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MB 비판한 개인·단체 자금줄 끊고 ‘정부 지지’ 압력 - 경향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4060000005&code=940202

국정원, MB 비판한 개인·단체 자금줄 끊고 ‘정부 지지’ 압력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일반 국내 정보 수집 업무금지 위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이어 국가정보원도 김제동·김미화씨를 사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불법사찰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없애겠다고 한 정치사찰이 현 정부 들어 부활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은 불법이어서 앞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끊임없이 문제가 돼왔다. 사찰 대상은 민간인과 시민단체, 국제기구 관계자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진행됐다. 정부에 비판적 시각을 가진 개인과 단체의 자금줄을 끊고, 정부 정책을 지지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등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과 흡사하다.

2009년 9월 박원순 서울시장(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은 국정원이 시민단체를 사찰하고 있다는 의혹을 폭로했다. 박 시장은 당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정원이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기업을 조사하고 후원 해지 압력을 넣고 있다”고 했다. 

 

언론장악 불법사찰 규탄 이명박 정권 들어 해직된 언론인과 전국언론노동조합 회원들이 5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언론장악 불법사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국가는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박 시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2심까지 모두 패소했다. 1·2심 재판부는 박 시장의 주장에 대해 각각 “진위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 “진실이라고 믿은 데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국정원의 사찰 여부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박 시장의 주장에 근거가 있음을 법원도 인정한 것이다.

2010년 5월에는 국정원 소유 차량이 방한한 프랭크 라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일행을 미행하며 캠코더로 촬영하는 모습이 발각돼 국제적 논란을 낳았다. 

2009년 12월에는 국정원 광주지부가 4대강 사업을 풍자한 설치미술 작품 ‘삽질 공화국’을 전시장에서 철거하도록 광주시에 압력을 행사해 전시가 한때 중단됐다. 2010년 2월에는 국정원 직원이 조계사에 시민단체들의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취소하라는 압력을 넣어 조계종에서 해당 국정원 직원의 중앙종무기관 출입금지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국정원의 ‘정치사찰’과 ‘정치개입’이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는 폭로도 있었다. 민간인 사찰 파문이 불거진 2010년 8월 지원관실 사찰 피해자인 남경필 의원에 이어 정태근·정두언 당시 한나라당 의원도 국정원의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두 의원은 “가족이 다니는 회사, 다녀간 술집까지 샅샅이 국정원에서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 들어 국정원 본연의 업무와 거리가 있는 언론·노동 관련 관계대책회의에 국정원 인사들이 수시로 참석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논란이 반복되면서 한동안 축소됐던 국정원의 초법적 국내 정보 수집이 재개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은 2005년 ‘미림팀’의 정·재계 인사 불법도청 파문이 불거진 이후 점차 축소돼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국정원의 정치사찰을 폐기하고 불법·월권이 없도록 하겠다”는 국정원 개혁방안을 밝혔다. “일체의 정치 개입성 임무에서 탈피한다”는 취지 아래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인사조치도 뒤따랐다. 현 정부도 2009년 말 국정원 조직을 개편했지만 국정원 2차장이 담당하는 국내 정보 수집 업무는 참여정부 때와 다르게 손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 활동을 보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국정원의 광범위한 국내 정보 수집은 법에서 규정한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국가정보원법 3조 1항은 정보 수집 활동의 범위를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 군사기밀, 형법 중 내란·외환의 죄와 군사기밀보호법,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에 관한 것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안보에 관련된 정보 수집’으로 활동이 제한돼 있는 것이다. 

하급심 법원의 판례도 민간기업의 사기·횡령 등 국가안보와 관련이 없는 범죄 혐의에 대한 국정원의 정보 수집 활동을 “직무범위를 벗어난 위법한 활동”으로 엄격히 해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