’이라고 불렀다. 제2대대 역시 국민회군과 의군단이 혼합 편성되었고 부대장은 방우룡(方雨龍)이었다. 제3대대는 최진동의 대원으로 이루어졌고 최진동이 대대장이었다. 제4대대는 신민단원 2개 중대로 편성되었다. 대장은 김성(金星)이었다.
* 허근(許根) : 허재욱(許在旭). 허은, 허재근. 홍범도, 차도선 등과 함께 의병활동. 의군단 결사대장.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활동 https://search.i815.or.kr/dictionary/detail/print.do?id=16549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3031
* 의군단 : 의군산포대. 산포대(사냥꾼) 출신 의병이 핵심. 1920년대 홍범도, 허근 등이 조직했던 독립운동단체.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왕칭/왕청현(汪淸县/縣) 춘양진(春阳镇) 근거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3133
* 방우룡(方雨龍) : 방위룡. 간도국민회의 활동. 천주교 중심의 의민단 창립 주도 https://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02662&localCode=krcn
* 최진동(崔振東) : 일제강점기 때, 옌벤/연변 왕칭/왕청현에서 독군부를 조직, 홍범도와 연합작전. 봉오동전투에서 사령관, 으로 활약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자유시참변 이후, 자유시/흑하/스보보드니Свободный/Svobodny)를 중심으로 활동 https://namu.wiki/w/%EC%B5%9C%EC%A7%84%EB%8F%99
* 신민단 : 신민회. 대한신민회. 대한신민단. 1919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규면 등이 조직. 완루구, 어랑촌전투 참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5113
* 김성(金星) : 중광단 토대 위에 1919년 무장단체 정의단 조직. 북로군정서(김좌진) 조직. https://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02665&localCode=krcn
각 독립군 부대들은 동도독군부에 참여하여 공동 행동을 취하기로 했지만 이 조직은 얼마 가지 않아 무너지고 말았다. 즉 그 해 8월 초순 의란구에서 독립운동 단체 연합대회를 연 결과 최진동과 홍범도의 의견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현재 정확한 내막은 밝힐 수 없으나 최진동이 홍범도 아래 직책에 배치된 것이 하나의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외에 투쟁의 방법론이나 근거지 이동 방향에 대해서도 의견이 달랐을 것이다. 결국 간도 지역 독립군 부대의 재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진동 부대와는 갈라졌지만 홍범도 독립군 부대는 안무의 국민회군, 허근이 이끄는 의군단, 신민단 부대 등과 계속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 연길현 의란구(依蘭溝) :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옌지/연길시(延吉市) 이란/의란진(依兰镇/依蘭鎮) https://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00145&localCode=krcn https://maps.app.goo.gl/McwGfXKxCtAwK3tH8
1920년 8월 7·8일경 홍범도는 그 동안 머물던 의란구를 떠나 허근의 의군단 부대와 같이 북쪽의 명월구(明月溝)에 가서 약 한달간 있었다. 이 무렵 홍범도 부대는 안무 군대를 포함해서 약 550명 정도였다.
* 명월구(明月溝) : 지린/길림 옌벤/연번 안투/안도현(安图县/安圖縣) 밍웨이/명월진(明月镇/鎭) https://maps.app.goo.gl/fZqxxTshqRQ4vZzf6
* 안무(安武) : 안병호. 일제강점기 때, 한국군 진위대(고종 때 근대적 지방군) 교련관, 대한국민회군 사령관 등을 역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4725
이 무렵 홍범도에게는 개인적으로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 즉 작은 아들 용환(홍용환)이 7월 중순 훈춘에서 중국군에게 체포되어 한 달 이상이나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용환(홍용환)은 조을손(曺乙孫)이란 사람이 중국인 살해 혐의로 체포될 때 옆에 있다가 무고하게도 같이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용환(홍용환)은 나중에 대한국민회장 구춘선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구출되지만 이 문제로 범도(홍범도)도 애를 많이 태워야 했다.
