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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압록강 유역 성곽방어체계

        - 압록강 · 요하 유역의 군사방어체계를 중심으로 -  신 광 철
       Ⅰ. 서론                                    http://tadream.tistory.com/5520
        Ⅱ. 고구려의 영역확장 과정         http://tadream.tistory.com/5519
        Ⅲ. 압록강 유역 성곽방어체계  http://tadream.tistory.com/5522
        Ⅳ. 요하 유역 성곽방어체계        http://tadream.tistory.com/5523
        Ⅴ. 결론                                   http://tadream.tistory.com/5521     
        참고문헌
 

현재까지 압록강 중 · 상류 일대에서는 약 40여개의 고구려 성이 확인되었다. 몇몇 평지성을 제외하면 대부분 돌로 쌓은 산성으로 주로 하천이나 계곡 연안 교통로상의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혼강의 각 지류에 조밀하게 분포하고 있는데, 이는 이러한 지류들이 요동방면에서 국내성으로 나아가는 교통로상의 전략적 요충지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지역의 고구려성은 국내성을 중심으로 하는 군사방어체계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면서 축조되었다고 추정된다.
 
 
1. 평지성과 산성의 도성방어체계
 
國內城(국내성)과 山城子山城(산성자산성)이 위치한 통구분지는 압록강과 노령산맥으로 가로막힌 천혜의 요새지로서 400여 년간 고구려의 수도가 위치했던 지역이다. 통구분지 서쪽 평원상의 국내성은 평상시의 도성으로 추정된다. 2.7㎞에 이르는 성벽과 궁궐터로 추정되는 대규모 건물터 등이 이를 반영하는데 성벽 단면을 발굴한 결과, 국내성은 본래 토성이었다가 이를 기초로 석성을 축조한 사실이 밝혀졌다. 더욱이 토성에서는 청동기시대 석기만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국내성 천도 이전에 이미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비해 산성사산성은 국내성 서북 2.5㎞의 산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사방이 가파른 산비탈과 절벽으로 둘러싸인 방어용 산성이다. 다만, 산성자산성 내부에 길이 90여m에 이르는 궁궐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때로는 임시 도성으로 삼기도 하였다고 추정된다.
 
이처럼 국내성기에는 국내성과 산성자산성, 곧 평지성과 산성을 한 조로 하는 도성방어체계가 갖추어져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고구려의 첫 번째 도읍이 있었던 환인분지에도 적용 가능하다. 환인분지에서 가장 험준한 五女山城은 대체로 첫 번째 수도였던 卒本城(졸본성) 또는 紇升骨城으로 비정된다. 해발 820m의 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고, 사방이 수직절벽과 높은 산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는 오녀산성은 군사방어상으로는 천혜의 요새지만, 일상적으로 거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입지조건이다.
 
오녀산성의 평지성으로는 환인댐 수몰지구의 喇哈城(나합성)이 유일하다. 나합성은 쐐기형 돌로 축조되었다는 점에서 고구려 성일 가능성이 높지만 졸본성으로 비정할만한 명확한 근거는 없다(田中俊明 1994). 이에 下古城(하고성)을 졸본성으로 비정하기도 하지만(蘇長淸 1985) 이는 오녀산 동쪽이 아니라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재고의 여지가 있다. 즉, 현재의 고고학 자료로는 평지성을 명확하게 비정할 수는 없지만, 오녀산성의 입지조건상 졸본지역에서 평지성 · 산성을 한 조로 하는 도성방어체계가 구축되었을 개연성은 매우 높다고 하겠다.
 
 
2. 도성 외곽의 호형방어선
 
노령산맥 일대의 관애 · 산성은 분포지역에 따라 5그룹으로 묶을 수 있다.
 
