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만 EG에 포진한 ‘박정희의 사람들’
포항제철로부터 특혜를 받는다는 의혹에 휩싸였던 EG는 박근혜 후보의 동생 박지만 회장을 국내 300위대 부자로 만들어준 기업이다. 이 기업에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그 면면들을 살펴보자
고제규·김은지 기자  |  unjusa@sisain.co.kr  [271호] 승인 2012.11.26  08:55:00

최근 EG 홈페이지에 팝업창이 새로 떴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제목의 팝업창에는, 여섯 가지 언론 보도에 대한 해명을 담고 있다. 그 첫 번째가 ‘폐산을 포항제철로부터 독점 공급받는다?’는 기사에 대한 해명이다. EG는 포항제철로부터 산화철을 구매하는 여러 업체 가운데 하나라서 ‘독점’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2000년 1월 코스닥에 상장하며 EG가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에 낸 사업보고서에는 ‘직원들이 포철에 상주’하며 ‘국내 경쟁 업체가 없다’면서 스스로 독점을 인정했다. EG는 당시 사업보고서에서 ‘산화철을 포항·광양제철소로부터 공급받고 있으며, 당사(EG) 직원들이 제철소에서 산회수 설비운전과 산화철의 1차 가공 후 본사에서 2차 가공 정제하여 판매하고 있으므로, 국내에서는 경쟁관계가 없다. 현재로서는 진입 장벽이 매우 높은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현재 해명과는 다른 내용이다. EG 관계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러 경쟁 업체가 있어 독점은 아니다. 공급받는 비율 때문에 상장하며 낸 보고서에 ‘진입 장벽’이라는 표현을 쓴 것 같다”라고 해명했다. 

2005년 육영수 여사 31주기 추도식에서 박근혜 후보(오른쪽)가 동생 박지만씨(가운데)의 부인 서향희씨(왼쪽)와 이야기하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동생 박지만 회장이 운영하는 EG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대표적인 정치 테마주라는 시선에서부터, 야권에서는 포항제철(현 포스코)로부터 재료 몰아주기 특혜를 받아 성장했기에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에 어긋나는 ‘이율배반’ 회사가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박지만 회장을 국내 300위대 부자로 만든 EG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박정희’라는 열쇳말이 필요하다. EG에는 지금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짙게 서려 있다. 박지만 회장 외에도 박 전 대통령과 직간접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여럿 있어서다.   

박정희 부관 출신 이광형 부회장

아버지 후광으로 EG에 무혈 입성한 박지만씨는 회장이 된 뒤에도 마약 복용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1991년 3월, 1993년 12월, 1996년 11월, 1998년 2월, 2002년 4월 등 경영 일선에 나선 뒤에도 모두 다섯 차례나 같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박지만 회장이 징역을 살고 보호감호 치료를 받는데도 회사는 돌아갔다. 그를 대신해 전권을 행사한 이광형 사장 때문이다. 현재 부회장으로 있는 이광형 사장은 ‘박정희 사람’이다. 

1971년 육사를 졸업한 뒤 이 사장은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수발했다. 박학봉 비서관과 함께 당시 부관이었던 이광형 사장은 대통령 집무실에 근무했다. 둘은 교대로 청와대에서 숙직을 했고, 아침마다 대통령이 입을 양복과 구두를 챙겨 직접 전달했다. 1979년 10월26일, 운명의 날에 숙직한 이가 이광형 사장이다. 이날 아침에도 박 대통령과 배드민턴을 쳤다. 그는 10·26 뒤 신군부와 함께 ‘박정희 금고’ 조사에 입회하기도 했다. 

이 사장은 청와대를 나온 뒤 1980년대 한국방송(KBS)에 입사했다. 이후 청주방송총국장까지 올랐다. 1988년 KBS 언론 민주화 과정에서 노조는 이 사장을 안기부·청와대 출신 ‘낙하산 3인방’으로 꼽았다. 노사가 3인방을 퇴사시키기로 합의하면서 KBS를 떠났다.  

그런 이 사장은 1993년 EG의 전신인 삼양산업 상무로 입사했다. 직급은 상무였지만 박지만씨를 대신해 회사를 운영했고, 1996년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그가 세간의 입길에 오른 건 2003년이다. 2003년 4월30일 EG는 공시를 통해 박지만 회장이 보유한 229만5000주 가운데 22만5000주를 주당 3430원에 이 사장에게 매도했다고 밝혔다. 대표이사의 책임경영을 위해 최대주주 지분의 일부를 팔았다고 EG는 설명했다(2000년 상장 당시 이 사장은 0.22%인 2000주만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방식이 이상했다. 이 사장이 주식을 사면서 낸 7억7367만원 가운데 7억7000만원을 박지만 회장이 빌려주었다. 박 회장은 그에게 주식을 팔면서 돈도 대준 것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책임 경영을 위해서나 성과를 낸 보상 차원이라면 일반적으로 스톡옵션을 부여한다. ‘EG 방식’은 일반적인 방법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례적인 방법으로 주식을 산 이 사장은 EG가 대선 테마주로 떠올라 고공비행을 하던 2007년 11∼12월 12만 주를 팔아 34억원을 손에 쥐었다. 이때 박지만 회장도 26만 주를 장내에서 팔아 80억원을 현금화했다. 이후 박지만 회장은 2010년 10∼12월에도 주식 30만 주(4%)와 20만 주(2.67%)를 매도해 146억여 원을 챙겼다. 