* 홍용환 : 홍범도의 둘째아들. 대한독립군(홍범도) 활동. 건국훈장 애족장 https://namu.wiki/w/%ED%99%8D%EC%9A%A9%ED%99%98
* 대한국민회 : 간도국민회(間島國民會). 간도국민회의. 국민회. 1914년 이동휘, 구춘선 등과 옌벤/연변 롱징/용정에서 조직했던 독립운동단체. 간도지역 자치단체를 통합하고, 최진동, 홍범도 부대 등을 통합, 지원. 조선독립기성회 - 대한국민회 - 간도대한국민회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0514 대한국민회군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8013
* 구춘선(具春先) : 조선말 궁궐수비장 출신. 간민교육회. 대한국민회 활동. 무장독립운동에 참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6076
봉오동 전투 직후 홍범도를 본 적이 있던 홍상표(洪相杓)는『간도독립 운동소사』에서 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홍상표(洪相杓) : 3.13운동 (옌벤/연변 룽징/용정 만세운동) 참가. 간도독립 운동소사 저술.
“홍범도 장군은 50여세 가량의 중키쯤 되는 뚱뚱한 몸집에 철홍색 얼굴이 빛나는 장군이었다. 그는 언제나 계급장도 없는 일개 졸병과 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으며 지휘도나 권총을 차지 않았고 장총 두 자루를 휴대하였다. 그는 일상 이렇게 말했다. 지휘도나 권총을 왜 차는가? 그것으로 왜놈을 잡는가? 제 동료나 죽이는데 쓰는것이지. 이런 장총이라야 왜놈을 죽여. 그는 이렇게 말할 때면 버릇처럼 장총을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그의 부관의 말에 의하면 장군의 신품 38식 총은 봉옷골 전투에서 노획한 전리품인데 장군이 친히 골라서 두 자루를 가진 것이라고 한다. 그의 사격술은 유명하여 빈 병을 높이 던져 놓고 좌우로 마음대로 명중시켰다고 한다.”
* 봉옷골 전투 : 봉오동 전투
홍범도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사격술에 관해서는 이런 일화가 전해온다. 간도의 어느 마을 사람들이 그의 ‘백발백중’ 사격 솜씨를 한번 보고 싶어 했다. 그러자 그는 약 30미터나 되는 거리의 말뚝에 빈 병의 주둥이를 앞으로 해서 굽혀 놨다. 술이 얼근한 홍범도는 한 손으로 오연발 총을 들어 개머리판을 어깨에 붙이자마자 발사했다. “땅-” 총알이 병의 주둥이로 들어가서 바닥을 꿰뚫었다. “한번 더!”하고 사람들이 외쳤다. 더 쐈다. 틀림없는 백발백중이었다. 간도 지방 동포들에 퍼진 홍범도에 대한 신뢰와 명성은 이런 일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간도 지역의 각 독립운동 단체들이 서로의 연합을 모색하며 군사력의 증강에 열중하고 있을 때 일제는 독립군에 대한 대규모 ‘토벌’을 위한 대책을 두 가지 방향에서 추진하였다. 그 하나는 만주의 군벌 장작림(張作霖)에게 압력을 가하여 일본군의 지도와 감시하에 중국군을 출동시켜 독립군을 ‘토벌’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7월 하순부터 세우기 시작한 ‘간도지방 불령선인 초토계획’에 의하여 일본군이 직접 출동하여 ‘토벌’하는 것이었다.
