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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 관련 내용을 제외한 고구려 관련 내용만 가져왔습니다.

日本 神이 된 고구려 보장태왕 子'약광'
고구려인들은 일본의 철제.제지기술.기마문화 보급한 주역
 윤복현 저널리스트  

<KBS역사 스폐셜> 제작진이 고구려 보장태왕의 아들 약광이 일본에서 신이 된 배경을 추적했다. 일본의 무사시 고마(高麗)는 1,300년전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태왕의 아들 약광(若光)이 1799명을 이끌고 와서 마을을 시작했다고 한다.그래서 고마현은 아직도 고구려의 이름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고 한다.
 
도시 이름부터 역이름, 학교이름, 신사 이름까지 고마(고구려)를 그대로 지키며, 아직도 매년 약광왕을 기리는 축제를 열고 있다고 한다. 일제 명치유신이후 고구려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고마를 히타카시로 바꾸었으나 그 흔적은 아직 면면히 흐르고 있다고 한다.
 
 

666년 일본에 건너간 약광(若光)은 716년 일본 무사시국 주변 일대에 흩어져 살고 있던 1799명의 고구려 유민들을 모아 ‘고려(고구려)군’을 건립하였다.
 
 

일본 사이타마현 히타카시(市)에 살고 있는 고구려 후손들은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아들 약광(若光)의 자손들로 당시 일본천황은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자 716년 무사시(武藏)지방에 고마군(高麗郡)을 설치하고 약광을 초대 군수로 임명해 같이 망명한 1799명을 옮겨 살도록 했다. 
 
 
 
이들 후손들은 26대까지는 고구려 자손끼리 혼인해 혈통을 이어 오다가 그 뒤 일본인들과 혼인해 지금은 거의 다 일본 사람들이 되었다. 그렇다고 전통이 단절된 것은 아니다. 약광의 60대손인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는 아버지 '고마 스미오'씨의 뒤를 이어 '고마(고구려의 일본식 표기) 신사(高麗神社)'의 궁사(宮司)로 대(代)를 이어 오고 있다.



14세기 무로마치 바쿠후(幕府) 때 정권의 반대편에 가담했다 해서 박해를 받아온 고구려 후손들은 명치유신 뒤부터 한층 더 고난을 겪었다. 
 
일본 정부는 한국과 관련된 지명을 없애버리기로 하고 고마군을 이루마군(入間郡)에 편입시켜 히타카마치로 부르게 했고 약광에 대한 제사도 금지시켜 '천황신'에게 제사지내게 했다. 히타카마치는1991년 사이타마현 히타카시가 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마 신사는 최근 일본 각계의 거물들이 이 신사를 참배를 하고 난 다음에 출세했다고 해, 일본인들에게는 출세 신사(出世神社)로 더 알려져 있으며 해마다 40만 명 이상의 참배객들이 찾아와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 
 
1799명의 고구려인 들은 세공, 직물, 철제 등 기술에 능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철제 농기구를 도입하여 농작물 수확을 극대화시켰다. 고구려인들은 철제 도입뿐 아니라,일본인들에게 종이제조기술까지 전파했다. 물론 고구려의 담징이 일본에 최초로 종이제조기술을 전해 주었지만 이를 일본지역에 대중화시킨 사람들은 고구려인들이였다.
 
관동지방으로 건너간 고구려인들을 중심으로 무사집단을 형성하였는데, 이것이 일본 무사집단의 시초이다. 무사집단의 형성이유는 고구려인의 철제기술과 말이었다. 장군산고분에서는 동완, 장식대도, 철제마주, 철제무기 등 많은 뛰어난 유물이 출토됐다.
 
 
 
이 유물로 미루어 봤을 때 이들은 철갑무기와 말을 사용한 철갑기마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관동지역에 터를 잡은 고구려인들은 말을 길러냈고 이 곳은 준마의 명산지가 되었다. 훗날 발견되는 말등자, 철제마주, 고구려벽화에 등장하는 말의 깃대 등은 이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일본의 기마문화 또한 유라시아 최강의 기마국가인 고구려인들에 의해 대중화된 것이다.
 


고마악(고려악高麗樂)은 고구려음악으로 550년에 일본으로 전해졌다. 고려악은 지나지역의 당나라 음악과 함께 일본 아악의 축이다. 30년 동안 일본 궁내청에서 활동하던 연주자 ‘시바 스케야스’ 씨는 최근에 자신이 고구려 제22대 왕인 안장왕의 후손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고구려의 직계후손 ‘고려 게이코’ 씨는 NPO(민간 비영리 단체)를 조직해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고구려의 자부심을 길러준 아버지의 영향으로 마음속에 고구려를 품고 살아온 그녀는 <빛의 아들로 태어난 고추모는 평화의 세상을 실현하고자 했다>는 고구려 전설에 대한 콘서트를 전 세계적으로 열고 있다. ‘고려(고구려) 게이코’ 씨는 고구려가 자신의 운명이자 인생 자체라고 말한다. 또한 고려(고구려)사진공방의 대표 ‘아타라시 다스야’. 그도 고구려의 후손이다. 조상 때부터 1300년을 고려(고구려)에 거주한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공방의 이름도 ‘고려사진공방’ 이라고 짓고 고려(고구려)를 지키고 있다. 그에게 고구려는 소중한 자신의 뿌리이자 자긍심이다. 
 
이렇게 일본은 국가주의를 넘어서 한민족사속으로 들어 가면 핏줄을 통하여 한민족의 갈래로 만나게 된다.그리고 고대 마한과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 4국 문화를 이해하려면 일본열도에서 찾으면 된다. 현재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일본문자를 만들어 준 사람은 백제의 왕인박사다. 한자에서 부수만 취해서 사용하고 있는 문자가 일본문자인 것이다.백제의 왕인박사는 일본인들에게 일본어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으며, 고구려어와 유사한 일본어의 뿌리는 부어언어다. 일본문명이나 정치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백제가 부여인들인 만큼 당연히 부여언어일 수 밖에 없고, 부여세력인 고구려언어와도 유사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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