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192723

[민족의 혼,고구려는 지금 ⑷] 양주 독바위와 도락산 보루
국민일보 | 기사입력 2005-01-25 17:35 | 최종수정 2005-01-25 17:35


경기 양주지역의 고구려 보루들은 능선을 따라 남북 방향으로 배치돼 있다. 임진강 유역의 성과 보루가 강을 따라 동서 방향으로 배열된 것과 비교된다. 임진강 보루가 강을 건너기 위한 교두보나 적군의 도하를 차단하기 위한 방어기지 역할을 위해 강을 따라 형성된 반면 양주 보루는 육상 교통로 확보와 적의 이동로 차단을 위해 산맥을 따라 설치됐기 때문이다.

양주 지역은 전회에 소개한 임진강,한탄강,한강변 고구려 유적지들에 비해서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강변 유적지들은 그나마 3∼4곳이 발굴조사를 끝난 상태지만 양주지역의 18개 보루는 아직 한곳도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일 찾아간 회천읍 독바위보루나 광적면 도락산 2보루 모두 부근에 들어선 채석장에 포위된채 살이 깎여나가고 있었다. 고구려군사들의 함성 대신 돌을 깨는 소리만 요란했다.


◇ 채석장에 허물어지고 있는 독바위보루

독바위 보루는 천보산맥으로 둘러싸인 양주 분지 한가운데 우뚝 솟은 구릉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해발 181.1m에 불과하지만 주변에 산이 전혀 없어 주변 보루 10여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서울대 박물관 양시은 연구원은 “지형적 위치를 볼때 양주 보루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루를 떠받치고 있는 암벽은 진한 녹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어 5㎞나 떨어진 곳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채석으로 허옇게 깎여나간 부분이 흉해 보일까봐 단장한 것이라고 양 연구원이 밝혔다. 그러나 푸른 잎이 져버린 겨울산과 수확이 끝난 누런 논 때문에 녹색 암벽은 마치 거대한 철제 골조물처럼 흉물스러워 보였다. 채석장 광고판이 즐비한 길을 100m가량 따라 들어가 보루 암벽 밑에 도착했지만 수천평 규모의 채석장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루 정상으로 올라가는 동안에도 채석 작업이 계속됐다. 쿵꽝거리는 소음이 요란했고 진동이 발끝에 전달돼 산이 무너질 것 같았다.

양 연구원은 “도락산 보루는 화강암 암벽 위에 지어졌다. 1998년 첫 조사 당시 이미 서쪽 절반 정도가 사라진 상태였다. 남쪽과 서쪽도 허물어졌을 것 같다”며 놀란 듯 자주 걸음을 멈췄다.

둘레는 150m,성벽 높이 2∼3m 도락산 보루는 1998년 토지박물관 조사에서 고구려 토기 2점과 집수시설 흔적,건물벽체 일부로 보이는 붉은색 소토덩어리가 발견됐다. 지금은 땅 이곳 저곳을 파도 토기 파편은 물론 성벽 흔적을 찾아내기는 쉽지않았다.

양 연구원은 “양주 지역 유적은 고구려 핵심 교통로로서 학술조사가 이뤄져야하지만 어디도 관심을 두지않고 있다. 학술조사를 하기도 전에 성벽이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다”며 돌출된 1m 가량 성벽을 아쉬운 듯 더듬었다. 보루를 내려온 뒤 고구려 유적이 있는 걸 아냐고 묻자 채석장 관계자는 “산 꼭대기에 고구려 유적이 어떻게 있을 수 있냐”고 퉁명스럽게 반문했다.


◇ 성돌로 군용 참호 만들어

경기 양주 광적면 도락산 2보루는 해발 426.3m 정상부에 위치한다. 1보루에서 동북쪽으로 1.6㎞ 떨어져 있다. 불곡산 보루 8곳을 한꺼번에 볼 수 있고 광적면 일대 움직임도 한 눈에 들어온다. 둘레 170m 2보루는 지표조사 당시 보루 안에서 장동호(넓적목를 비롯한 다량의 고구려 토기편과 벽체 일부였던 것으로 보이는 소토덩어리가 발견됐다. 또 건물지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둥 홈과 용도를 알수 없는 철제품도 나왔다.

1998년 발굴 당시에는 채석장에서 보루까지 10분이 채 안되는 거리였지만 지금은 대규모 채석이 계속돼 채석장이 점점 낮아져 보루까지 가는데 30분 가까이 걸렸다. 산을 오르던 양 연구원은 “지역자치단체가 유적 보호 조치는 ‘나 몰라라’ 하고 세수가 되는 석재 채취는 이 산 저 산 곳곳에서 허가하고 있는 것 같다”며 숨을 몰아쉬었다.

토지박물관 조사단은 지표조사 보고서에서 도락산 2보루가 천보산과 불곡산,도락산 일대 유적 중 보존상태가 가장 좋고 고구려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 유적 아래 군사시설이 들어서고 보루 아래 골재채취가 이뤄지면서 그 형태조차 찾기 어려웠다. 채석장 안내판은 채석장 규모가 무려 5만여평이라고 표시하고 있었다.

성벽 높이는 4∼5m 정도이나 그 중 석축이 된 부분의 높이는 2m 내외. 축성부를 포함해 전체적으로 약 70∼80도 정도의 급경사를 이루는 굽도리 양식이었다. 성벽은 아차산 보루와 마찬가지로 경사면을 ‘ㄴ’ 자 형태로 파고 외부에만 석축을 쌓은 형태였다.

성돌을 빼 참호를 만들고 비와 바람에 조금씩 허물어지면서 현재는 성벽 1.2m 정도만 남았고 10단 내외 석축 성벽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양 연구원은 “예비군들이 성돌을 빼 참호를 만들었다. 발굴 당시에는 그래도 성벽이 제대로 보존돼 있었는 데 이제 거의 다 허물어지고 말았다”며 참호에 박힌 성돌을 가리켰다. 


양주=강주화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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