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장수왕~제21대 문자명왕 / A.D. 475~500년경, 고구려 최대 강역(영향권 포함)]


귀족들의 내부권력을 억제하기 위해 광개토태왕이 대대적 정벌을 꾀했다면, 장수왕은 귀족들의 소굴은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천도를 강행하여 귀족들의 세력을 억제하려 했다. 그 때문에 천도한 평양을 기점으로 백제와 신라 또한 압박하여 남쪽 국경을 아신만에서 영일만까지 확대했다. 또한 후연이 멸망하고 생겨난 북연이 북위 때문에 멸망위기에 놓이자 북연의 수도를 점령하고 북연을 멸망시켰다. 강대국 고구려를 상대로 최강대국 북위 또한 고구려와 화친을 꾀하였고 그 때문에 유목강대국 유연은 지두우 지역을 고구려와 분활지배 했다. 화남지방의 송나라(다음 왕조 제나라)또한 고구려와는 결코 적이 되려 하지 않았다. 
 
문자명왕때는 북위의 북경 변방을 습격했으나 취하지는 못했다. 어쨌건 북위는 이에 대해 트집을 잡지도 않았다. 중원이 남북으로 갈라져 힘이 분산되어 고구려를 쉽게 제어하지 못했을 수도 있으나 고구려의 국력이 그 만큼 강대하지 않았다면 중원 남북조와 결코 고구려는 대등한 서열에 위치하지 못했을 것이다.


출처 :  http://blog.daum.net/bywoon1227/16493723 
관련글 : 고구려의 역대 영토 변천사 - 운곡 
 http://tadream.tistory.com/3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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