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ookbang.dema.mil.kr/kdd/GisaView.jsp?menuCd=3004&menuSeq=12&menuCnt=30917&writeDate=20121024&kindSeq=1&writeDateChk=20120425


<66>백암성 앞 기병
막강 고구려 기병 앞 돌궐 기병 맥못춰
2012.04.25

백암성의 규모로 보아 황제가 직접 올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나라 태종은 나타났고, 모든 돌궐 병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아사나사마가 누워있는 막사를 찾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는 표정으로 그에게 상태를 물어 보았으리라. 

아사나사마의 표정과 목소리가 심상치 않자 군의관을 불러 감은 붕대를 풀어 보라고 했다. 이미 응급조치는 되어 있었지만 환부는 엷은 보라색을 띠었고, 잔뜩 부어 있었다. 고름이 가득 찬 것이 분명했다. 당 태종은 그곳에 입을 들이대고 마구 빨기 시작했다. 금세 입이 가득 차 볼이 불러왔다. 그리고 따뜻한 누런 체액을 뱉어냈다.

오골성 고구려군  일부 백암성 입성  당태종, 부하들 직접 치료 ‘사기 진작’

기병전이 벌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백암성 서문 앞 평지와 구릉지대. 백암성의 고구려인들은 고구려 기병과 돌궐 기병의 전투를 성 위에서 지켜 보았으리라. 필자제공

황제가 아사나사마를 치료해 주었다는 소문은 금세 돌궐인들 사이에 퍼졌다. ‘자치통감’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병신일(5월 29일) 우위대장군 이사마(李思摩 : 아사나사마를 지칭)가 강노(强弩)의 화살을 맞자, 황상이 친히 그를 위해 피를 빨았는데, 장사(壯士)들이 이 소식을 듣고 감동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돌궐인들은 아사나사마에 대한 배려를 그들 자신에 대한 예우로 느꼈다. 태종은 사기가 오른 돌궐인들을 출동시켰다. 고구려 구원군 1만이 거대한 먼지기둥을 일으키면서 백암성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백암성을 둘러싼 방대한 지역에서 기병전이 일어났다.

돌궐 기병의 목적은 고구려군이 백암성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것에 있었다. 그 대규모 전투의 초반은 방어하는 돌궐 기병보다 전력을 한곳에 집중시킨 고구려 기병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듯하다. 기록은 계필하력 휘하의 돌궐 기병이 치른 일부 전투만 전하고 있다. 

기병 800을 이끈 계필하력이 고돌발(高突勃) 휘하의 기병부대와 마주쳤다. 둘은 곧바로 정면충돌했다.‘책부원구’는 “계필하력이 강한 기병 800명으로서 고구려군과 맞붙어 싸웠다”라고 하고 있다. 

고구려 군대는 생각보다 강했다. ‘신당서’의 표현 그대로 계필하력은 고전했다. 첫 충돌에서 많은 돌궐 기병들이 순식간에 말에서 떨어졌고, 중상을 당하거나 전사했다. 싸우다 보니 계필하력의 주위에는 살아남은 부하들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홀로 고돌발 기병의 진에 갇히게 됐다. ‘책부원구’는 그가 “고구려 군대의 진(陣)에 파묻혔다(挺身陷陣)”라고 하고 있고, ‘구당서’는 “적(고구려군)에게 포위됐다(賊所圍)”고 하고 있다. 

고구려군은 계필하력의 부대 하나를 찍어 거기에 병력을 집중 투입해 호위 병력을 순식간에 제거했던 것이다. 그가 황제의 최측근이라 그러한 표적성 공격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고구려 기병에게 둘러싸인 계필하력은 홀로 난투극을 벌였다. 

창을 쓸 수 있는 지척의 거리까지 고구려 기병들이 좁혀왔고, 그는 고구려 장군 고돌발이 찌른 창에 옆구리를 맞았다. 계필하력이 말 위에서 떨어지자 고구려 기병들이 그를 향해 몰려왔다. 고구려 기병은 그가 듣도 보도 못한 전술을 구사했던 것 같다. 티벳 고원에서 타클라마칸 사막 그리고 몽골리아에 이르는 수많은 전장을 누볐던 그가 이러한 강적을 만나 절명의 위기에 몰린 적은 없었다. 고구려 땅에서 임종을 맞이할 찰나였다.

