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ookbang.dema.mil.kr/kdd/GisaView.jsp?menuCd=3004&menuSeq=12&kindSeq=1&writeDateChk=20120229 

<59>당태종 요택 도하
공병 앞세워 저승길 같은 늪지대 무혈입성
2012.02.29

강 수위도 크게 낮아져 일주일 만에 돌파 수나라 군사 해골 본 병사들 공포에 떨어


중국 요령성 요양시 외곽에 태자하가 흐르고 있다. 이 부근에 고구려의 요동성이 있었다.

645년 5월 3일 당태종과 그 휘하의 군대는 요택(遼澤) 서안에 이르렀다. 회원진에서 요택을 건너 고구려의 요동성으로 곧장 가는 중로(中路)였다. 수양제가 고구려를 정벌할 때 부교를 놓고 요동성을 공격한 코스다. 질러가는 대가도 있었다. 그곳은 북쪽이나 남쪽에 비해 가장 아득히 넓은 늪, 200리에 달하는 광활한 소택지가 펼쳐져 있었다. 

후대에 그곳을 지나간 어떤 사람은 그 풍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평원의 광야에 갈대가 하늘 끝까지 이어져 있다. 바라보니 바다와 같았다. 수백 리 안에 산이라곤 보이지 않고 주먹만한 돌과 막대기 같은 나무 한 그루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다만 하늘을 가릴 듯한 모기떼들이 욱실거리며 달려들었다. 당나귀도 온몸에 피를 흘리며 놀라서 공중으로 뛰어오르다가 땅바닥에 쓰러지곤 했다.” 

행군이 시작됐다. 병사들은 얼마 안 있어 발을 딛고 있는 그곳이 킬링필드(Killing Field)임을 알았다. 그 넓은 지역에 밟히는 것이 온통 사람의 뼈였다. 기름진 자양분은 갈대들을 한없이 무성하게 했다. 갈대가 우거진 온 천지에 수십 개, 혹은 수백 개의 해골이 별처럼 흩어져 있었다. 수양제를 따라 참전했다가 회군도중에 요택에서 죽은 수나라 병사들이다. 

갈대의 바다 요택은 입을 벌리고 누워 있는 죽음의 신(死神)이었다. 당나라 병사들은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다.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밤이면 갈대 사이로 인을 뿜는 해골의 광채가 보였고, 얕은 물속에서도 걸레 같은 시신들이 홍수에 떠내려 온 나무토막처럼 쌓여 있었다. 습지에서는 시체가 잘 부패하지 않는다. 

고구려에 끌려가 이름도 없이 죽어간 수나라 병사들에 대해 아버지와 삼촌들로부터 익히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을 직접 보고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턱없이 죽어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신을 보니 처참한 백병전을 벌이다 죽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30만 가운데 청천강에 반이 죽고 패주해 그리운 고향을 향하다 마지막 관문인 이곳을 건너가다 지치고 굶주려서 죽은 것 같았다. 

그들은 무익하게 죽어야 한다는 명령을 받고 죽었던 것은 아닌가? 수양제의 무능함에서 생긴 집단자살과 같은 선배들의 그 죽음은 그들처럼 고구려로 향하는 후배들의 마음을 다치게 했다. 세상의 끝 고구려의 문턱에서 병사들은 마치 저승길처럼 꺼리고 두려워했다. “나도 저들처럼 요택의 해골로 남을 수 있다.” 

‘구당서’는 당시 당태종의 한탄 어린 말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지난날 수나라의 군사가 요하를 건널 적에 때를 잘못 타서 종군한 사졸들이 모두 죽어 해골이 온 산야에 널렸으니 참으로 슬프고 한심하다. 해골을 덮어 주는 의리가 무엇보다 우선돼야 하니 그들의 뼈를 거둬 묻도록 하라.” 

병사들이 흩어져 뼈를 수습하고 매장하는 그 시간에 당나라의 토목 전문가들이 공병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진창이 어떤 곳은 무릎까지 빠지고, 어떤 곳은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도 몰랐다. 태종은 요택의 통과를 예상하고 전문가들을 동원해 조치를 취해 놓았다. 당나라의 유명한 토목전문가 장작대장(將作大將) 염립덕(閻立德)이 공병들을 데리고 질척한 곳은 흙으로 깔고 물이 고인 곳에는 임시 다리를 놓아 길을 닦았다. 

