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2KKR_A9999_1_0000285&isEQ=true&kristalSearchArea=Phttp://db.history.go.kr/url.jsp?ID=tc
http://ko.wikipedia.org/wiki/%EB%8C%80%EC%A4%91%EC%83%81


걸걸중상(乞乞仲象)

대조영(大祚榮)의 아버지.
생몰 : 미상. 
가계
     부인 : 미상
          아들 : 대조영(大祚榮)
                 
손자 : 대무예(大武藝), 대문예(大門藝), 대창발가(大昌勃價), 대호아(大胡雅), 대보방(大寶方), 
                          
대림(大琳), 대술예
     
     
아들 : 이름 미상
                 
증손 : 폐왕 대원의
   
       
아들 : 대야발(大野勃)   
                 
손자 : 대일하(大壹夏), 대원기(大元璣)
                 
후손 : 선왕 대인수

696년 음5월 [효소왕 5년 5월] 발해, 요서(遼西)의 걸걸중상(乞乞仲象) 태백산(太白山, 지금의 백두산)동북으로 본거를 옮겨 고구려의 유민과 속말말갈을 통합함. 

《신당서(新唐書)》 발해전에 의하면 걸걸중상 고구려에 복속되었던 속말말갈족(粟末靺鞨族) 출신으로 당나라 영주(榮州) 지방에 옮겨가 살고 있었다.
 

676년 거란족의 반란을 틈타 함께 억류생활을 하던 말갈추장 걸사비우(乞四比羽)  고구려 유민들과 함께 당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 동으로 이동하였다. 이에 당나라 걸걸중상에게 진국공(震國公)을, 걸사비우에게 허국공(許國公)을 봉하고 회유하려 하였으나, 이를 거부하자 토벌군을 보냈다.걸사비우 집단이 이해고(李楷固)가 이끈 당나라 군사와 싸웠으나 패전하고 걸사비우는 전사하였다. 이때는 걸걸중상이 죽은 후로서 그의 아들 대조영이 계승하여 무리를 끌고 동으로 이동하였다. 이해고의 부대가 계속 추격해오자, 대조영 걸사비우의 잔당과 고구려 유민들을 규합해 천문령(天門嶺)에서 이를 격파하였다.
 

그런데 이는 《구당서 舊唐書》의 기록과는 다르다. 《구당서》에서는 대조영 영주 지방을 탈출할 때부터 자기집단의 우두머리였고, 고구려출신이라고 하였으며, 걸걸중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이는 대조영의 민족적인 귀속 및 발해국의 성격에 관한 문제로서 논란이 많다. 걸걸중상 대조영의 관계에 대해서 두 사람은 동일인으로서 걸걸중상은 토속어로 된 본래의 이름이고 대조영은 뒤에 한자로 지은 이름이라는 견해도 있다. 혹은, 양자를 기록 그대로 부자관계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에 관한 다른 기록이 전혀 없어 미해결로 남아 있다.


[참고문헌]
舊唐書
新唐書
渤海史硏究의 回顧와 國史(李龍範, 韓國思想 7,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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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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