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소성[南蘇城] 

남소성[南蘇城] - 민족문화대백과
 
삼국시대에 만주의 남산성자(南山城子)에 있었던 고구려의 옛 성.

400년(광개토왕 10) 후연(後燕)의 모용희(慕容熙)의 침공으로 한때 신성(新城)과 함께 빼앗겼다. 이 때 국경지방 700여 리를 잃었으나 402년에 다시 탈환한 고구려의 북서지방 요충지이다. 667년(보장왕 26)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장남 남생(南生)이 남소ㆍ목저(木氐)ㆍ창암(蒼巖) 등 3성을 들어 당나라 장수 설인귀(薛仁貴)에게 항복하였으며, 이 싸움에서 고구려 군사 5만이 죽었다. 고구려 영토 중 압록강 이북에서 항복한 11개 성의 하나로 고구려 패망 후 안동도호부에 예속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해동역사(海東繹史)』

출처 : http://enkorea.aks.ac.kr


남소성[南蘇城] - doopedia

삼국시대 중국 둥베이[東北]지방 남산성자(南山城子)에 있던 고구려의 성.
지금의 랴오닝성[遼寧省] 퉁화[通化] 북쪽에 있었다. 400년(광개토왕 10) 후연(後燕)의 모용귀(慕容歸)의 침공으로 신성(新城)과 함께 빼았겼으나, 402년 탈환한 고구려 요충지이다. 667년(보장왕 26) 연개소문의 장남 남생(南生)이 남소 ·가물(哥勿) ·창암(蒼巖) 등 3성을 들어 당나라의 설인귀(薛仁貴)에게 항복하였다. 고구려 멸망 후 안동도호부에 속하였다.

출처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52227

 
고구려현② 남소·목저성 - 한겨레 
* 남소성 부분만 가져왔음. 

한서 지리지에 설명된 고구려현 자리에서 남소수(소자하)를 따라 하류로 내려가면 신빈(新賓), 영릉(永陵), 무치(木奇)가 나오고 나중에는 혼하와 만난다. 혼하와 남소수가 만나는 곳이 요령성 무순현 장당향 고려영자촌(高麗營子村)이다. 이곳에 원수림(元帥林)과 철배산성(鐵背山城)이 있는데, 철배산성이 바로 남소성이다. 수나라가 고구려로 쳐들어 올 때 첫 싸움인 임유관 전투에서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 장군이 첫 승리를 하였다. 원수림에는 진주 강(姜)씨 시조이기도 한 강이식 장군의 묘가 있던 곳으로 전해진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출처 :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9000000/2004/04/009000000200404281829162.html


3. 남소성으로 비정할 수 있는 성 - yeohwi
"고구려의 남북도에 대한 토론"(http://tadream.tistory.com/5512)에서 발췌
 
그간 신성과 목저성 사이에 위치한 남소성은 현재까지 ‘철배산성’과 ‘오룡산성’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와 달리 田中俊明은 제2현도군치를 고구려가 탈취하고 그 근방에 세웠다고 보는 ‘구노성(舊老城)’을 지목하기도 했는데(1999: 221-224), 선생님은 철배산성이 청나라 시기의 산성이라고 하면서 오룡산성이 남소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셨습니다(17쪽).

田中俊明의 주장과 기존의 철배산성이라고 보는 주장의 오류가 있다면, 그 부분을 간략하게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답변 : 오룡산성과 철배산성, 구노성 모두 입지가 상당히 좋은 곳에 위치한다. 하지만 철배산성의 경우 하부에서 고구려 유물이 나왔다고 알려져 왔지만,『무순지구 고구려 고고의 회고』2007년 제2기에 소개된 바에 의하면, 상당히 많은 조사가 진행됐지만 고구려 시대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또한 평지성과 산성이 결합된 평산성인 구노성 역시 고구려 성곽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며, 고구려 유물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 비해 오룡산성은 신성에서 환도성까지 오는 길목에 위치한 성곽 중 가장 중요하지 않았나 싶다. 일단 포곡식 산성이라는 점, 유물이 풍부하다는 점, 주변의 봉수대 및 차단성(관애)과 함께 잘 짜여진 방어체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꼽고자 한다. 

출처 : http://yeohwi.egloos.com/v/1398143


2292) 남소성(南蘇城) - 네이트한국학

남소성에 대한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은 《資治通鑑》 권97 永和 원년(345)조에 나오는데, 慕容皝이 고구려를 공격하여 南蘇城을 함락하여 戍를 설치하고 돌아왔으며, 그 주석에 『南蘇城在南陜之東』이라고 하였다. 본서 권18 고구려본기 광개토왕 9년(399) 2월조 및 《資治通鑑》 권111 隆安 4년(400)조, 본서 권22 고구려본기 보장왕 6년(647)조와 《資治通鑑》 권199 貞觀 21년조, 보장왕 26년(667) 9월조와 《資治通鑑》 권201 당 고종 건봉 2년조 등의 기록을 통해 볼 때, 南蘇城은 木底城과 함께 요동 新城 방면과 國內城을 연결하는 통로상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현재 중국 蘇子河 상류 지역으로서, 遼寧省 新賓縣(=舊 興京) 부근 南山城子를 가리킨다.

출처 :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jabkiDetailIframe?sn=426



남소성 관련글
남소성[南蘇城] - 민족문화대백과,doopedia,한겨레,yeohwi,네이트  http://tadream.tistory.com/5513
철배산성 - 디지털고구려  http://tadream.tistory.com/5515
오룡산성 - 디지털고구려  http://tadream.tistory.com/5517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