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자전거 종주길, 이 정도일 줄 몰랐네
'관리'와는 거리가 먼 도로 상태... "자전거를 레저로 본 게 문제"
13.04.30 11:27 l 최종 업데이트 13.04.30 11:27 l 서부원(ernesto)

실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고작 초등학교 5학년인 어린 아들과 자전거로 목포에서 광주까지 올라올 계획을 세웠으니.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영산강을 따라 자전거길이 말끔히 정비돼 있다는 소리에, 유난히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는 아이와 맞장구를 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아이의 말마따나, '생애 최대의 사건'이 될 줄은 그때까진 미처 몰랐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영산강 하굿둑부터 집 근처인 첨단대교 근처 출구까지 꼭 100km. 오르막 내리막이 거의 없는 강변길이라고 하니, 아이도 '철없는' 아빠도 해볼 만하다고 여겼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1년에 서너 번씩 마라톤에 참가할 정도로 체력을 자신해서인지, '두 다리로 42.195km를 뛰었는데, 자전거로 100km를 못하랴' 싶은 자만도 있었다.

우선 광주에서 목포까지는 기차를 이용하기로 하고 표를 예매했다.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기차는 오전과 오후에 한 번씩, 각각 두 편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른 오전 기차도 목포 도착 시간이 정오여서 해가 지기 전까지 도착하려면 조금은 빠듯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6시간 남짓이면 족하다는 인터넷 정보를 믿고 별 부담을 느끼진 않았다.

소풍이라도 가는 양 들뜬 아이와 도시락과 물·간식거리 등을 배낭에 챙겼다. 아내는 걱정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늦어도 오후 7시면 도착할 것"이라며 "오는 길에 비를 만나지 않도록 기도나 해달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오후 늦게 5mm 안팎의 비가 내린다는 날씨 예보가 있었던 까닭이다. 그래도 줄곧 서풍이 분다고 해서, 나름 바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의기투합해 나갔지만, 시작부터 '난감하네'

드디어 지난 27일 오전 9시 반. 당당하게 아이와 파이팅을 외치며 길을 나섰다. 광주송정역 기차 출발 시간은 11시 12분이었지만 여유 있게 출발하기로 했다. 집에서 역까지 지도 상 거리를 보니 17km. 1시간 반이면 충분할 것이라 여겼는데, 하마터면 기차를 놓칠 뻔했다. 도시 내 자전거길이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웬만한 간선도로마다 보도 옆으로 빨간색이 칠해진 자전거도로가 설치돼 있지만, 만들어만 놨을 뿐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상가의 진열대를 내놓은 곳도 많고, 줄지어 심어놓은 가로수의 뿌리가 웃자라 갈라지고 터져 주행하기 위험한 곳도 허다했다. 심지어는 자동차가 주차돼 있어 통행 자체를 막아선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차도를 자동차와 나눠 쓰는 위험을 감수한다.

부랴부랴 역 대합실로 들어섰더니 순간,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느낌이었다. 자전거 두 대와 헬멧 차림의 우리 부자를 사람들은 무슨 볼거리라도 되는 양 힐끔거렸다. 장애인용 승강기를 이용해 플랫폼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자전거를 기차에 싣고 갈 생각이냐"며 뜨악한 표정으로 묻기도 했다. 그들은 자전거를 미리 포장해 부치는 수화물로 생각했던 것이다.

거치대가 마련된 기차라지만, 싣고 내리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출입문이 승객용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타고 내리는 두 사람의 교행조차 어려운 그 좁은 문으로 자전거를 싣고 내리라는 것이다. 고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거치대가 카페열차라고 적힌 식당 칸에 설치돼 있어서 북적이는 승객들을 헤집고 가야만 했다. 

직접 나무라지는 않았지만, 식당 칸을 운영하는 승무원과 승객들 모두의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고, 우리 부자는 무슨 죄라도 지은 양 연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들 중 몇몇은 스테인리스로 된 그 철봉처럼 생긴 시설물이 자전거 거치대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며 소곤대기도 했다.

물론, 자전거보단 사람이 먼저일 테지만 자전거족을 위한 운영의 묘가 아쉬웠다. 다른 승객들과 겹치지 않도록 자전거 출입문을 따로 지정하고, 거치대 곁에 자전거를 싣고 타는 승객의 좌석을 하나씩 따로 설치해놓는다면 어떨까 싶었다. 거치대는 식당 칸에, 정작 좌석은 여느 승객들처럼 다른 칸에 있다 보니 그냥 '입석'인 셈 치고 서서 갈 수밖에 없었다.

