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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륜의 강'을 낀 '배반의 성' 백암성은 통곡한다


성 위에 서면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앞은 까마득하게 평지다. 뒤는 큰 강이 흐른다. 태자하(太子河)다. 요동의 고구려성 백암성(白岩城)은 천혜의 요새다. 그러나 안타까운 역사를 품고 있는 성이다.

“당 나라 대군이 몰려 옵니다.”
“두려워마라. 결사 항전하라. 최후의 일인까지 싸워라. 요동성이 이미 적에 손에 넘어갔다. 우리까지 무너지면 후방의 성들이 모두 위태로워진다. 고구려가 무너진다.”
 
모두의 바람이었다. 끝까지 지켜주길 바랬건만… 성주는 백기를 들었다. 더 이상의 희생을 막으려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목숨만을 구하려 했음일까.

고당(高唐) 전쟁, 백암성 성주 손대음의 백기 투항 

645년 6월, 요동 땅 천리장성의 주요 거점성인 백암성은 허망하게 당 나라의 손에 넘어간다. 성주 손대음(孫代音)이 항전을 포기하고 당 나라 군영으로 밀사를 보내 투항했다. 그 해(정관 19년) 5월 당 태종 이세민은 고구려 원정에 나서 먼저 요동성을 함락하자 승전의 기쁨에 겨워 성루에 올라 ‘요성망월(遼城望月)’이란 즉흥시를 읊는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백암성(중국명 연주성)으로 진격한다. 그러나 쉽게 공략하지 못한다.

돌로 쌓아올린 성이 견고하고, 지세가 험하다. 고구려군은 식량도 충분하다.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오히려 속이 타들어가는 쪽은 당나라였다. 당 태종은 장수들을 다그쳤다. 대장군 설례(薛禮, 字는 仁貴)가 선봉을 자처하고 나서 고구려 군사와 백성들을 압박했다. 그리고 백암성을 손아귀에 넣었다. 당 태종은 신이 났다. 성의 이름까지 ‘암주(岩州)’로 바꿔버렸다.

백암성은 결코 쉽게 무너질 성이 아니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날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역사를 전하고파 그냥은 무너질 수 없다는 듯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백암성은 5세기에 축조된 고구려의 석성 

백암성은 랴오닝성 덩타(燈塔)시 시따야오(西大窯)진 먼커우(門口)촌 동쪽 석성산(石城山)에 있고, 5세기초 고구려가 건설한 군사산성이다. 산성의 모양은 불규칙한 방형으로 돌을 쌓아 축조했다. 내성과 외성으로 나뉘며, 서쪽에서 북쪽으로 산세를 따라 만들었다. 남쪽은 자연 절벽을 성벽으로 활용했다. 절벽 밑으로 태자하가 흐른다. 총 둘레는 2500m이고, 내성은 외성의 동남쪽 모서리에 길이 45m, 폭 35m로 지었다. 산정에는 명 나라 때 건축한 망대가 있다.

강을 끼고 있는 서쪽 능선은 완만하다. 동쪽과 북쪽 능선은 다소 가파르다. 남쪽은 강으로 떨어지는 직벽이다. 오른쪽이 길고, 왼쪽이 짧은 삼각형 모양의 산 능선을 따라 차곡차곡 돌을 쌓았다. 70여m 간격으로 치를 만들었다. 전형적인 방어성의 모양새다. 백암성의 서쪽 끝, 무너져 내린 돌들이 능선과 맞닿아 있고, 7부 능선을 따라 마을 사람들이 오가는 산길이 긴 띠처럼 북벽에서 동벽 쪽으로 이어진다.

산길에 서서 천년 전 당나라 군사가 되어 본다. 비탈을 타고 성벽을 향해 걸어본다.

“진격하라.” 대장군 설례가 명령한다.

“장군, 공략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 벽을 보십시오.” 
 
당 나라 병사들은 난감하다. 아무리 병력이 많고, 병장기가 뛰어나도 어쩔 수 없었다. 난공불락이다. 다시 성 위로 올랐다. 느림보 걸음으로 북쪽 성곽에서 동쪽 성곽으로 간다. 고구려 병사가 된다. 당나라 대군이 한눈에 들어온다. “감히 어딜 넘보냐”고 호통을 쳐본다. 성벽을 타오르는 사다리를 툭 밀면 적군도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백암성은 완벽하다.

동쪽은 북쪽보다 더 가파르다. 바르게 서서 오르기 어렵다. 긴 북벽에 이어진 동벽은 짧다. 그 끝 안쪽으로 제단 모양으로 잘 쌓아올린 돌무덤이 있다. ‘점장대(点將臺)’다. 점장대를 중심으로 내성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백암성의 가장 높은 곳, 점장대에 서면 ‘왜 성주 손대음이 이런 철옹성을 포기했을까’하고 자꾸자꾸 의문이 생길 뿐이다.

