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db.history.go.kr/url.jsp?ID=tc
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3BAH_A9999_1_0003587
http://ko.wikipedia.org/wiki/%EB%8C%80%EC%9D%B8%EC%84%A0


대인선(大諲譔)

발해의 마지막 왕.
생몰 : 미상.  
재위 : 907∼926년.
가계  
      아들 : 대광현

907년 음5월 [대인선 2년] 왕자 대소순(大昭順), 후량에 사신으로 감. 
907년 [제호천황 7년] 배정(裵頲), 일본에 사신으로 감. 
908년 음1월 [대인선 3년] 전중소령(殿中少令) 최체광(崔體光), 후량에 사신 
909년 [대인선 4년] 대성악(大誠諤), 후량에 사신으로 감. 
911년 [대인선 6년] 후량에 사신 보냄. 
912년 음5월 [대인선 7년] 왕자 대광찬(大光贊), 후량에 사신으로 감.  
915년 [대인선 10년] 거란의 할저(轄底)가 투항해 옴. 
919년 [대인선 14년] 거란이 요양(遼陽)의 옛성을 수축하고 발해인 
924년 음1월 [대인선 19년 1월] 왕자 대우모(大禹謨)를 후당(後唐)에 사신 보냄 
924년 음5월 [대인선 19년 1월] 왕의 조카 대원겸(大元謙)을 후당에 사신 보냄. 
924년 음7월 [대인선 19년 7월] 거란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 발해를 침공함. 
924년 음8월 [대인선 19년 8월] 왕의 조카 대원겸(大元謙)을 후당에 보냄. 
924년 [대인선 19년] 거란을 쳐 요주자사(遼州刺史)를 죽임. 
925년 음2월 [대인선 20년 2월] 정당성(政堂省) 화부소경(和部少卿) 배구(裵璆) 
926년 음1월 [대인선 20년 1월] 거란이 부여부(扶餘府)를 함락하고 상경(上京)을 포위 
926년 음2월 [대인선 20년 2월] 거란, 발해를 동단국(東丹國)으로 바꿈.  
926년 음7월 [대인선 20년 7월] 발해의 103성, 모두 거란에 점령됨(발해 멸망)  

그의 재위 시절의 발해 거란 태조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의 팽창주의에 두려움을 느껴 신라 등 여러 나라와 연합하여 이를 견제하려 하였다. 이에 야율아보기가 925년 12월 대원수 요골(堯骨) 등을 이끌고 자신이 직접 발해를 쳐들어 왔다. 그러나 발해는 전투다운 전투도 해보지 못하고, 다음해 정월에 수도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가 포위되어 항복하였다. 이로써 발해는 건국 후 229년 만에 멸망하였다.
 

그해 7월에 있었던 거란군의 회군시에 그는 왕후와 더불어 거란 본토로 끌려갔다. 그리고 거란이 정해준 상경임황부(上京臨潢府)의 서쪽에 성을 쌓고 살았다. 그뒤 사용한 이름은 거란이 내린 오로고(烏魯古)였으며, 왕후는 아리지(阿里只)였다. 이 이름은 《요사 遼史》 국어해(國語解)에는 야율아보기와 그의 왕후가 대인선으로부터 항복받을 때 탔던 말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대인선은 처음에는 발해의 제13대 왕인 대현석(大玄錫)을 계승한 제14대왕으로 알려져 내려왔다. 그러나 김육불(金毓黻) 《당회요(唐會要)》에서 895년(乾寧 2) 10월 발해왕 대위해(大瑋瑎)에게 칙서를 내린 기사를 찾아냄으로써 대위해 대현석을 계승한 제14대 왕이었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자연히 대인선 대위해를 계승한 제15대왕으로 고쳐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契丹國志
遼史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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