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치상지 - 위키

백제 2013. 4. 25. 13:34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D%9D%91%EC%B9%98%EC%83%81%EC%A7%80


흑치상지

흑치상지(黑齒常之, 630년 ~ 689년)는 백제의 의자왕 때 달솔을 지낸 백제 · 당나라의 무장이다.


생애

백제의 장수로서

1929년 중국 낙양(洛陽)에서 아들 준(俊)의 것과 함께 출토된 그의 묘지명에 따르면, 흑치상지는 원래 백제의 왕족으로서 흑치 지방에 봉해졌기 때문에 흑치씨가 되었다고 한다. 증조부의 이름은 문대(文大), 조부는 덕현(德顯), 아버지는 사차(沙次)이며, 흑치상지의 어릴 적 이름은 항원(恒元)이었다. 《신당서》및 《삼국사기》에 입전된 그의 열전에서는 의자왕 때 벼슬은 달솔로서 풍달군(風達郡)의 군장(郡將)을 겸하고 있었다고 적었다.

660년 당(唐)의 소정방(蘇定方)과 신라의 김유신(金庾信)이 각자 지휘하는 18만 나ㆍ당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해, 수도 사비성을 점령한 뒤 소정방에게 항복하였다. 하지만 당의 소정방이 의자왕을 포로로 삼아 온갖 모욕을 주고 군사를 풀어 젊은이들을 죽이는 등 갖은 약탈을 일삼자, 두려움을 느낀 그는 10여 명의 장수와 함께 임존성(任存城)으로 도망쳐 백제 부흥운동에 가담, 당에 항거했다. 이때 그를 따르는 무리가 열흘 만에 3만 명이나 모였다고 한다. 소정방은 흑치상지를 치려 했으나 패배했고, 흑치상지는 그 기세를 몰아 2백여 성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661년에서 663년 무렵에 백제 부흥군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 부흥군의 수장이었던 귀실복신(鬼室福信)이 함께 거병했던 도침(道枕)을 죽이고 전권을 장악했다가 다시 풍왕(豊王)에게 살해당하는 등 혼란이 거듭되었고, 마침내 663년 백강 어귀에서 당병에게 대패한다(백강구 전투). 이 무렵 당 고종의 계속되는 초유(招諭)를 받고 있던 흑치상지는 결국 고종의 초유를 받아들여, 함께 백제부흥군 편에서 싸우던 별부장 사타상여와 함께 당에 항복했다. 이때 그는 당으로부터 좌령군원외장군(左領軍員外將軍)ㆍ양주자사(佯州刺史)로 임명되었으며, 유인궤의 주선으로 백제 부흥군의 마지막 근거지였던 임존성 공격에 앞장서는 등 당의 장수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당의 장수로서

뒷날 670년 티베트의 토번 왕조와 대비천에서 겨룰 때 토번의 명장 가르친링(喝爾欽陵, 논흠릉(論欽陵))에게 당군이 완패하였는데, 일개 부장의 신분으로 500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토번군을 기습해 추격을 막은 것은 흑치상지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후에 연연도 대총관(燕然道大聰管)이 되어 이다조(李多祚) 등과 함께 돌궐과 싸웠다. 좌감문위 중랑장(左監門衛中郞將) 보벽(寶壁)이 끝까지 돌궐을 추격하려 할 때 황제가 조서를 내려 흑치상지와 함께 치라 하였으나 보벽이 홀로 진격하여 전군이 궤멸당하였다. 이에 보벽이 옥리에 내려 죽이고 흑치상지도 공이 없음을 문죄당하였는데, 주흥(周興) 등이 흑치상지가 응양장군 조희절과 더불어 반역했다고 모함하였다. 이에 체포되어 옥에 갇혔다가 689년 교수형에 처해졌다.


관련 작품

드라마
《삼국기》(KBS, 1992년~1993년, 배우 : 이한수)
《대조영》(KBS, 2006년~2007년, 배우 : 최상훈)

도서
《대장군 흑치상지》(산마루, 2012년 10월, 저자 : 신규식)


흑치씨의 유래

흑치상지 묘지명에는 흑치씨의 조상을 백제의 왕족 출신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흑치를 성으로 삼게 된 이유를 흑치(黑齒) 지방에 책봉되었기 때문이라 설명하고 있다. 고대인의 인명 및 성씨는 한문의 뜻이 아닌 음차 또는 훈차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노중국 교수는 흑치를 검은니의 훈차로 설명한다. 이 주장에 따르면 黑은 검다는 의미로 금(今)을 훈차한 것이며 齒는 내(川)라는 의미로 물(勿)을 훈차한 것으로, 백제 금물현(今勿縣 : 충남 덕산)으로 비정된다.[1]

한편 이도학은 흑치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중국 사료에 등장하는 흑치국의 위치인 필리핀으로 비정하고 있으며[2], 비슷한 논리를 적용하여 이를 검게 물들이는 문화가 존재하는 지방을 흑치국이라 단정하는 견해가 누리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3]


주석

1. 노중국, 《백제부흥운동사》, 일조각, 2003, 93-94쪽
2. 이도학, 《백제장군 흑치상지 평전 - 한 무장의 비장한 생애에 대한 변명》, 주류성, 1996, 51~52쪽
3. 이를 검게 물들이는 문화는 일본, 베트남, 라오스, 타이, 중국의 운남성의 소수민족에서 찾을 수 있다.

참고 자료

KBS 역사 추적, '비운의 무장, 흑치상지. 그는 배신자인가', 2009-06-15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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