이광형 사장은 지난해 11월에도 자신이 보유한 16만3000주를 주당 5만3900원에 장내 매각해 87억여 원을 현금화했다. 결국 이 사장은 2007년 이후 EG가 대선 테마주로 주가가 폭등할 때마다 주식을 현금화해 100억원대의 거금을 손에 쥐었다.  

박정희 수행과장 출신 이상렬 전 EG건설 회장

EG의 계열사였던 EG건설 회장을 지낸 이상렬씨도 박정희 정권의 청와대 출신이다. 이상렬 전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이 장군이던 시절 부관이었다. 이 인연으로 청와대 경호실 수행과장으로 마지막까지 박 전 대통령 가까이에서 경호를 맡았다. 그는 1974년 8월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때 육탄방어로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당시 무대 뒤에 있었던 이상렬 과장은 두 번째 총성이 울리자, 본능적으로 무대로 튀어나왔다. 박 대통령을 몸으로 감싸면서 방탄 연단 속으로 밀어넣은 주인공이다. 그래서인지 박근혜 후보가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EG 상장 당시 그는 ‘관계인’으로 0.16% 지분을 가졌다. 

그가 사장으로 있던 EG건설은 1996년 9월 설립됐다. 한때 EG 계열사였다가 박지만 회장이 지분을 정리했고, 이 회장도 2004년 퇴임했다.  하지만 그는 ‘이 회장’ ‘이 사장’으로 불리며 박근혜 후보와 관계를 이어갔다. 박 후보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2002년 5월 창당한 한국미래연합의 운영위원으로 그는 이름을 올렸다. 한국미래연합은 당시 개혁 정당을 표방하며 운영위원회에서 합의제로 당을 운영하기로 했는데,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함께 그는 ‘EG건설 회장’이라는 직함으로 대표 기구나 다름없는 7인 운영위원에 포함되었다. 그의 위상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이상렬 전 회장은 한때 박 후보 측 숨은 실세들이 드나들었던 신사동팀과도 관련이 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이명박 캠프의 진수희 대변인은 “최태민씨 사위이자 박 후보의 비선라인 비서실장 역할을 해온 정 아무개(정윤회)씨가 관리하는 곳이 신사동 한국문화재단 사무실이다”라고 폭로했다. 진 대변인은 박 후보의 공약을 비롯해 각종 정치 현안이 이곳(신사동팀)에서 만들어졌다고 덧붙였다. 한국문화재단이 있는 신사동 사무실은 한때 박 후보의 국회의원실 직원도 상주했던 곳이다. 2001년 <세계일보> 탐사보도팀의 보도에 따르면, 박 후보는 한국문화재단에 국회 직원 2명과 정수장학회에서 급여를 받는 직원 2명 등 5명을 상근시켜 ‘정치캠프’라는 의혹을 샀다. 바로 이 사무실에 ‘이상렬 회장’이 출입하며 전문가 그룹과 박 후보를 연결했다는 후문이다.  

이상렬 전 회장도 최태민씨 사위 정윤회씨와 비슷한 시기에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박근혜 캠프 쪽 관계자는 “(이상렬은) 캠프에서 전혀 이름을 듣지 못한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재단’ 출신 조용생 상임감사  

한국문화재단과 EG를 연결 짓는 인물은 또 있다. 조용생 현 EG 상임감사이다. 조 감사는 1989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문화재단 감사를 지냈다. 한국문화재단은 박 후보가 1980년부터 32년간 이사장을 맡다오다, 지난 8월 청산했다. 조 감사는 박 후보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의 현재 이사이기도 하다. 

조 감사는 1998∼2006년에는 정수장학회가 지분을 가진 <부산일보> 상임감사를 지내기도 했다. 정수장학회가 직접 파견한 상근 감사였다. <부산일보> 상임감사 시절이던 2005년, <부산일보> 만평에 정수장학회 문제와 관련해 박근혜 후보를 풍자한 내용이 실렸다. 조 감사는 만평을 그린 화백을 감사실로 불러 무슨 뜻인지 직접 물었다. 이 일로 당시 <부산일보> 노조 공정보도위원회가 ‘감사는 편집감사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기도 했다. <부산일보> 관계자는 “감사로서 직분을 충실하게 수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수장학회 사람으로 그때 당시 지출과 수입 등을 놓고 경영진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라고 기억했다.  

한국문화재단→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부산일보>를 거친 조 감사는 2004년 11월 EG의 비상근 감사로 임명되어 지금까지 활동한다. 이른바 ‘박근혜 재단’ 출신인 그가 EG까지 연결된 것이다.   

