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여론조사 조작, 이럴 줄은 몰랐다
[서평] <락더보트> 선거의 숨은 비밀... 분노한다면 '투표'하라
12.04.08 09:54 ㅣ최종 업데이트 12.04.08 15:08  윤형준 (stonmantae)

또 시작이다. 지난 2일, KBS·MBC·SBS 방송 3사가 공동으로 시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격전지 60곳을 대상으로 시행한 여론조사인 만큼 오차범위 내의 접전이 전망되는 선거구가 많았지만, 조사 결과를 보니 새누리당 후보들이 예상 밖으로 선전하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그 순간의 '여론'일 뿐이다. 또, 방법에 따라 다르게 측정되는 '조사'일 뿐이다. 여론조사가 그대로 선거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미디어오늘>의 류정민 기자가 펴낸 <락더보트>(인카운터 펴냄)는 이러한 여론조사의 '실체'를 낱낱이 까보이는 책이다. 또, '대한민국 청춘을 위한 정치 공략집'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답게, 현실 정치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정치 공학을 재미있게 보여준다.
 
'20대 절반만 투표해도 세상이 바뀐다.' 책의 본문을 여는 첫 소제목이다. 책의 부제와 이 소제목을 연결하면 결국 저자의 목적의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48페이지짜리의 책이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한 가지, '투표하라'이다. 네 글자를 더 붙이면 '청년이여, 투표하라' 정도일까.
 
뻔하다. 얼마나 많은가, 투표를 종용하는 사람들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거 캠페인부터, 투표를 하면 세상이 바뀐다는 수많은 인터넷 기사까지. 그래서 책을 거꾸로 읽어보았다. '투표하라'는 책이 아닌, '누가 투표율을 낮추는가'에 관한 책으로. 그랬더니 더욱 흥미로웠다. 이 책에는 투표율을 낮추기 위한 '꼼수'가 낱낱이 드러나 있었다!
 
[누가 투표율을 낮추는가 ①] 언론, '여론조사'인가? '여론조작'인가?
 
▲ <락더보트> 책 표지 ⓒ 인카운터

첫번째로, 언론이다. 선거가 있을 때면, 주요 언론들은 앞다퉈 여론조사를 시행하고 이를 발표한다. 이 여론조사가 결과와 얼마나 맞아 떨어졌는지는 관심 없다. 결과와 일치한다면 좋은 것이고, 틀렸다면 마치 남의 일인 듯 '숨은 표'니, '바닥 민심'이니 하는 단어로 포장하면 그만이다. 문제는 이 여론조사가 단순히 '재미'가 아니라 실제로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향하게, 또는 향하지 않게 한다는 사실에 있다.
 
<락더보트>에 소개된 사례를 보자. 지난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 때, 방송 3사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민주당 한명숙 후보를 17.8%P 차로 앞설 것이라 발표했다. 민주당 지지자를 낙심시키기에 충분한 차이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어땠는가, 불과 0.6%P 차이에 불과했다. 결과론이지만 만약 여론조사에서 두 후보가 '접전'을 펼치는 양태가 나와 민주당 지지자들의 표가 결집되었다면 승자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권위 있는 언론이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공개되는 여론조사라면 유권자 입장에선 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책은 여론조사는 '합법적인 여론 조작'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실제 <조선일보>의 조사에 따르면 여론조사의 표본을 어떻게 선정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다. 10·26 보궐선거 당시 집 전화와 휴대전화가 모두 있는 시민은 주로 나경원 후보를 지지한 반면, 휴대전화만 있는 시민의 경우 큰 차이로 박원순 후보를 지지했다고 한다. 언론의 입맛(조사방법)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이 '꼼수'를 이용해 언론이 접전인 지역구를 이미 끝난 게임처럼 보도한다면? 얼마든지 투표율을 낮추는 '악역'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가 투표율을 낮추는가 ②] 정치권, 투표율 '못' 올리나? '안' 올리나?
 
▲ 역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 원자료 출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오마이뉴스

투표율을 낮추는 두번째 악역, 바로 '정치인'들이다. 이번 19대 총선에서 각 당의 공천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로 정당의 후보를 뽑는데 '여론조사'가 굉장히 많이 반영된다는 것. 그리고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여론조사를 인터넷, 또는 모바일 투표를 이용해 진행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비록 당내에서 이뤄지는 전자투표들이지만 이 역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감독 아래 진행된다. 즉,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총선·대선 등 공직자를 뽑는 선거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지난 10·26 지방선거 당시 일어났던 디도스 공격처럼, 실제 시행되려면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지만, 만약 전자투표가 도입된다면 투표율, 특히 청년투표율은 깜짝 놀랄 정도로 오를 것이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는 20개의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내, 투표용지가 지나치게 길어져 전산개표를 못한다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될 전망이다. 세계 최고의 IT강국이라는 나라에서 이게 무슨 희극인가. 이 책에 따르면 전자투표는 이미 관련 법 규정도 준비되어 있어, 얼마든지 시행할 수 있는 제도라고 한다. 남은 것은 정치권의 합의뿐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대답은 이 책에 단편적으로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투표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우려 섞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들은 투표율이 올라가는 것 자체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국민이 투표하지 않아야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는 논리가 황당하게도 느껴지지만 그것이 현실입니다. - <락더보트> 64~65쪽
 
▲ 2011년 4.27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투표장면. ⓒ 유성호

[누가 투표율을 낮추는가 ③] 유권자, 결국은 우리 문제다
 
뻔한 얘기긴 하지만, 낮은 투표율은 결국 우리의 문제다. 여론조사를 이용해 '꼼수'를 부리는 언론, 그리고 선거법 개정을 통해 투표율 제고를 꾀하려 하지 않는 정치권을 탓해봤자, 얻는 것은 없다.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유권자일 뿐이다.
 
지난 18대 총선은 역대 총선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46.1%. 선거권을 가진 국민의 절반도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대선은 어떤가. 17대 대선 투표율 63.1%에, 당선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득표율은 48.7%. 기권표가 대통령 당선자가 얻은 표보다 많은 상황.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누구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을까.
 
4·11 총선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5일부터는 총선 여론조사 공표도 금지됐다. 각종 네거티브 선거전과 민간인 불법 사찰 파문으로 정치 시계(視界)가 그야말로 제로(0)인 상황, 말 그대로 혼탁한 정치판이다. 정치판이 혼탁하고 더러울수록 정치혐오와 냉소가 판친다. <락더보트>는 이럴 때 스핀닥터(정치 홍보 전문가)와 여론조작이 판을 친다고 말하며 주의할 것을 당부한다.
 
프랑스의 스테판 에셀은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라며, <분노하라>는 책으로 프랑스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故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은 "2012년을 점령하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합법적으로 분노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2012년을 점령할 수 있는 방법. <락더보트>는 이 방법으로 "투표하라"를 제시한다. <락더보트>의 마지막 문장으로 이 짧은 서평을 끝맺는다.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 故 김근태

덧붙이는 글 | 윤형준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락더보트- 대한민국 청춘을 위한 정치 공략집>, 류정민 저, 인카운터 펴냄, 2012.03.25, 1만3500원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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