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goodfriends.or.kr/history/history2.html?sm=v&p_no=14&b_no=3166&page=2


고구려의 정치 체제

* 초기의 정치체제

고구려 초기의 정치 체제는 다원적인 권력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고구려 형성의 중심 세력 집단이었던 5부는 중앙 정부의 왕권 하에 귀속되어 그 통제를 받고 있었으나, 각각의 관인조직을 유지하며 독자적인 정치체제로의 기능과 결집력을 상당히 유지하고 있었다. 계루부의 중앙 정부에는 왕 아래에 상가(相加)·대로(對盧)·주부(主簿)·우태(憂台)·사자·조의·선인 등이 있다. 
 
2세기 말, 3세기 초의 상황을 전하는 《삼국지》 동이전의 기록에 의하면, 소노부는 자체에서 그 조상신과 지역수호신·농업신 등에 제사를 지내는 등, 자치적인 정치체제로서의 면모를 강하게 유지하였고, 계루부에서도 왕족 대가(大加)들은 자신의 관인을 두는 등 휘하에 집단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당히 자치적인 여러 집단을 통합하여 왕국을 운영해 나감에 있어 자연히 제 집단의 모임인 귀족회의가 중요한 기능을 하였고, 왕국 운영에 있어 회의체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 관등제도의 확립
 
정복활동이 활발해져 광대한 지역이 병합되고, 중앙집권력이 강화되며 점차 일원적인 지배조직의 형성을 지향하게 되면서 필수적으로 중앙 관제가 정비되고 관직체제와 지방 통치조직이 확충되는 등 관료조직의 정비를 가져오게 되었다. 즉 크고 작은 집단들의 족장 세력을 왕권하에 일원적인 체제로 편제하여 형(兄)의 관계로, 확대된 영역의 수취체제를 정비하는 사자의 관계로 정비되었다.
 
6세기 후반 이후 귀족 연립 정권체제하에서는 대대로·태대형·울절·대부사자·조의·두태형 등 5인의 고위 귀족이 기밀을 장악하고 국사를 도모하여 병사를 징발하고 관직을 수여하는 등 국정을 주관하였다. 이들 중 최고위 직인 대대로는 3년마다 귀족들 간에서 선임되었으며, 세력이 강하고 신망을 얻으면 계속적인 중임도 가능하였다. 


* 관직 제도
 
구체적인 중앙 관직으로서는 외국사신을 접대하고 대외 교섭문제를 담당하는 발고추가(拔古鄒加)가 있고 이에는 대부사자가 임명되었다. 또 국자박사(國子博士)·대학사(大學士)·사인(舍人)·통사(通事)·전용(典容) 등이 있어 모두 소형(小兄) 이상이 임명되었다. 무관에는 사령관에 해당하는 대모달(大模達)이 있어 두태형 이상이 취임하였으며, 그 아래 말객(末客)은 군두(群頭)라하여 휘하 일천인을 거느렸고 대형(大兄)이상이 취임할 수 있었다.
 
전국은 주요 성(城)을 단위로 행정구역을 편성하여 지방의 큰 성에는 도독에 비할 수 있는 욕살(褥薩)을 두었고 그보다 작은 성에는 중국의 자사에 비견되는 처려근지(處閭近支) 또는 도사(道使)를 두었다.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