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goodfriends.or.kr/history/history2_1.html?sm=v&p_no=15&b_no=3192&page=3


◎ 고구려 책성 (高句麗 柵城) : 온특혁부성

고구려 책성 자리는 팔련성에서 남쪽으로 5km 떨어진 삼가자향(三家子鄕) 고성촌(古城村)에 있다. 발해시기 동경부 관할하의 한 개 주 소재지였던 온특혁부성이란 이름은 금나라때 붙여진 것이고 고구려때는 책성이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발해의 온특혁부성은 고구려의 책성을 계승하여 사용한 성으로서 고구려의 옛땅이었던 이 지역이 발해의 판도에 들어간 후에도 책성부란 이름이 계속 별명으로 불리웠던 것이다.

여기서 서남쪽으로 1km 나가면 두만강이 흐르고 그의 동·남·북 3면은 두만강 물에 의해 넓은 분지가 이루어져 있다. 이 성지는 사다리형으로 둘레가 2,269m에 달한다. 그의 동쪽과 서쪽 성벽의 길이는 710m이고 남쪽 성벽의 길이는 381m, 북쪽 성벽의 길이는 469m나 된다. 흙을 다져서 쌓은 성벽은 유구한 세월 대자연의 풍화작용과 인위적인 파괴에 의하여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 동쪽 성벽은 여러 군데 허물어 졌으며 동쪽과 서쪽 성벽의 북쪽구간은 이미 평지로 변했고 그 남쪽 구간과 남쪽 성벽은 모래에 뒤덮여 2∼3m 높이의 모래언덕을 이루었다. 현재 성안의 남쪽 구역은 밭으로 변했고 북쪽 지역에는 살림집들이 들어앉아 옛날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성안과 남쪽 성벽 바깥쪽에서 고구려 시기의 기와조각과 질그릇 파편들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1960년대 전후 이 성안에서 깨어지지 않는 완전한 연꽃무늬 와당이 발견되었는데 집안시 동태자 유적에서 출토된 연꽃무늬 와당과 똑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고구려의 특색을 담은 무늬 돋친 네모 기와들이 이 성안에서뿐만 아니라 성밖의 남쪽 구역과 동북쪽 구역에서도 많이 출토된 사실에 근거하여 학자들은 고구려 시기에 이 '책성'의 규모가 현재의 온특혁부성보다 더 컸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삼국사기 권 15 태조대왕조에는 다음과 같이 씌여 있다.

"태조대왕 46년 기원 98년 봄 3월에 왕은 동쪽으로 책성을 순행하러 떠났다. 왕은 책성의 서쪽에 있는 계산에 이르러 사냥을 했는데 흰 사슴을 잡았다. 왕은 책성에 이르러 여러 신하들과 함께 잔치를 베풀고 책성의 관리들에게 술을 권하였으며 공로에 따라 물품을 차등있게 하사하였다. 왕은 큰 바위에 책성사람들의 공적을 새겨놓았다. 겨울 10월에 왕은 책성에서 국내성으로 돌아왔다."
"태조 대왕 50년(기원 102년) 가을 8월에 왕은 사신을 파견하여 책성 사람들을 달래고 위문하게 하였다."

그 옛날에 고구려 왕이 머나먼 길을 마다 않고 친히 찾아오거나 사신을 보내어 위문하게 했다는 책성이었으니 그 규모가 꽤 컸으리라는 학자들의 판단에 수긍이 간다. 

이 성의 북쪽으로는 요나라·금나라 시대의 비우성(裵優城)이 붙어 있는데, 이 성은 고구려 책성의 북벽을 자신의 남벽으로 이용하고 있어 두 성이 자매성(姉妹城)을 이루고 있는 묘한 곳이다. 전체 둘레는 2,020m이고, 성벽은 3∼4m 정도의 높이로 아주 잘 남아 있으며 성밖으로 돌려진 도랑인 해자(垓字)도 있다.


책성 목록   http://tadream.tistory.com/14379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