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afe.daum.net/alhc/ALGC/3345?docid=CxSEALGC334520110117231607 
* 원래 제목이 "예맥족에 대한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인데 바꿨습니다.

예맥족
산중호걸

1. 
이에 앞서 왕망이 고구려 병력으로 호를 치려 하자 고구려가 거부했는데 군에서 강제로 시키려 하자 모두 변방으로 도망갔다. 이들은 범법하는 도둑으로 변했는데 요서 대윤 전담이 이들을 추격했으나 오히려 죽음을 당했다. 주군이 돌아와 고구려후 추(유리왕)를 책망하자 엄우가 상주하여 "맥인이 범법한 것은 고구려후 추가 적극 나서서 말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다른 마음이 있는 듯 하니 주군에 명하여 이들을 달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지금 그들은 대죄를 지은 것이 두려워 반란을 일으켜 부여 족속과 연합할까 두렵습니다. 흉노도 아직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예맥이 거듭 일어난다면 이것이야말로 큰 걱정거리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왕망이 달래지 않자 예맥이 배반하고 나섰다.
- <한서> 왕망전 -
 
위 기록을 보면 한 기록이 고구려를 때로는 맥인이라 부르고 때로는 예맥이라 부른 다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즉 맥족과 예맥족이 함께 사용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와 예맥을 같은 족속으로 기술한 사료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즉 예, 맥, 예맥 이 혼동되어 사용된 것이다. 그런데 예와 예맥이 그리고 맥과 예맥이 함께 기술된 기록은 있어도 예와 맥이 혼동되어 사용된 기록은 없다. 이것은 예족과 맥족이 초기에는 다른 부족이었음을 시사한다.
 
2.
<후한서> 의 기록을 살펴보면 고조선과 부여를 구성하는 부족은 예족임을 알 수 있다. 다음의 기록을 보자

(1) 일찍이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기자는 (조선 백성에게) 예의와 농법과 양잠법을 가르쳤다.
- <후한서> 예전 -

(2) 부여국은 현도의 북쪽 천 리쯤에 있다. 남쪽은 고구려, 동쪽은 읍루, 서쪽은 선비와 접해 있고, 북쪽에는 약수(흑룡강)가 있다. 국토의 면적은 사방 2천 리이며, 본래 예족의 땅이다.
- <후한서> 동이전 부여조 -

조선이 망한 후 그땅에 부여가 일어섰으니 부여와 조선을 구성했던 부족은 모두 예족임을 알 수 있다.  
        [아래 댓글 참고]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조 의 기록에는 부여의 도장에 '예왕의 도장' 이란 글귀가 있다고 하였다. 이 역시 부여를 구성하는 부족이 예족임을 보여준다. 반면 고구려는 맥족으로 기술한 기록은 있어도 예족으로 기술하지는 않았다. 다음은 <후한서> 고구려전의 기록이다.
 
(3) (고구려가 현도군을 치자) 광양, 어양, 등에서 3천여 명의 기마병을 출동시켜 함께 (현도군)을 구원케 했으나 맥인은 벌써 돌아가 버렸다. - <후한서> 고구려전 -
 
위 기록은 고구려를 맥인으로 단칭하고 있다. 즉 고조선세력은 예족으로 고구려 세력은 맥족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예족과 맥족 계열은 예맥족으로 불리기도 한다. <후한서>는 부여를 예족의 땅이라 하였는데 <삼국지> 는 '부여는 본래 예맥의 땅이었다.' 라고 적고 있다. 또한 앞서 인용한 <한서> 의 기록은 고구려, 맥, 예맥을 같은 족속으로 기술하고 있다. 즉 예맥이란 예족과 맥족 세력을 통합한 명칭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예족과 맥족은 어떤 과정을 거쳐 통합된 것일까?
 
3.
지금 부여의 창고에는 옥으로 만든 벽(둥근 옥), 규(홀), 찬(옥잔)등 여러 대를 전해오는 물건이 있어서 대대로 보물로 여기는데, 노인들은 '선왕께서 하사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위략 : 그 나라는 매우 부강하여 선대로부터 일찍이 적에게 파괴된 일이 없다.] 그 도장에 '예왕의 도장' 이란 글귀가 있고, 나라 가운데에 예성이란 이름의 옛 성이 있으니, 아마도 본래 예맥의 땅이었는데, 부여가 그 가운데에서 왕이 되어 살며 스스로 '망명해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생각하건대 이유가 있는 것이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조 -
 
위 기록에서 예와 예맥이 같은 종족으로 기술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부여의 왕가가 스스로를 '망명해 온 사람' 이라고 생각하는 구절에 눈길이 간다. 왜 부여의 왕가는 스스로를 '망명해 온 사람' 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그 의문은 부여의 건국신화를 보면 풀린다.
 