* 장작림(張作霖) : 장쭤린(张作霖). 중화민국 봉천군벌 초대 수장. 일본 관동군에 의해 살해 당함. 일본을 견제한 반면, 한국 독립군에 대해서는 탄압
* 불령선인(不逞鮮人) 1910년 일제가 조선인 중 자신들의 명령 및 지도를 따르지 않고 저항 및 반항하는 조선인들을 지목하여 만든 용어. (직역: 원한을 품고 난이나 소요를 일으키는 조선인) https://namu.wiki/w/%EB%B6%88%EB%A0%B9%EC%84%A0%EC%9D%B8
* 초토 : 불에 탄 것처럼 황폐해지고 못 쓰게 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간도지역 불령선인 초토계획 : 1919-1920년 만주 무장투쟁이 활발해지자 일제 조선주둔군이 만주진입을 위해 마적단을 사주 훈춘시를 약탈하고, 일본시설을 공격하는 훈춘사건을 일으켜, 일본신민 보호 명분으로 일본군 파견. 한인 거주지 철저하게 파괴한 간도참변(경신참변) 독립군부대는 북만주로 이동.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635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i400450&code=kc_age_40
7월 하순 일제의 압력을 받은 장작림은 그에 굴복하고 일본군 파견 장교의 감시 하에 중국군을 출동시켜 독립군을 ‘토벌’하겠다고 7월 24일 일본군에 통고하였다. 일본군이 8월 15일 이에 동의하자 중국 측은 연변의 연길 주둔 보병 제1단장 맹부덕(孟富德)을 사령관으로 하여 중국군을 출동시키게 되었다. 그러나 맹부덕을 비롯한 중국군 장교들 가운데는 독립군 공격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으며, 중국 관헌 중에도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동정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 연변 연길 :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옌지/연길시 https://maps.app.goo.gl/rTpSjh2sboZrWL84A
* 맹부덕(孟富德) : 멍푸더. 1919년 옌벤/연변 룽징/용정 3.13 반일시위운동(만세운동) 발포. 1920년 훈춘사건으로 일제의 강요로 토벌대장을 맡았으나, 독립운동단체와 맹부덕 독립군 토벌대 사이 비밀협상으로 퇴로 묵인. https://db.history.go.kr/modern/level.do?levelId=hdsr_006_0020_0010_0030
한편 독립운동 단체들도 이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고 중국군 측과 비밀리에 교섭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대한국민회 등 독립운동 단체와 중국군 사이에는 비밀 타협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타협의 요지는 독립군이 중국 측의 입장을 고려하여 일본 측의 눈에 띄지 않는 산림지대로 본거지를 옮기고, 중국군은 그것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독립군 부 대들은 8월 하순부터 홍범도 부대를 시작으로 본거지 이동을 단행하게 되었다.
이 같은 ‘대책’과 함께 일제는 위에서 말한 ‘간도지역 불령선인 초토계획’을 8월에 확정짓고 9월 2일부터는 일본군 관련 부대에 출동준비를 계획하도록 명령했다. 일제는 중국군 측이 독립군을 ‘토벌’할 의지도 없고 그럴만한 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맹부덕의 중국군은 1920년 8월 28일부터 9월 27일까지 한 달간 독립군을 토벌한다 했지만 출동한 뒤 거의 아무런 ‘토벌’의 실적이 없었고 독립군의 근거지 이동의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었다. 이미 독립군 측과 비밀리에 내통하고 있었으므로 당연한 결과였다. 이에 따라 중국군을 동원하여 독립군을 ‘토벌’하려던 일본군의 계획은 완전히 실패하였고 중국군에 파견되었던 정보장교 사이또(齋藤恒) 대좌는 일본군이 직접 주체가 되어 나서지 않으면 독립군의 ‘토벌’은 불가능하다는 보고서를 일본군 사령부에 제출하고 임지로 돌아갔다.
* 사이또(齋藤恒) : 사이토 히사시. 1925년 관동군 참모장. https://ja.wikipedia.org/wiki/%E6%96%8E%E8%97%A4%E6%81%92
홍범도는 휘하 병력을 데리고 8월 하순경 명월구를 떠나 무산간도라고 부르던 백두산 기슭의 두도구·이도구 방면으로 향했다. 이동 도중인 9월 초순에 러시아에서 그 동안의 내란이 평정되어 볼셰비키파가 승리하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정권이 성립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범도(홍범도)는 자세한 내용은 몰랐지만 그에 대해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포들이 사는 연해주 지역은 이제 제정 러시아 당시의 온갖 차별과 압박에서 벗어나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실 혁명정권은 출발 당초부터 차별의 일소(一掃)를 내세웠으며, 짜르 제정시대 억압의 폐지, 러시아 안의 여러 소수민족에 대한 집회·결사·언론의 자유 등을 선포하였었다. 시베리아에 대한 혁명정부의 영향력은 초기에는 약했지만 혁명의 와중이라는 혼란이 오히려 제정 러시아 시대의 여러 가지 압박을 약화시켰으므로 한인 민족해방운동에는 유리한 점이 많았다. 특히 항일운동의 차원에서 그러했다.
