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193515

[민족의 혼,고구려는 지금] 백제 견제용 전초기지 ‘보루’…시설과 병력의 규모는?
국민일보 | 기사입력 2005-02-01 17:07 | 최종수정 2005-02-01 17:07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장수왕 63년에 고구려 군사 3만명이 백제를 침공해 개로왕을 아차산에서 참수했다. 아차산 일대는 고구려의 전진기지나 다름없었다. 아차산에는 모두 15개의 고구려 보루가 확인됐다. 이 가운데 고구려군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은 구의동 보루,제4보루,홍련봉 보루 등 일부에 불과하다.

제4보루의 경우 12개의 온돌 흔적이 발굴됐으나 장비와 무기가 남아있지 않아 군사수와 배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구의동 보루를 통해 4보루의 군사 편제를 짐작할 수 있다. 구의동 보루에는 철로 만든 칼 2자루와 철모 9점,철솥 4점,철촉 1300여점 등이 출토됐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참고하면 군사수는 철모수와 거의 일치한다. 

따라서 구의동 보루는 최소 9명,최소단위의 부대가 주둔했던 전초기지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구의동 보루는 온돌시설을 포함한 방형 구획의 면적이 14평 정도로 확인됐다. 이를 기준으로 둘레 300m의 성벽 내부에 13∼18평 규모의 온돌이 12개 확인된 제4보루에 적용하면10명씩 10개의 단위부대가 주둔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또 지난해 고려대 매장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 결과,아차산 홍련봉 제1보루는 한강을 경계로 중랑천변의 평지를 방어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100명 정도의 군사가 주둔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포함해 아차산 일대에 500m 간격으로 분포돼 있는 고구려 보루는 모두 15개로 최소 1500명의 병사들이 주둔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 보면 이 규모의 군사는 ‘단(團)’의 편제에 속한다. 그러나 보루의 내부가 막사용 건물로 구성되고 부대시설은 없는 점으로 미뤄 풍납토성에 비해 군사적으로 덜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다. 최종택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고구려가 일정기간 한강 북안의 구의동과 아차산 일원에 주둔하면서 백제를 견제하기 위한 거점”이라고 설명했다.

이광형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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