이 장면은 본 당의 장군 설만비(薛萬備)가 단기(單騎)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계필하력을 포위하고 있던 고구려기병 여러 명을 순식간에 죽이고 자신의 말에 계필하력을 태우고 빠져나왔다. 극의 한 장면이었다. 

‘자치통감’은 이렇게 전한다. “오골성에서 (고구려)군사 1만여를 파견해 백암성을 성원하자 장군 계필하력이 강한 기병 800명을 데리고 이들을 쳤는데, 계필하력은 몸을 던져 그들의 진에 빠졌다가 창에 허리를 맞았다. 궁정 수레관리관 설만비(薛萬備)가 단기로 달려가서 그를 구해 계필하력을 많은 무리 속에서 뽑아내어 돌아왔다.”

설만비는 기병전의 명수인 설만균ㆍ설만철의 아우였다. 635년 만균ㆍ만철이 청해지방의 적수(赤水: 청해성 흥해현)에서 토욕혼의 하마장창보병(下馬長槍步兵)에 포위돼 휘하의 병력을 거의 잃고, 절명의 위기에 있을 때였다. 계필하력이 돌궐 기병을 이끌고 돌진해 토욕혼의 포위망을 뚫었고, 형제를 말에 태워 사지에서 벗어나게 했다. 설만비는 형들을 구해준 은혜를 갚았고, 이로서 계필하력과 설씨 형제 사이의 묵은 감정의 골도 사그라졌다. 

하지만 당장 맞닿은 현실은 좋지 않았다. 돌궐 왕족이 저격을 받아 쓰러져 있고, 돌궐 기병의 대표주자인 계필하력 자신의 부대가 고구려 기병의 공격을 받고 거의 전멸하고 그도 죽을 뻔했다. 위기에 몰린 돌궐 기병은 백암성에 대한 포위망을 풀 수밖에 없었다.
 
고돌발 등의 입성은 백암성의 사기를 올려놓았다. 연개소문이 백암성의 사람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 현실로 나타났고, 앞으로 자신들의 생활터전을 지켜낼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백암성의 성주인 손벌음은 마음속으로 기뻐하지 않았다. 이미 황제에게 항복예약을 해 놓은 상태가 아닌가. 백암성이 함락되지 않고 자신이 한 짓이 들통 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한편 일보 후퇴를 한 당군의 진영에서 황제의 부하 사랑은 지속됐다. 그는 고구려군에 패배한 계필하력을 책망하지 않았다. 고돌발의 창에 맞아 부상이 심한 계필하력을 찾아갔다. 막사의 문이 열리고 군의관을 대동한 태종이 들어오자 패장 계필하력은 어찌할 바를 몰랐으리라. ‘신당서’는“(계필하력이) 적의 창에 맞아 상처가 심해 황제가 직접 약을 발라주었다”라고 하고 있다. 소문이 퍼지자 패배해 만신창이가 된 돌궐 기병들은 또 다시 사기를 회복했다. 

 
돌궐 왕족 아사나사마  

돌궐 왕족인 그의 일생은 7세 초중반 동아시아의 격동기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구당서’ 동돌궐 아사나사마전을 바탕으로 그의 인생역정을 그려보자. 

그는 동돌궐의 힐리 가한의 친척으로 돌궐왕실 아사나(阿史那) 씨의 근친 왕족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몽골리안과 다른 이란계 백인, 다시 말해 소그드 호인(胡人)에 가까웠다. 왕실 친척들은 피부가 희고 코가 크며 푸른 눈을 가진 그가 자신들과 씨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배척을 받아 주눅이 들어 소심한 성격을 갖게 되었으리라. 그의 리더로서의 자질은 여기서 치명상을 입었다. 

왕족 예우에 따라 ‘특권’이란 관직을 받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병력을 운용하는 ‘설(設)’이 되지 못했다. 대신 외교에 종사했다.

624년 당나라를 방문했고, 당고조 이연에게 화순군왕으로 책봉된 바 있다. 630년 동돌궐은 내란에 이어 당태종의 외침을 받았다. 그는 끝까지 힐리 가한의 옆에 있다가 사로잡혔다. 태종이 볼 때 그는 온순한 외교관이었고, 의리까지 있었다.

 <서영교 중원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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