승무원은 "이용자가 거의 없다 보니 관심이 떨어지고 결국 공간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되는 것 아니냐"며 "정작 나도 자전거를 싣고 기차여행 하는 승객들을 거의 보질 못했다"고 했다. 집에서 기차역까지 가는 17km '워밍업'에, 역과 기차 안에서의 생각지도 못했던 해프닝으로 본격적인 자전거 종주를 시작하기도 전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자전거도시 표식만 덩그러니

▲ 자전거 종주의 시작, 영산강 하구둑 영산강 자전거 종주길의 기점을 알리는 표지판 ⓒ 서부원

마음 급한 우리 부자를 놀리기라도 하듯 기차는 목포역에 10여 분 지연돼 도착했다. 하긴 '값싼' 무궁화호는 정시에 도착하기가 더 어렵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 있다. 목포역에서 영산강 하굿둑에 가자면 복잡한 시내를 동서로 관통해야 했다. 알면서도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던 건 시내 자전거도로를 소개한 지도 때문이었다.

고작 5.8km. 워밍업으로 17km도 너끈했는데 그 정도야 식은 죽 먹기라고 여겼다. 그러나 목포의 자전거도로 역시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곳곳이 차도로 끊겨있어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자전거도로임을 알리는 표식은 있었지만 동서남북 방향과 목적지를 알려주는 내용은 바닥 그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았다. 

지도와 실제는 달랐다. 자전거도로의 기능이 사실상 상실된 도심의 위험한 간선도로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다 보니 시내를 벗어나는 데만 7km가 훌쩍 넘었다. 천신만고 끝에 자전거 종주의 시작점인 영산강 하굿둑에 닿았다. 지도만 믿고 기차역에서 영산강 하굿둑까지 연결하는 자전거 동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애초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영산호 건너 대불공단이 보이는 그곳에서 챙겨간 김밥도시락을 먹었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나니 어느덧 1시 반이 됐다. 예정 시간보다 1시간 가까이 늦었지만, 등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정도는 문제될 것 없었다. 드디어 영산강을 거슬러 오르는 우리 부자의 자전거 종주가 시작됐다.

잡풀 사이로 구조물이 흉물스럽게... 이건 뭐지

▲ 36km 지점, 몽탄대교 이때까지만 해도 아이는 웃음 띤 얼굴을 지어보였다. 외려 자전거의 상태를 걱정할 정도였다. ⓒ 서부원

예상했던 대로 서해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페달을 훨씬 가볍게 했다. 적어도 처음 한 시간은 그렇게 휘파람을 불며 갔다. 그러나 넓은 평야를 굽이 흐르는 강과 지형에 따라 더 꼬불거리는 길은 바람의 방향을 무색하게 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이 자전거 타기에 제격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몸으로 부대끼며 깨우치게 됐다.

그래도 영산강 하굿둑을 출발해 몽탄대교 지나 느러지 관람 전망대에 이르는 처음 36km 구간은 그리 힘든 줄 모르고 페달을 밟았다. 적잖이 힘들었지만 기상 예보와는 달리 날씨가 화창했고 절반 가까이 왔다는 안도감이 체력을 뒷받침했다. 가파른 느러지 고갯길을 넘어서자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 최대 난코스, 느러지 구간 전문 라이더가 아니라면 타고 넘기 어려운 가파른 고갯길이다. 이때부터 급격하게 체력이 고갈됐다. ⓒ 서부원

지형 탓에 강줄기가 뱀의 꼬리 마냥 휘감아 도는 느러지 구간은 최대의 난코스로, 전문 라이더가 아니라면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올라가야 하는 곳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산강 자전거 종주 길을 연결하려다보니 산길을 시멘트로 포장해 활용한 것이다. 이곳 말고도 강과 상관없이 이처럼 우회하는 코스가 몇 있었다.

이번 종주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죽산보까지는 20여 km를 더 가야 하는데, 먹구름의 심술로 간간이 떨어지는 빗방울과 세찬 바람이 훼방을 놨다. 비옷을 갖춰 입어야 할 만한 큰 비가 아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됐다. 토요일인 데다 하굿둑에서 시작해 50km를 넘게 달렸지만, 길에서 만난 자전거족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포장이 안 된 구간과 자동차와 나란히 달려야 하는 곳이 있었던 데다 그나마 곳곳이 공사 중이었다. 관개수로를 내기 위해 통째로 잘린 곳도 두어 곳 있었고, 자전거도로를 잇거나 정비하다 그만둔 탓인지 잡풀 사이로 콘크리트 구조물이 흉물스럽게 버려진 곳도 있었다. 그때마다 내려서 걷거나 길을 잘못 들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곤 했다.

