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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인가 4 : 선비족의 동해안 이동 루트

우리는 누구인가 1 : 고구려-전연의 전쟁 1 - 송진완  http://tadream.tistory.com/4450
우리는 누구인가 2 : 고구려-전연의 전쟁 2 - 송진완  http://tadream.tistory.com/4451
우리는 누구인가 3 : 선비족은 누구인가? - 송진완  http://tadream.tistory.com/4453


굵은실선 : 모용황 주력부대
점선 : 전연 특공연대
가는 실선 : 고구려 고무장군의 추격로

이번 칼럼에서는 지난 시간에 잘못 얼버무렸던 부분을 바로 잡을까 합니다. 고구려가 선비족에게 유린당하는 과정에서 기억으로만 추정하다보니, 제가 참고하고 있는 책 [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의 내용을 잘못 전달한 점이 있어서..아예 책의 해당부분을 스캔해서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지금 보시는 그림은  책의 저자인 장한식씨가 세운 가설을 설명하는 것으로서, 선비족이 고구려를 어떻게 침공했고, 특공연대가 어떻게 신라 땅으로 흘러들었나 하는 루트를 표현한 삽화입니다.
 
굵은실선과 점선은 전연 모용황 군대의 고구려 이동루트 입니다. 굵은실선은 모용황이 직접 이끄는 주력부대였고, 점선이 바로 전연 특공연대의 루트입니다. 삼국사기등 문헌에 의하면 왕우-장사라는 두명의 장군이 이끌었다고 합니다. 가는 실선은 고구려 고무장군의 추격로 입니다.

그림의 설명을 좀 드리겠습니다. 보시다시피 모용황의 군대는 양동작전을 폅니다. 옥저성까지는 주력과 특공대가 함께오다가 옥저성에 이르러 두갈래로 날개를 폅니다. 이처럼 양동작전을 구사한 이유는 고구려의 수도 환도성으로 이동하기 위한 루트가 북로와 남로 2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전선형성의 가능성이 2곳이었습니다.
 
이때 북로는 남로에 비해 비교적 평탄했고 남로는 험준한 산지가 많았습니다. '2가지 루트중에서 어느곳으로 주력군을 보낼까'.... 고구려군은 당근 고민했겠지요. 그리고 상식적으로 판단했겠지요.  기마병이 대부분인 전연의 군대는 산지보다는 평탄한곳에 주력부대를 파견할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고국원왕의 동생인 고무장군이 이끄는 5만의 고구려 주력군은 북로에 대기하고, 고국원왕은 1만명 정도의 상비군으로 험준한 남로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전연 모용황의 이복형 모용한(募容翰)은 작전참모로서 고구려의 허를 찌를것을 제안하고, 모용황은 상당한 리스크를 안고 모용한의 작전을 승인합니다. 이 시대에 중국중원을 휩쓴 유목민족이 분명 야만족은 아닙니다만, 보시다시피 위험한 전술을 흔쾌히 선택하는 등 매우 터프합니다. 50:50의 확률이었죠. 잘되면 대박이고 못되면 전멸입니다. 바로 이러한 야인적인 호방함때문에 그들이 세운 왕조의 역사는 길어야 몇십년이었습니다. 전연도 40여년 남짓 존속했을뿐입니다.

어쨋거나 저쨌거나, 고구려의 허를 찔러 험준한 남로로 이동한 전연의 주력군 4만여 기마병은 용케 산악지대를 통과하여 고구려 1만 예비병력을 순식간에 제압하고 환도성을 유린합니다. 고국원왕은 어안이 벙벙한채 깊은 계곡으로 도망갑니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주력군과 맞딱드린 전연의 특공대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들은 분명 자신들이 양동작전의 미끼였다는것을 알았을겁니다. 더구나 고구려의 주력군 5만명과 붙어봐야 승산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정면으로 돌파하지는 않고 충돌직전에 방향을 남쪽으로 틉니다.(위 그림참조) 자신들의 주력군과 합류하려는 의도였을겁니다.
 
그러나 고구려군이 그냥 도망가게 놔두지 않았을겁니다. 고구려는 당시 동북아시아의 군사대국으로서 농경이 주업이 아니라 주변을 약탈하는 것이 최대 국가사업이니 터프하기는 전연과 매한가지였을겁니다. 곧 전연의 특공대를 따라잡았고 다급해진 특공대는 본진과 합류하지 못하고 한반도 이남으로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개마고원을 넘어 정신없이 도망가던 특공대는 얼마후 고구려군이 더 이상 추격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고구려 주력군도 그때는 이미 수도 환도성이 함락된것을 알고 전연의 주력군쪽으로 이동했을테지요.
 
전연 왕 모용황은 고국원왕의 항복을 받고자 했으나, 고국원왕은 항복요구를 거절합니다. 고무장군의 주력군만 도착한다면 이 치욕을 씨을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모용황도 이를 잘 알고있었습니다. 항복은 받지 못했지만 충분히 고구려의 기를 꺽었고, 더구나 더이상 시간을 지체한다면 다른 유목민족의 침공을 받아 빈집털이를 당하거나, 고구려 주력군과 맞붙어 자칫 퇴로마저 차단될 위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용황은 용의주도하게 고국원왕의 마누라-엄마등 수많은 인질과 고국원왕의 아버지 미천왕의 시신까지 파혜쳐 들쳐업고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고구려군의 추격을 저지시키기 위한 볼모였던 것이죠... 고국원왕은 비록 항복을 하진 않았지만, 인질과 미천왕의 시신을 돌려받기위해 전연의 신하국이 될것과 조공을 바칠것을 모용황에게 맹세하게됩니다.
 
이때..하나 짚어봐야 될것이 있죠...아까 개마고원을 넘어 한반도 남쪽으로 도망간 전연의 특공대는 어디로 갔을까요? 방향을 돌려 전연으로 복귀하기란 불가능했을겁니다. 모용황에게 철저히 유린당한 고국원왕이 퇴로를 열어줄리도 없거니와 선비족 스스로 복귀가 불가능하게 되었을음 깨달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계속 도망갔을겁니다. 개마고원을 넘으면 바로 동해안의 평탄한 육로와 만나게되고 이길로 바다를 따라 달리면 부산까지 갑니다. 오늘날 동해선 철도가 바로 이 루트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십여년후 한반도 남쪽산골의 시골국가 신라에서 갑자기 북방유목민족의 문화가 발생합니다. 이것이 본 컬럼의 요지이지요...고구려와의 전쟁중에 이탈한 선비족 군벌이 신라까지 도망가 왕권을 찬탈한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선비족 특공대의 장군은 왕우와 장사라고 했는데, 왜 제가 지난칼럼에서 모용한이 특공대를 이끌었다고 했을까요? 다음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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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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