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랫만에 원문을 다시 보러 갔더니 사진이 좀 바껴 있어 추가하고 편집을 약간 했습니다. 그림은 클릭하면 크게 보일 겁니다. (2012.10.27)

출처 :  http://blog.naver.com/middleway49/110082364942

무굴 제국 (Mughul, 1526 - 1857)

무굴 제국은 몽고의 후손들이 세운 우즈베크 공화국에서 태어난 바부르로부터 시작된다. 굴 제국의 시조 바부르는 중앙아시아를 전전한 후 카불을 점령하고,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1526년 인도에 침입, 델리를 탈취하고 무굴 제국을 세운다.
 

13세에 즉위한 제 3대 악바르 황제는 북인도 전역을 차지한 뒤 남부의 데칸 지역까지 차지하면서 마우리아 왕조 이후 가장 넓은 지역을 차지하는 국가를 이룬다. 그는 영토 확장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의 제반 분야에서도 무굴 제국의 확고한 토대를 마련한다.
 

1590년 대에는 남하 정책으로 데칸 지방의 이슬람 여러 왕조에도 세력을 뻗어 나갔다.

행정면에서도 악바르 황제는 이슬람교도나 힌두교도 등 종파를 가리지 않고 능력에 따라 중용하여 각 지방의 토지 측량이나 지세 결정 등의 실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악바르 황제의 사후 자항기르, 샤 자한, 아우랑제브로 이어져 이 시기는 무굴 제국의 전성시대를 이루었다.
 

샤 자한은 형제간의 분쟁에서 이겨 왕위를 계승하였다. 샤 자한은 무굴 제국의 지배를 벗어나 있던 데칸 지역 등 여러나라를 정복하는 일에 착수하여 악바르 시대보다 더 넓은 영토를 확보하였다. 샤 자한은 정통적인 이슬람교도로서 건축과 미술을 포함한 모든 예술 분야에서 페르시아풍을 강조하였다.  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타지 마할과 아그라城을 재건축하였다.
 

샤 자한의 뒤를 이어 형제간의 피비린내 나는 투쟁 끝에 아버지 마저 유폐시킨 뒤 왕위에 오른 아우랑제브는 무굴 제국을 철저하게 이슬람 세계로 만든다. 궁정 안의 힌두교적 요소를 없애고, 사원을 파괴하고, 힌두교도에 대한 인두세를 차별 부과하는 등 편협한 억압정책을 썼다. 이는 결국 많은 힌두교도의 반항과 반란을 야기시키고 무굴 제국 쇠퇴의 원인이 된다.
 

제6대 아우랑제브는 데칸의 이슬람 여러 왕조를 정복하여 최대의 판도를 실현하였다. 그러나 1674년 힌두교도들이 데칸 지방에 마라타 왕국을 세워, 무굴 제국의 강력한 적대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1707년 아우랑제브가 죽자 제위 계승을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나 무굴의 중앙 권력은 급속히 쇠퇴해졌다.
 

18세기 말 약화된 무굴의 중앙 권력은 데칸 지방에서 델리 주변까지 세력을 확장한 마라타 동맹에 의하여 무굴 황제의 지배력은 약화되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에 걸쳐 영국의 식민지 지배세력은 마라타, 마이소르 등 강력한 봉건 세력을 멸망시키고, 인도에서의 식민지 지배 영역을 확대하여 갔으나, 명목상으로만 존속한 무굴 황제의 지위는 그대로 남겨 두고 식민지 지배의 도구로 이용하였다.
 

1857년 북인도를 중심으로 '세포이의 반란'이 일어나자, 각 주둔지에서 반란을 일으킨 인도의 병사들이 델리에 집결하여 무굴 황제를 추대하여 새로 정권을 수립하였다. 2년에 걸친 반란이 영국군의 무력으로 진압되자, 그들은 탄압 정책을 한층 강화하여 그 때까지 명목상으로만 남겨 두었던 무굴 황제의 지위를 폐함으로써 무굴 제국은 멸망하였다.

 

* 세포이의 반란 (1857 - 1859)

인도의 병사 및 농민에 의해서 일어난 민족적 대 반란.

세포이란 페르시아어로 군대란 뜻으로, 여기에서는 영국 동인도 회사가 편성한 이슬람교도, 힌두교도로 구성된 벵골 지방의 동인도 회사 소속의 용병을 말한다. 이들은 영국인의 인종 차별, 특권의 폐지 등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1857년 5월 항쟁을 전개하여 델리를 점령하였다.


무굴제국 판도


세밀화로 그린 바부르 황제

[출처] 무굴 제국 ( Mughul, 1526 -

1857)
|작성자 middleway49

 
세밀화로 그린 바부르 황제


 

평복을 입고 서 있는 악바르                                               코끼리를 타고 가는 악바르 

  

자항기르가 두 아들을 맞고 있다  1606년               자항기르  17세기 
 

  

자항기르 황제                                                     자항기르 왕(오른쪽)과 아바스 왕이 포옹하고 있다


 
 

아그라城에 있는 자항기르 마할                    자항기르 마할
 
 


무굴제국 제 3대 황제 악바르가 요새로 지은 아그라성 

 
 
 
 




제항기르宮 오르차

 

 

 
 
샤 자한                                          카메오에 새겨진 사냥하는 샤 자한(Shah Djahan) 
 

무굴제국 제 5대 황제 샤 자한과 愛妃 뭄타즈 마할
 
1890년에 찍은 타지 마할
 
 

샤 자한이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여 건축한 타지 마할    

 

 
 



타지마할 아그라
 

타지마할 정문

 
샤 자한이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되어 숨을 거둘 때까지 마지막 8년을 보낸 아그라 성내의 '포로의 탑'   머얼리 타지마할이 보인다.  
 

  

아우랑제브                                               꾸칸을 읽고 있는 아우랑제브
  
  
 
금, 은, 루비로 장식한 무굴제국의 컵         에메랄드, 루비, 유리를 바고 금으로 띠를 두른 옥컵
                                                             
18세기 
 

 
  
옥으로 만든 호른  17세기                                            옥으로 만든 말머리 모양의 칼손잡이 18세기

17세기 - 18세기 꽃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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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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