첫째, 대라권구하 유역의 이도구문관애와 석호관애가 있다. 양자 모두 토석혼축이며, 특히 석호관애의 경우 하류 쪽에 반원형 치와 참호가 있어 대라권구하를 거슬러 통구분지로 향하는 통로를 차단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둘째, 청하 유역의 관마장산성과 대천초소를 들 수 있다. 특히 관마장산성은 북벽 바깥에만 참호가 있어 청하를 거슬러 통구분지로 향하는 통로를 차단하던 방어시설로 파악되며 대천초소는 그 전방초소로 보인다. 셋째, 신개하 유역의 패왕조산성과 망파령관애가 있다. 신개하 하구의 패왕조산성은 혼강에서 신개하로의 진입로를 봉쇄할 수 있는 요새지이고, 상류의 망파령관애는 신개하를 거슬러 판차령으로 향하는 교통로상의 요충지이다. 넷째, 환인 지역의 성장립자산성, 와방구산성, 북구관애 등은 환인현성에서 혼강 하류방면으로 가다가 집안 경내로 진입하는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다섯째, 압록강변의 칠개정자관애와 만구노변장관애가 있다. 압록강을 항해하는 배들은 대부분 양수천자하나 외차구하 일대에 정박한 다음, 육로를 이용하여 집안시로 나아갔는데 이들 관애는 이러한 수륙로를 봉쇄하는 수상교통로상의 군사방어시설들이었다(吉林省文物志編委會 1984: 80-81).
 
노령산맥 일대의 관애와 산성은 혼강에서 통구분지로 나아가는 거의 모든 교통로를 봉쇄하고 있고, 압록강변의 관애 역시 압록강을 거슬러 통구분지로 향하는 수륙로를 차단하고 있다. 이들은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구축된 방어시설로서(채희국 1985; 박창수 1988) 도성 외곽에 활처럼 분포되어 있다는 점에서 도성 외곽의 호형방어선이라 명명할 수 있겠다.
 
 
3. 혼강 우안의 호형 · 축선방어체계
 
혼강 우안 일대의 성 가운데 평지성인 환인 하고성, 나합성, 동고성 · 서고성, 통화 적백송고성 등은 군사방어시설로 단정할 만한 명확한 근거가 없다. 특히 통화 적백송고성은 고구려 시기에도 사용되었는지 불분명하며, 동고성 · 서고성은 아직 흔적조차 확인되지 않았고, 나합성도 고구려 시기 석성이라는 점만 밝혀졌을 뿐이다. 이들을 제외하면 이 일대의 성은 군사방어시설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환인지역의 성 가운데 현재의 교통로로 보아 마안산성은 소자하나 태자하 유역에서 환인분지로 들어오는 교통로, 고검지산성은 태자하에서 환인분지로 들어오는 진입로의 길목을 차단하던 군사방어시설로 추정된다.
 
혼강 지류인 부이강 일대에서는 8개의 산성이 확인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상류의 고 각산산성은 부이강 상류에서 부이강 하류방면과 통화방면 교통로가 나뉘는 분기점에 위치하였다(王錦厚·李建才 1990). 이를 제외한 이 일대의 산성은 두 그룹으로 세분되는데 부이강 상류에서 하류 방면으로 내려가는 교통로와 관련된 흑구산성, 전수호산성, 사도구산성, 건설산성 등이 그 하나이고, 부이강 상류에서 통화현성으로 향하는 교통로와 관련된 부이강 지류 삼과유수하변의 의목수고성, 남태고성, 태평구문고성 등이 다른 하나이다.
 
그 밖에 둘레 2.7㎞의 대형 석성인 통화 자안산성을 꼽을 수 있다. 자안산성은 주변에 고구려 초기 적석총이 상당수 분포하고 있으며, 휘발하~용강산맥~통구분지, 부이강 상류~나고하~통구분지를 거치는 교통로 상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서 단순한 군사시설이라기보다는 지방지배의 거점으로도 기능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혼강 서북부의 여러 성들은 태자하나 소자하에서 환인분지 서부로 들어오는 교통로, 소자하 상류에서 부이강이나 나고하를 거쳐 혼강으로 향하던 교통로, 휘발하 유역에서 용강산맥을 넘어 혼강으로 향하던 교통로 등을 각각 차단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노령산맥 일대의 관애 · 산성이 도성 외곽의 군사방어시설이었다면, 이들은 압록강 중류일대 전체를 방어하기 위한 군사방어선이라 할 수 있다. 즉, 혼강 우안의 성들은 전체적으로 도성 외곽의 호형방어선과 국경지대의 축선방어체계의 과도기적 양상을 보여줄 뿐 아니라, 공간상으로는 국경지대의 축선방어체계를 도성 외곽의 호형방어선으로 전환시키면서 양자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余昊奎 1998: 47).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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