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투표시간 연장 무산작전 ‘막전막후’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개정 ‘찬성파’ 의원 법안소위서 빼고 ‘친박’ 의원 긴급투입해 저지 성공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11월 5일 국회 정론관에서 투표시간 연장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서성일 기자

투표시간을 기존의 오후 6시에서 8시로 연장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선거법 개정이 물 건너갔다. 지난 11월 20일 자정 무렵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에서 새누리당 황영철 소위원장(새누리당 간사)은 선거법 개정안 논의를 위해 차수를 변경하자는 민주당 의원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산회를 선포했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이었던 황영철 소위원장은 최근 행안위로 옮겨 11월 19일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이로써 국민의 참정권 확대 차원에서 민주당 등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요구한 투표시간 연장은 사실상 새누리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도 “그 문제는 여야가 잘 상의해서 결정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투표시간 연장문제를 국회로 떠넘기기에 바빴다. 국민의 참정권을 확대하겠다는 투표시간 연장에 대해 대놓고 반대할 경우 역풍이 우려됐기 때문에 공을 국회로 넘겼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실 9월까지만 해도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등 여야는 한 목소리로 투표시간 연장에 대해 찬성했다. 이 같은 사실은 9월 18일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소위 속기록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당시 소위에는 새누리당에선 고희선 법안소위원장을 비롯해 박성효·유승우 의원이 참석했다. 민주당에서는 김민기·백재현·유대운 의원이 참석했으며, 비교섭단체(선진통일당)에서는 김영주 의원이 참석했다. 법안소위 위원인 새누리당 윤재옥 의원은 불참했다.

새누리당 황영철 대표 비서실장(가운데)이 8월 16일 열린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황우여 대표(오른쪽)에게 얘기를 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9월까지만 해도 여야 모두 연장 찬성

회의록과 참석 의원들에 따르면 여야 의원들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시간을 현행 오후 6시에서 8시 또는 9시로 연장하는 안에 대해 공감했다. 갈수록 투표율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행안위 법안심사소위 의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투표시간을 연장해서라도 투표율을 끌어올리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새누리당 고희선 소위원장과 유승우 의원도 투표시간 연장안에 긍정적이었다. 새누리당 박성효 의원은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유승우 의원은 투표를 하지 않는 유권자에 대해 페널티를 부과하자는 소신발언도 했다. 유 의원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한 것인데, 여기에 벌금 같은 것 물리면 안 됩니까. 이것은 좀 해야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 동석한 선관위 선거실장도 “예산문제나 인력문제 이런 것은 국민들한테 투표권을 준다는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부차적인 이야기”라며 투표시간 연장에 찬성했다. 

토론 결과 여야 의원 대부분이 투표시간 연장에 찬성하므로 고희선 법안소위원장은 투표시간을 오후 8시까지 연장하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을 의결하려 했다. 하지만 고 소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기 직전에 새누리당 김모 전문위원이 고희선 소위원장에게 무엇인가 귓속말을 했고, 귓속말 이후 고 소위원장은 갑자기 정회를 선포했다. 새누리당 전문위원의 귓속말 한 마디에 투표시간 연장안이 송두리째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이후 국회 행안위는 선거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간에 설전을 계속하며 파행을 거듭했다. 

새누리당 전문위원의 귓속말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고희선 소위원장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민주당 김민기 의원은 새누리당 전문위원이 고희선 소위원장에게 “(투표)시간만은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소위 위원들은 투표시간 연장을 국민의 참정권 확대라는 측면에서 접근했지만, 새누리당 전문위원은 투표율이 올라가면 박근혜 후보가 불리하다는 것을 계산했다는 것이 민주당 행안위원들의 시각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측은 김민기 의원이 잘못 들었다고 주장했다. 고희선 소위원장은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9월 26일)에서 당시 전문위원한테 “시간 나실 때 전화주십시오”라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김민기 의원은 “당시 새누리당 전문위원이 고희선 위원장에게 말한 것을 들을 때는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며 “고희선 소위원장이 회의에서 한 말이 있으니까 선거법 개정안을 의결할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만약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됐으면 투표시간 연장 선거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을 가능성이 크다. 선거법안이 행안위 소위를 통과해도 행안위 전체회의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의결되어야 하지만 관례적으로 해당 상임위 소위의 의결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고희선 소위원장 의결 직전 갑자기 정회 선포

투표시간 연장문제로 논란을 일으킨 것과 관련, 새누리당에서도 고희선 소위원장과 법안심사소위원들에 대한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소속 행안위의 한 관계자는 “당시 고희선 소위원장이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며 “이 사건으로 대선정국에서 이슈로 떠오른 투표시간 연장문제에서 야당에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다”고 말했다. 논란이 된 법안소위 위원들은 새누리당 지도부의 의중에 따라 행안위 소위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문책성 인사인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행안위 소위 이동이 이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희선 의원 측은 현재 새누리당 경기도당 위원장을 맡고 있어, 대선에 전념하기 위해 행안위 새누리당 간사와 법안소위원장을 자발적으로 그만뒀다고 설명했다.

대신 새누리당은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에 있던 황영철 의원을 투입, 행안위 새누리당 간사와 법안소위원장을 맡겼다. 쇄신파 출신인 황영철 의원은 박근혜 비대위원장 시절 비대위 대변인을 맡았으며, 현재는 황우여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등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 지도부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새누리당은 국회 행안위에서 법안소위원장과 소위원들을 교체하는 긴급처방을 한 끝에 투표시간 연장을 막을 수 있었다. 국회 주변에서는 새누리당 행안위 위원들이 민주당 의원들보다 전투력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에 황영철 의원과 맞교대한 서병수 의원(농림수산식품위)은 새누리당 사무총장직 수행으로 정상적인 상임위 활동이 어려웠고, 친이(이명박)계의 이재오 의원은 투표시간 연장에 찬성하고 있고, 다른 의원들은 초선의원들로 정치경험이 많지 않다. 반면 민주당은 비록 초선이라도 진선미·김현·백재현·유대운·김민기 의원 등이 역할을 분담해 행안위에서 새누리당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이에 따라 황영철 의원이 구원투수로 나선 것이다. 황영철 의원은 “당 지도부에서 제가 바쁜데도 불구하고 행안위에서 새누리당 간사 역할을 열심히 해달라고 보냈다”며 “투표시간 연장 등 선거법 개정안 논의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더 이상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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