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log.naver.com/spiritcorea/130046547355
"하나도 모르고 쓰는 역사 이야기<97>후고려기(後高麗記)(10) - 광인"에서 태백산성 부분만 가져왔습니다.


태백산성

천 명이 넘는 발해인과 철리인(철리말갈?)이 일본에 도해한 이듬해 정월, 발해는 사신을 다시 당에 파견해 정조를 하례하고 방물을 바쳤다.
 
[遣阿湌貞節等, 檢察北邊. 始置大谷城等十四郡縣.]
아찬 정절(貞節) 등을 보내 북쪽 변경을 검찰(檢察)케 하였다. 처음으로 대곡성(大谷城) 등 14개의 군현을 두었다.
<삼국사> 권제9, 신라본기9, 경덕왕 7년(748)

이 무렵 신라의 새로운 국왕으로 즉위한 경덕왕은 아버지 성덕왕의 친당외교를 이어받은 사람이면서, 당풍(唐風)으로 대표되는 외래문화에 심취한 사람이었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왕권강화'. 당조와 같은 강력한 왕권을 세우는 데
그 목표가 고정되어 있었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경덕왕은 신라에 존재하던 고유의 이름을 모두 한자식으로 바꾸었다. 관직이면 관직, 지명이면 지명, 관청의 이름도 모두 한자식으로 고쳐 신라를 작은 당으로 만들려고 하면서, 발해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신경을 썼다. 즉위 7년에 이르러 아찬 김정절을 보내서 신라의 북변을 순찰하게 한 것이 그것인데, 이때에 이르러 신라 조정이 직접 관리를 보내 통치하는 14개의 군현을 이곳에 설치한다.
 

<황해도 평산의 태백산성. 고려 때의 대곡성에 경덕왕 7년 신라 직할군현을 설치했다.>
 
지금 황해도(북한식 지명으로는 황해북도) 평산에 남아있는 태백산성은, 원래 고려 때의 대곡성이라 불리던 곳이다. 광개토태왕이 백제와의 전쟁을 대비하면서 남쪽에다 쌓았다는 '국남7성'의 하나로서, 유래가 상당히 오래된 곳이긴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것들은 대부분 조선조에 이르러서 개축된 것. 다른 이름으로는 성황산성이라고도 불렸다던가.
 
 
<대곡산성 실측도>
 
《삼국사》를 봐도 이때에 경덕왕이 설치한 14군현이 대체로 어디에 어떤 식으로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대곡성 이외에는 잘 찾기가 어렵다. 그냥 신라 북쪽 변경에 있었던 것으로 지금의 강원도와 황해도 일대에 있었던 것만 열네 곳 추스리자면 저기 새로 대곡성에 설치된 영풍군을 포함해서 철성, 부평, 토산, 우봉, 송악, 개성, 해구, 해고, 폭지, 중반, 서암, 오관, 취성의 군이 황해도와 강원도 일대에 있었고, 철성과 부평을 빼면 나머지는 전부 황해도에 퍼져 있다. 이때에 새로이 신라의 군으로 편재된 곳 중에는 송악과 개성, 훗날 고려의 수도로서 새로운 나라의 중심지가 될 곳도 포함되어 있었지.
 
<대곡산성 성벽. 고구려 때의 성벽이 잘 남아있다.>
 
발해가 재지세력가인 수령을 매개로 도독과 자사가 지방을 다스렸던 것과 비슷하게, 신라 역시 지방의 재지세력가인 촌주를 매개로 중앙에서 파견한 도독이니 태수니 하는 관리들이 지방을 다스렸다. 내가 알고 있는 이 시기 지방지배의 모습.



태백산성 관련글
태백산성 - 광인  http://tadream.tistory.com/6107
태백산성(太白山城) - 문화콘텐츠  http://tadream.tistory.com/6112
태백산성(太白山城) - 디지털고구려  http://tadream.tistory.com/6113
황해북도 태백산성 - roks821  http://tadream.tistory.com/6114  
한국의 산성(66) - 고구려 태백산성(太白山城, 황해 평산) - sycjs  http://tadream.tistory.com/6115
태백 산성 - wikia  http://tadream.tistory.com/6117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