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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현과 현토성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한나라 무제 때 한나라의 지방제도는 군현제였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 시, 도, 군, 면 등을 두는 것과 같이 한나라는 군, 현을 두었던 것입니다. 군을 설치하고 그 군 안에 몇 개의 현을 두는 그런 제도입니다. 그런데 한나라는 군을 설치하면서 원래 한나라 땅이었던 지역과 그 외 지역을 전자는 내군, 후자는 변군이라고 하여 구분하였습니다. 이렇게 구분한 것은 그 영토를 인식하는 것과 다스리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변군 지역에는 한나라 사람 외에도 그 지역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상황에 맞도록 그 지역을 인식하고 그에 맞는 통치방식을 택해야 했습니다.


고조선이 멸망하자 옛 조선 지역에는 한의 군현이 설치되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이른바 한 사군이 그것입니다. 압록강 이북에서 요하에 이르는 지역에는 현토군이 설치되었습니다. 그런데 현토군이 설치되었다고 해서 이 지역이 모두 현토군의 영역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지금과 그 당시의 영토 개념의 차이이고, 당시에 내군과 변군과의 차이기도 합니다. 글쎄요, 굳이 비유를 하자면, 경기도와 서울처럼 중간에 빠져버리는 공간이 있다는 겁니다. 이런 것이 여러 개가 되어 결국에는 현토군의 영역이라는 것은 현토군의 힘이 미치는 곳만 영토가 되는, 일종의 그물망 같은 그런 모양새가 됩니다. 그 틈새에서 고구려소국이나 비류국 같은 나라들이 한나라에 정복되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현토군의 그 지역 지배라는 것은 식민지 지배와 같은 전면적인 지배와는 달리 인적, 물적 자원의 확보에 있었습니다. 이 지역에 진출한 한나라 사람들을 보호하고, 원하는 자원을 확보하고 이민족들의 침략을 저지하는 것이 변군의 설치 목적이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현토군의 치소를 기원전 107년에 고구려현에 두었습니다. 군치소라는 것은 오늘날의 도청소재지를 뜻하는 것입니다. 현토군의 치소가 고구려현에 있었다는 것은 경기도청이 수원에 있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이때의 고구려현은 지금의 환인지역이고, 당시에는 고구려라는 나라가 있던 지역입니다. 고구려는 이미 기원전 2-3세기 무렵에 요동고조선이 평양고조선으로 이동한 다음 힘의 공백지역으로 남은 압록강 유역에 세워진 고구려소국이란 나라입니다.


이 나라 바로 곁에 현토군이 군치소를 설치한 것입니다. 여기서 앞에서 설명한 변군 개념이 적용됩니다. 현토군이라고 해도 그 힘이 미치는 지역과 미치지 않는 지역이 있었다는 것 말입니다. 같은 지역이라고 해도 현토군의 힘이 미치는 공간은 고구려현이고, 고구려 소국의 힘이 미치는 곳은 고구려소국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소 현토군이 고구려소국을 전혀 제어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현토군은 소국의 군장을 상대로 "약"이란 것은 맺어 일정한 자원을 공급받고 그 댓가로 인수, 의책과 같은 위세품이란 것을 교부하여 그 정치체를 인정해주었습니다.


고구려소국은 바로 곁에 현토군의 치소가 설치되면서 정치적 성장에 견제를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현토군치소가 곁에 있다는 것을 잘 활용하여 실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현토군이 있는 상황에서도 주변 소국들을 병합하여 보다 큰 고구려로 성장하고 나중에는 현토군마저도 그 땅에서 몰아내게 됩니다. 고구려의 압력에 못 견딘(전쟁에서 크게 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현토군은 기원전 75년에 그 치소를 환인지역에서 신빈지역으로 옮기고 그곳에 고구려현을 세우고 현토성을 세웠습니다. ***현토성이란 지명은 이때 비로소 등장하게 되는데, 드라마 상에서는 고구려현을 군치소의 지명으로 쓸 경우 고구려라는 나라 이름과 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어 현토성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출처] 고구려현과 현토성|작성자 밝달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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