산길로 소몰이꾼이 지나간다. 온통 돌투성이에, 잡풀들이 듬성듬성하다. 시골 아저씨는 슬렁슬렁 자식같은 소를 몰고 마을로 내려간다. 저 멀리엔 염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오늘 백암성의 풍광은 여느 시골의 한 구석 그대로다. 어느 쪽에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는 바람이 강하다. 남쪽으로 내려간다. 무너진 성곽이 남아 있다.

깎아지른 절벽은 태자하와 어우러져 절경을 만든다. 
강 위엔 조각배가 떠있다. 강쪽에서의 침공은 꿈도 꿀 수 없다. 자연 성벽은 인간의 성보다 높고, 단단하다. 100m는 될 듯 하다. 이제 더 이상 성곽은 없다. 잠깐 잡목 숲을 빠져 나오다 보면 간간히 돌담의 흔적이 보인다. 중국의 기록에는 성안에 가축들에게 물을 먹이던 축수지(蓄水池)가 있고, ‘석성풍안보국사(石城風安保國寺)’란 비석이 남아 있다고 한다.

강변 넓은 공터에 내려오니 마을 아저씨가 달려 왔다. 손에는 구명 조끼가 들려 있다. 태자하에 배를 띄우고 직벽을 감상하란다. 태자하는 옛 이름은 연수, 연나라 태자 단이 아버지 희의 살해한 강. 태자하 역시 백암성 만큼이나 슬픈 강이다. 패륜의 강이다.

2400년 전 이 강은 ‘연수(衍水)’라 불렸다. 전국시대 말 중원에선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연(燕) 나라의 태자 단(丹)과 형가(荊可)라 불리는 무사는 진나라 왕을 살해하기 위한 계략을 세웠다. 그러나 진왕 살해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화가 난 진왕은 연 나라를 침공해 무너뜨렸다. 연의 태자 단과 연왕 희(喜)는 요동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훗날 태자가 돌변했다. 연수 강변에서 친아버지의 목을 베어 살해한 뒤 진왕에게 바쳤다. 그 후로 ‘연수’는 ‘태자하’로 불린다.

선양(瀋陽)을 거쳐 다음 행선지인 퉁화(通化)까지 갈 길이 바쁘다고 완곡하게 거절했다. 요양에서 서대요(西大窯)를 거쳐 백암성까지는 이렇다 할 교통 수단이 없다. 택시로 대략 1시간30분은 달려야 한다. 그나마 비포장 도로가 많다. 간혹 한국에서 오는 고구려 유적지 탐방단을 태운 관광 버스가 있다고 한다.

백암성도 지금은 성급 보호유적으로 지정돼 있다. 패륜의 강을 끼고 축조된 탓일까, 백암성은 가슴 아픈 배반의 역사를 품고 있다. 천년의 풍상을 이겨낸 백암성은 이야기한다.

“그날, 고구려를 잊지 않으리라.” <浩>

<사진설명> 백암성은 태자하를 끼고 있는 남쪽의 수직 절벽을 성을 이용한 천혜의 요새다.<김종억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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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벽 쪽에서 본 강마을
점장대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멀리 강 건너 마을이 보인다. 적의 어떤 움직임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인 셈이다.<浩>

 

수직벽과 태자하
석성산의 남쪽은 온통 수직벽이다. 태자하를 끼고 있는 이 절벽들이 자연 성곽의 역할을 했다. <김종억 자문위원>

 


백암성의 위용
백암성은 원형 잘 보존하고 있는 몇 안되는 고구려성이다. 북벽은 규모나 축조술이 뛰어나다. 어떤 공격도 막아낼 수 있을 만큼 듬직하다. <김종억 자문위원>

 

무너진 백암성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없이 촘촘하게 쌓아올린 성도 세월은 이기지 못했다. 천년의 풍상 탓에 일부 북벽이 무너져 내렸다. <浩>

 


북벽에서 동벽으로
성곽길에는 잔돌이 무수하다. 북벽에서 동벽으로 가는 길은 약간 오르막이다. <김종억 자문위원>

 

백암성의 남벽
백암성의 남쪽 절벽 바로 위에도 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내성이었던 듯 하다. <浩>

 


태자하 옆 남쪽 능선
백암성은 배수의 진을 친 모양새다. 태자하 바로 옆의 공터가 남쪽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다. <浩>

 

백암성 점장대
북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성벽을 따라 걷다보면 멀리 점장대가 보인다. <浩>

 


백암성의 잔돌과 산길
백암성이 있는 석성산의 북쪽 7부 능선 쯤에는 작은 길이 나있다. 마을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다. 전신주 옆으로 염소들이 축사로 돌아가고 있다. <浩>

 

백암성과 먼커우 마을
마을은 태자하를 끼고 있다. 백암성의 북벽 쪽에서 보면 멀리 태자하의 지류와 마을이 보인다. <김종억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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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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