"옛날 북방에 고리(槀離)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 왕의 시녀가 임신을 하자 왕이 죽이려 하였다. 그러자 시녀가 말하기를 닭 알 크기의 기운이 (하늘에서) 자기에게 내려와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시녀가 아이를 낳게 되자 왕이 이 아이를 돼지우리에다 버렸으나 돼지들이 따뜻하게 해주었고, 마굿간에 버렸는데도 따뜻하게 해주어 죽지 않았다. 왕은 그 아이가 하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여 그 시녀에게 기르게 하였다. 그 아이의 이름은 동명(東明)이라고 했는데 동명은 활을 잘 쏘았기 때문에 왕이 이를 우려하여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래서 동명은 남쪽으로 몸을 피하여 시엄수(施掩水)에 이르러 활로 물을 치자 고기와 자라들이 떠올라 다리를 놓아서 동명은 무사히 건널 수가 있었다. 그리고 고기와 자라들은 흩어졌고 동명을 추격하던 군대가 더 이상 추격할 수 없었다. 이후 동명은 수도를 건설하고 부여를 다스렸다."(『삼국지』「위서」부여전 주석)
 
<삼국지> 위서 부여전에 기록된 위 기록은 부여의 시조 동명이 고리국에서 왔다고 전하고 있다. 부여의 왕가가 자신들을 망명해 온 사람이라 생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동명은 고리국에서 기존세력과의 정치적 마찰 때문에 고리국을 탈출하여 남으로와 부여를 세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고리란 명칭에 대해서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지병목은 <고구려 성립과정고>에서 소수맥이 구려별종이라 불리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여 맥족의 원명은 구려 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원길은 <한민족의 기원과 형성에 관한 북방기원설>에서 고리와 구려는 모두 코리의 음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몽골의 광활한 대초원인 매넨긴탈 동변에 위치한 할힌골솜의 구전설화를 소개하고 있다. 다음은 할힌골솜에 구전되고 있는 설화의 내용이다.
 
“이 할힌골 유역은 농경과 어로, 수렵과 목축을 모두 겸해서 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이 지방은 중국이나 만주로 이동하는 길목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옛날부터 수많은 민족이 이 지방을 거쳐갔다. 아주 오랜 옛날에 코리 사람들이 이곳에 살았다. 보이르호수가에는 지금도 코리왕의 초상이라고 하는 석인상이 남아있다. 이 석인상을 경계로 동쪽에는 코리사람이 서쪽에는 몽골사람이 살았다. 이 곳 할힌골에 살고 있는 몽골인과 코리족간에는 왕래가 잦았으며 서로 결혼을 하기도 하였다. 예컨대 초원에서 양쪽의 여자들이 오줌을 누다 서로 만나면 몽골여자들은 왼쪽 손을 코리족 여자들은 오른쪽 손을 흔들어 서로 간에 우의를 표시했다. 코리인들은 할힌골에 성을 쌓고 살았다. 그 성터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전에 그 성터가 어딘가에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잊어버려 기억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코리사람들은 이곳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고 동남쪽으로 이동해 갔다.”
 
할힌골섬에 살던 코리족 사람들이 동남쪽으로 이동해 갔다는 구전설화의 내용은 홀승골성에 있던 북부여가 동해가에 있던 가섭원으로 이동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연상하게 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북부여를 건국한 이는 해모수이다. 해부루는 그의 아들로 해모수의 뒤를 이어 북부여의 왕이 되었다. 이때 대신 아란불이 꿈에 천신이 나타나 가섭원으로 도읍을 옮기라고 했다고 말한다. 해부루는 아란불의 건의대로 가섭원으로 이동하고 국호를 동부여로 바꾼다.
 
이준영은 <고구려 국가기원에 대하여> 라는 글에서 고리국이 북부여와 동일국이라 하고 있고, 박원길 역시 <한민족의 기원과 형성에 관한 북방기원설>에서 고리국 = 북부여 = 맥족 이 모두 동일국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명은 해부루와 동일인물로 볼 수 있다. 고리국에서 내에서 기존세력과 갈등관계에 있던 동명은 동남쪽으로 이동하여 동부여를 건국하였다. 동명은 코리족 출신이고 맥족은 코리족의 또다른 이름인 것이다.
 
4.
지금까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 할 수 있다.
1. 예족은 조선을 이루었던 만주와 한반도의 토착민족이다.
2. 맥족은 몽골초원을 달리던 유목민족이었고 조선이 붕괴된 이후 만주가 힘의 공백지대가 된 틈을 이용해 이동해온 종족이다.
 
이 맥족에 의해서 부여와 고구려가 건국되었다. 부여의 건국시조 동명은 코리족 출신이고 고구려를 세운 주몽은 <양서>에 동명의 후손이라 기록되어 있는 만큼 역시 맥족 출신이다. 예맥은 이러한 맥족이 만주 지역에 흩어져 사는 예족을 통합하면서 불리워친 명칭이다. 만주지역을 통일한 고구려는 맥족과 예족의 통합과정을 통해서 형성된 국가인 것이다.
 
* 근초고왕을 보니 예맥족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더군요. 그래서 예맥족에 대해서 궁금해 졌습니다. 이글은 제가 2007년에 여러가지 책들을 보고 정리한 글입니다. 그때는 제가 우리민족의 기원, 말갈, 몽골족과 우리민족과의 관계 등에 관심이 많았을 때였거든요. 지금보니 많이 부족한 글입니다. 회원님들은 예맥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예맥족의 정체, 예족과 맥족은 과연 다른 종족인지 등등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요?



미주가효 
예맥이 초기에는 별도의 종족이었다가 (아마도 고구려 시기 맥족의 주도 하에) 통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고조선이 망한 후 부여가 건국되었다' 라는 부분은 재고를 요합니다. 고조선이 망했다는 의미가 위만조선의 멸망을 뜻하는 것이라면, 위 표현은 문제가 있습니다. 부여는 대략 진시황 무렵인 기원전 3세기 경에도 그 존재가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는 고조선이 멸망하기 전입니다.
신고
산중호걸 11.01.19. 09:56
지적 감사합니다. 고조선이 망한후, 북부여의 일부세력이 남하해 동부여를 세웠다는 것이 더맞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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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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