* 두도구 :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허룽/화룡시(和龙/和龍市) 토우다오우/두도진(头道镇/頭道鎮) https://maps.app.goo.gl/NDHs7K9HqCQ5Z3kC8
* 이도구 : 청산리전투 현장.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허룽/화룡시(和龙/和龍市) 얼다오/이도촌(二道村) https://maps.app.goo.gl/MuVSBJ7GtkLGyy877
소비에트 혁명정권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동안 홍범도와 함께 싸워왔던 러시아 적군 출신 장교 3인은 이제 러시아에 돌아가려고 했다. 그래서 범도(홍범도)는 아쉽지만 30명의 호위병을 딸려서 세 명의 적군 장교를 돌려보냈다. 독립군 호송병들은 이들을 호송하던 도중 9월 8일 연길현 장인강(長仁江) 구룡평(九龍坪)에서 중국군과 충돌하여 중국군 몇 명에 부상을 입히는 사건을 빚기도 했다.
* 연길현 구룡평(九龍坪) :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옌지/연길시(延吉市) 지우룽핑(九龙坪) https://maps.app.goo.gl/i7yd5qK1FTvXwWLM9
* 장인강(長仁江) : 창런허(长仁河). 두터우/두도진 근처에서 하이란/해란강(海兰江/海蘭江) 등과 합류 https://maps.app.goo.gl/Pam8ksVvGmMPt2YC7
9월 하순 약 300명의 홍범도 독립군 부대는 함북 무산의 건너편인 화룡현 이도구 어랑촌(漁郞村) 부근 삼림지대에 주둔하며 국내 진입의 기회를 엿보게 되었다. 10월 초까지는 국민회의 안무 부대 약 250명, 한민회(韓民會) 부대 약 200명, 신민단 약 200명 등이 홍범도 부대 주둔지 근처로 이동해 왔다. 한편 서일·김좌진 등이 주도하는 북로군정서 부대는 사관연 성소 생도 졸업식을 9월 12일 마쳤다. 그러고 나서 이 달 중순에 일부 병력을 나자구 등에 배치한 뒤 약 600명의 병력으로 왕청현 서대파(西大坡)의 근거지를 출발하여 서쪽으로 이동을 개시했다. 김좌진 독립군 부대가 청산리 방면으로 이동하게 된 배경에는 그곳에 대종교 신도들이 있어서 일본군을 상대로 싸우는데 유리한 여건을 갖췄다는 한 요인이 있었다. 이렇게 대부분의 독립군 부대가 청산리 부근으로 이동했던 반면에 최진동 부대는 중·러(중국·러시아) 국경지대인 나자구 방면으로 향했다.
* 화룡현 이도구 어랑촌(漁郞村) :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허룽/화룡시(和龙/和龍市) 시청진/서성진(西城镇/鎭) 위랑/어랑촌(渔浪/漁浪村) https://maps.app.goo.gl/3c6wAAh482Ax98waA https://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12035&localCode=krcn
* 한민회(韓民會) : 한민단(韓民團)·한민회군(韓民會軍). 3.1운동 후 이광택(李光澤)·황병길(黃丙吉)을 중심으로 혼춘(珲春/琿春市)에서 조직. 홍범도 지휘체계 하 편성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1625
* 나자구(羅子溝) : 지린/길림성(吉林省) 옌벤/연변조선족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 왕칭/왕청현(汪清县/汪淸縣) 뤄쯔거우/나자구진(罗子沟镇/羅子溝鎭) https://j.map.baidu.com/2d/r4z https://maps.app.goo.gl/KBMGH4MLQWMrx1FQ7
* 왕청현 서대파(西大坡) :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왕칭/왕청현(汪淸县/縣) 시다포/서대파(西大坡) https://maps.app.goo.gl/Tqt2eS2sgEcrieH79
목록
'근현대사 > 독립운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홍범도 생애와 독립전쟁 : 4-5 노두구(老頭溝) 전투 - 독립기념관 (0) | 2026.10.01 |
|---|---|
| 홍범도 생애와 독립전쟁 : 4-4-3 봉오동 대첩 - 독립기념관 (0) | 2026.09.29 |
| 참전 독립군이 그린 봉오동 전투圖 첫 공개 - 동아 (0) | 2026.09.27 |
| [영화 속 그곳] 봉오동 전투가 일어난 곳은 어디인가 - 연합 (0) | 2026.09.27 |
| 봉오동은 '북간도 제1의 독립군 양성 군사기지'였다 - 오마이뉴스 (0) | 2026.09.2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