그래도 지반이 약하고 땅이 낮아 수렁이 많은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태종은 소감(少監) 구행엄(丘行淹)을 시켜 늪지대를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수레바퀴를 미리 제작해 놓았다. 수레들은 모두 잘 빠지지 않는 늪지용 수레의 바퀴를 갈아 끼웠고, 모든 장비를 수레에 실었다. 일방 토목공사가 진행되는 동시에 진군을 했다. 운반 장비를 다루고 수리하는 기술자들과 공병대를 이끄는 지휘관들, 그들을 따르는 병사들도 유능했다. 손발이 맞았고, 행군은 순조로웠다.

5월 3일 출발한 군대는 요택 시작 지점에서부터 5월 9일 요돈(遼頓)에 이르기까지 단 1주일 만에 주파했다. 하늘도 그들을 도왔다. ‘책부원구’를 보면 요돈에서 요하 본류를 건너는 날 저녁에 강 수위가 3척이나 내려갔다고 한다. 하늘의 가호를 받고 있다고 느낀 병사들은 기뻐했다. 

하지만 그들을 진정으로 도운 것은 행군을 방해하는 고구려 군대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이다. 고구려군은 요하 북로를 주파한 이세적의 군대와 남로로 들어온 장검의 군대를 막아내느라 초기에 철통같이 지키던 요하 중로를 완전히 비웠다. 

5월 8일 당태종과 그의 군대가 요택을 가로지르고 있을 때 고구려 군대가 요동성 근처에 도착했다. 당태종이 6만 군대를 이끌고 요택 중로를 요동성으로 향하고 있다는 정보를 늦게 입수한 연개소문은 그제서야 당시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을 모두 동원했다.

‘신당서’는 기병 4만을 그곳으로 파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구당서’ ‘신당서’ ‘자치통감’ 등의 기록에서 요동성을 구원하기 위해 고구려가 군대를 보냈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요동성의 안전을 위해서만 그렇게 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뭐라 해도 연개소문의 1차 목표는 당태종 단 한사람이었다. 

당나라 군대는 멀리서 평원의 북동쪽에서 거대한 먼지 기둥을 보면서 고구려 군대가 등장했음을 알았다. 이어 수만의 말발굽이 땅을 치는 진동이 느껴졌다. 요동성을 포위하고 있었던 이세적은 긴장했다. 포위를 그대로 유지하려면 고구려 구원군을 막을 수 있는 병력이 제한된다. 그렇다고 해서 포위를 풀고 구원군을 막는 데 투입하면 요동성에 대기하고 있던 고구려 군대가 성문을 열고 나와 뒤통수를 칠 수 있다. 2만의 정예병사와 4만의 사람이 있는 요동성 포위를 풀 수 없었다. 

다만 고구려 구원군의 흐름을 일단 막아야 했다. 1만 정도의 병력을 거느린 행군총관(行軍總管) 장군예(張君乂)가 이끄는 사단과 이도종이 이끄는 4000명 기병을 출전시켰다. 당나라 군대가 다가오자 고구려군은 일단 진군을 멈추고 대열을 가다듬었다. 당군이 일제히 돌진했다. 그러자 고구려 군대는 밀리는 듯했다. 당군은 공세를 늦추지 않았고 고구려 군대는 계속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얼마 후 장군예와 이도종은 고구려군의 그물에 들어갔음을 알았다. 고구려군은 가운데 대열을 뒤로 물렸지만 좌우의 대열이 점점 앞으로 향하면서 당군을 포위했다. 기동력이 있던 이도종의 기병은 그물망에서 상당부분 빠져나왔지만 보병인 장군예의 병력은 갇혀 대부분 전멸했고, 장군예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휘하 소수의 병력만 이끌고 도주했다. 고구려에 와서 첫 패배였다. 이는 당군 전체의 사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태자하 지명 유래

요동성의 외곽에는 태자하라는 강이 있다. 강 이름에 태자라는 명칭이 붙은데는 이유가 있다. 기원전 226년 연나라 마지막 황제 희(喜)와 그의 아들 태자 단(丹)이 요동성에 온다. 앞서 태자 단이 형가(荊苛)라는 자객을 시켜 진시황(秦始皇)을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노한 진시황은 연나라를 정벌하게 했다. 연나라 도읍까지 쳐들어왔다. 태자 단은 아버지 희왕을 모시고 요동으로 도주했다. 진시황의 군대가 추격해 왔다. 태자 단은 아버지와 양평성(요동성) 부근에서 포위됐다. 진시황은 태자 단의 수급만을 원했다. 연나라 왕 희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모진 마음을 먹었다. 그는 태자 단을 술을 먹이고 손을 썼다. 아들의 수급을 진나라 군대에 보냈다. 연나라 왕 희는 아들을 죽이고 대성통곡했다. 후세에 사람들은 태자 단을 기리기 위해 요동성 외곽에 흐르는 연수(衍水)를 태자하로 불렀다. 

<서영교 중원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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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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