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육영재단 재임’ 무슨 일 있었나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입력 : 2012-12-01 13:53:39ㅣ수정 : 2012-12-01 14:12:02

·어린이집 여교사 ‘결혼 퇴직’ 서약에서 술시중 논란까지….
·부당 노동행위 알면서도 외면했을까.

선거 막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과거 육영재단 이시장 재임 시절 역할’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논란은 11월 27일, 민주당 문재인 후보 측 유정아 시민캠프 대변인이 박 후보가 육영재단 이사장 재임 당시 어린이집 교사들에게 ‘결혼하면 퇴사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게 한 사실을 공개하면서부터다. 유 대변인은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이야기하는 박 후보가 대변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당시 ‘사회적 통념상 어쩔 수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에 대해 후보의 개인적 의견인지 묻고 싶다”고 물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1982년 10월에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 1990년 11월에 퇴임했다. 하지만 박 후보의 육영재단 재임 당시의 일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과거 기사 자료를 살펴봐도 1990년 퇴임 전까지 박 후보의 육영재단·어린이회관 운영과 관련해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1990년 11월 15일, 박근혜 당시 육영재단 이사장이 동생 박근영에게 이사장 자리를 넘기고 부속실을 빠져나오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박 후보 자신도 육영재단 이사장으로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거의 밝히지 않았다. 여러 차례 재출간된 박 후보 자신의 일기에서 해당 시기(1982~1990년)에 자신이 이사장으로 재임하던 기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2007년 출간된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는 딱 두 문단만 거론되어 있을 뿐이다. 

박근혜 이사장 일기에도 언급 없어 

“(박 후보는) 당시 이사장이면서도 전혀 문제의식이 없었다. 우리들이 파업을 하고 농성을 했을 때도 분명히 알았을 텐데 알아도 모르는 척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인격적 모멸감에 시달릴 때도 관심이 없었다.” <주간경향>은 당시 유치원 교사로 일했던 인사를 만났다. 어린이회관의 연혁을 보면 박 이사장이 취임한 이듬해 3월 유치원 설립인가가 나서 운영을 시작했다고 되어 있지만 이 인사의 기억은 달랐다. “원래 유치원이 있었다. 교실 4개에 오전, 오후반으로 해서 8개가 운영이 되고 있었고, 당시 건물 여기저기를 불법적으로 늘려 24개를 만들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추가로 필요해서 우리들이 들어왔던 것이다.” 

미술반, 체육교실도 그때 만들어졌다. 이 인사도 결혼하면서 퇴직한다는 각서를 썼다. “당시에도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남성 직원에게는 없고 여성 직원들에게만 강요되던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됐다. 교사 중에서는 결혼하고 숨긴 경우도 있었고, 결혼을 하더라도 당장 그만두기 어려워 한 학기 더 있다가 그만두는 경우도 있었다.” 이 인사의 기억에 따르면 각서를 쓰는 경우는 당시 어린이회관 유치원 교사들에게만 해당됐다. “교사들 중에는 다른 유치원에 있다 온 경우도 있고, 또 다른 유치원에 다니는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유독 어린이회관만 그렇게 했다.” 

교사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것은 근무조건만이 아니었다. 이들은 어린이회관의 온갖 잡무에 동원됐다. “당시 오후에 과학교실이라고 해서, 서울시내 중학생들이 구경 오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중학생들이 들어오면 일괄 얼마로 계산해서 비용을 치르는데, 매표하고 피켓 들고 안내하는 일도 유치원 교사들에게 맡겼다. 매일 되풀이되는 일이었다. 낮에는 반마다 아이들을 보조교사 없이 43명씩 돌보고, 오후에는 그런 가욋일을 시켰다. 여기에 여름학교, 겨울학교라고 초등학교 방학캠프를 운영했는데, 5박6일 동안 꼼짝없이 집에도 못 들어가고 그 일을 하기도 했다. 또 겨울에는 스케이트장 가이드도 맡았다.” 그는 별도로 수당이 지급되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군인 출신 김모씨가 관장을 맡았다. 특이한 것은 얼마 안 있다가 어린이집 원장으로 온 사람도 최모 중령이라고, 이제 막 퇴역한 여군 출신이었다. 그런데 이들 관장과 원장이 들어오면서 근무조건은 더욱 가혹해졌다.” 군인처럼 교사들도 제복 착용을 강제했고, 제식훈련하는 것처럼 아이들을 다루기도 했다. 군대식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교사들에게는 심한 질책이 이어졌다. 

결국 폭발했다. 1984년 여름부터 늦은 가을 시기 교사들이 업무를 거부하고 서해안 바닷가로 떠나는 집단행동에 나섰다. 파업은 이틀 만에 끝났다. “사실 당시 교사들이 착한 편이었다. 미술교사와 체육교사들의 경우 외국에서 생활하고 온 사람도 있어 파업에 적극 참여하는 편이었는데, 유치원 교사들은 겁이 많은 편이었다. 놔두고 온 아이들이 걱정되기도 했고.” 

새누리당 측 “30년 전 자료 남아있지 않다” 

11월 29일 오후, 한 언론사를 통해 유치원 교사의 ‘술 시중’ 주장 보도가 나왔다. 해당 언론사는 나중에 이 부분을 삭제했지만 기사는 SNS를 타고 일파만파로 퍼졌다. 

육영재단 재임시절을 확인하기 위해 당시 육영재단에 근무했던 여교사들을 수소문했다. 당시 여교사는 24명. 결혼과 동시에 사회생활을 그만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접촉은 쉽지 않았다. 어렵게 당시 근무자 몇 사람과 연락이 닿았다. 1984년의 파업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어린이회관으로 실습을 나갔던 A씨(현 어린이집 원장)는 교사들의 파업으로 떠맡은 아이들 때문에 애를 먹은 기억을 갖고 있었다. “세 반 아이들 120명가량을 시청각실에 모아놓고 비디오를 틀어주는데 원래 그 나이 또래 애들이 천방지축이라 이틀 동안 진땀을 뺐던 것이 기억난다.” 파업에 동참했던 B씨(현 어린이집 원장)의 현재 생각은 조금 다르다. “지금 잣대로 당시를 평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힘들었으나 그때는 20대 초반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고 말 일도 많았다. 대부분 결혼하면서 그만뒀지,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 그만둔 사람은 없다.” B씨는 ‘술 시중 논란’과 관련해 “그런 자리는 없었다. 적어도 나는 참석한 일이 없고, 모멸감을 느꼈다든가 그런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C씨는 “누구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과장된 이야기이고, 개인적으로 이 건과 관련해 내 이름이 거론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박선규 새누리당 대변인은 “벌써 30년도 더 된 일이고, 육영재단 측에 문의해도 관련자료가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며 “설혹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박 후보가 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일까지 알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어느 개인의 일방적 주장으로 후보자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접촉한 앞의 인사는 “30년도 더 된 일을 지금 공개하는 이유는 박 후보가 여성 대통령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는데,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었던 곳에서 과연 그런 문제의식을 보여줬는지를 묻고 싶어서다”라고 밝혔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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