조 감사와 박 후보의 인연은 박 후보가 한때 이사장으로 있었던 영남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 감사는 영남대가 투자해 만든 영남종합금융 출신이다. 영남종합금융은 영남대 학내 분규 과정에서 최태민 목사 전처의 아들로 지목된 조순제씨가 전무로 있던 곳이다. 조순제씨는 1988년 영남대 분규 과정에서 ‘박근혜 4인방’의 한 명으로 꼽혔다. 조 전무 역시 1987년부터 1990년까지 한국문화재단 이사를 지냈다. 

지난 2월 EG가 매입한 논현동 빌딩. 대표전화 뒷자리 번호가 ‘0516’이다. ⓒ시사IN 이명익

하지만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조순제씨를 모른다고 했다. 조순제씨는 “박 후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1975년 구국선교단 이후 박 후보가 몸담은 봉사단체는 박 후보·최태민 목사와 나 세 명의 합의체제로 운영됐다”라고 주장하며, 한나라당을 직접 찾아와 폭로성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해 12월 조순제씨는 지병으로 숨졌다. 

조용생 감사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숨진 조순제씨는 회사 동료였을 뿐 잘 알지는 못한다. 그가 최태민 목사의 의붓아들이라는 것도 확실치 않은 것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EG 상임감사를 맡는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의 추천이 있었는지 묻자, 그는 “그게 글쎄요”라며 한참 뜸을 들였다. 그런 뒤 조 감사는 “(EG) 이사회에서 추천한 것으로 안다”라고 답했다. 그는 “나는 자연인이다. 어찌하다 보니 두루 감사도 맡고 이사도 맡았지 박 후보와 특별히 연결 짓지 말아달라”고 덧붙였다. 조 감사는 박근혜 후보에게 2004년 300만원, 2005년 200만원의 후원금을 냈다. 

‘박정희 사이버 기념관’으로 맺어진 정용희 EGHT 대표 

EG 쪽 인사들은 박근혜 후보의 동생 박근령씨와 박지만씨가 운영권 분쟁을 벌였던 육영재단 쪽에도 포진해 있다. 지난 10월 육영재단은 이사 두 명을 교체했다. 백기승 R2B크리에이션 대표가 박근혜 캠프로 이동하면서 4월 이사직을 사임한 데 이어 지난 8월에는 또 다른 이사가 물러났다. 바로 이인 전 EG메탈 대표이다. 이 전 대표는 2009년부터 육영재단 이사로 일해왔다. 이 전 대표의 갑작스러운 사임을 두고 육영재단에서 ‘박근혜 지우기’라는 말도 나왔다. 새누리당 친이계 한 국회의원은 “애초 육영재단에 EG 쪽 사람을 배치하는데 박지만 회장의 부인 서향희 변호사가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EG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인사가 육영재단 이사로 있다. 

육영재단과 관련해 EG 안에서 눈길을 끄는 인물이 ‘박지만의 비서실장’으로 통하는 정용희 EGHT 대표이다. 그와 박지만 회장의 인연도 ‘박정희’로 시작했다. 정 대표는 ‘뉴페이지’라는 인터넷 회사를 운영하다가 1997년 2월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www.516.co.kr)을 만들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자신은 가난한 농민의 자식이라는 닮은 점이 있다’며 박 전 대통령과 관련한 사진·휘호·연설문 등 4000여 점을 모아 홈페이지를 열었고 언론에 화제성 기사로 등장했다. 1999년 박정희 사이버 기념관은 운영난에 부딪혔다. 이때 박지만 회장이 사이트를 넘겨받겠다고 연락하면서 두 사람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EG에 입사한 그는 박지만 회장의 집사 노릇을 했다. 박근령씨와 육영재단 다툼 과정에서 용역을 동원해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박근혜 후보와 박지만 회장에 대한 명예훼손과 무고 혐의로 구속된 신동욱씨(박근령 남편)가 자신을 중국으로 납치해 살해하려는 배후로 지목한 이도 정용희 대표이다. 2008년 한때 그는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관장에 올랐고 같은 해 EG 계열사 EGHT 대표이사에도 이름을 올렸다. 

정 대표와 통화하려고 충남 본사에 연락했더니, “그분(정용희)은 서울사무소로 출근한다”라고 말했다. 서울사무소 EG 관계자는 “2008년 퇴사했다. EGHT도 계열사이긴 하지만, 정 대표 개인회사나 마찬가지다. 출근하지 않는데, 가끔 오다가다 들른다”라고 해명했다. EGHT는 욕조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데 현재 EG가 지분 31%을 가지고 있다. 대표이사에 오를 당시 서울 강북구 ㅇ아파트에 살던 정용희 대표는 이듬해 개포동을 거쳐 대치동, 일원동 등 강남 중심부로 ‘점프’ 이사를 했다. 

충남 금산에 본사를 둔 EG는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지하 1층, 지상 7층 빌딩을 매입했다. 서울사무소가 이 빌딩에 있다. 매매가는 210억원. EG는 100억원가량 은행 대출을 받았다. 박지만 회장은 청담동 자택에서 2.1㎞ 떨어진, 차로 10분밖에 걸리지 않는 이 빌딩으로 출근한다. 이 서울사무소 대표전화 뒷자리 번호는 ‘051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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