고장난 공기주입기... 이럴 거면 왜 뒀을까

▲ 자전거 전용도로 위의 자동차 조금 과장하자면, 길 위에서 만난 라이더 수보다 자동차 수가 더 많았다. 단속을 바라는 건 사치임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 서부원

열심히 쉬지 않고 달렸건만 오후 5시가 다 돼서야 죽산보에 닿았다. 3시간 반 가까이 걸린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를 무척 반가워하는 라이더 한 분을 만났다. 우리와는 반대로 목포 하굿둑으로 내려가는 중이라는데, 문제는 앞바퀴에 바람이 빠져 공구를 갖춘 다른 라이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종주 코스 내 웬만한 쉼터마다 공기 주입기는 설치돼 있지만, 관리가 소홀한 탓에 제대로 작동되는 것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 부자도 아침 광주송정역 가는 길에 바퀴의 공기압이 부족한 것 같아 주입기를 찾았지만, 작동이 안 되거나 파손돼 있어서 결국 목포역 앞에 있는 자전거 대리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죽산보의 것 역시 고장 난 채로 방치돼 있었던 거다.

▲ '파란 선'이 끊긴 갈림길 대체 어디로 가라는 얘기일까. 오른편 안내판에는 하구둑에서 59km 지점이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이런 곳이 적지 않다. ⓒ 서부원

죽산보를 벗어나자 비로소 '악몽'이 시작됐다. 지금까지의 고통은 '애교'에 불과한 것이었다. 짙은 먹구름은 일찌감치 어두운 저녁을 불렀고, 체력은 물론 챙겨간 물조차 바닥나버렸다. 더욱이 안내판과 종주 길임을 알리는 '파란 선'이 끊어져 길을 찾느라 20여 분을 헤맸다. 그 과정에서 자전거를 짊어지고 콘크리트 계단을 오르내리는 황당한 상황도 연출됐다. 

안내판은 덩그러니 서 있으되 '파란 선'은커녕 길이 아예 끊긴 경우도 있었다. 주위엔 물어볼 사람 한 명 찾아볼 수 없었다. 모르긴 해도, 그 시각 종주 길에는 우리 부자뿐이었다. 결국 마을길과 자동차 도로를 돌고 돌아 '도회지' 영산포에 가까스로 닿았을 때는 이미 주위가 어둑해졌다. 지도상 죽산보에서 영산포까지는 9km에 불과했지만, 1시간도 넘게 걸렸을 만큼 그야말로 '지옥 같은' 구간이었다.

집 나선 지 12시간 만에 돌아왔습니다

▲ 자전거를 위한 계단길? 길을 헤매다 계단을 내려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죽산보에서 영산포 가는 9km는 '지옥 같은' 구간이었다. ⓒ 서부원

오후 6시 반을 넘기니 도로 위에 자동차들도 뜸해졌다. 영산강의 강줄기도 어두워서 물인지 땅인지 잘 구별되지 않았다. 집까지 가려면 쉬지 않고 내달려도 2시간이 더 걸릴 텐데, 그때까지 체력이 버텨낼 수 있을지 도저히 자신할 수 없었다. 더욱이 기진맥진해 있는 아이를 보니 아빠로서 죄를 짓고 있는 건 아닌지 싶었다.

나주대교를 지날 무렵, 지치고 두려운 마음에 '우리 용달차를 부를까?' 하고 운을 띄워 봤는데, 아이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여기까지 비바람 뚫고 달려온 게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완주하겠단다. 완주했다고 무슨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나중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보자고 했더니 "정 힘들면 아빠 혼자 용달차 타고 가라"고 말을 끊었다. 대견하고, 한편으론 고마웠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줄곧 아빠보다 족히 100m는 앞서 달렸고, 아빠의 등에 진 배낭을 대신 지어주겠다고 나서기까지 했다. 가다 쉬다를 반복한 탓인지 오후 7시 반이 다 돼서야 승촌보에 닿았다. 이제 어슴푸레 저녁이 아니라 완전히 깜깜한 밤이 됐다. 가로등이나 전조등 없이는 페달을 밟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곳은 하굿둑에서 담양댐에 이르는 영산강 자전거 종주 전 구간의 중앙이어선지 주요 지점까지의 예상 소요시간이 사진과 함께 걸려 있었다. 출발 전 인터넷에서 얻은, 직접 체험해보니 '말도 안 된' 정보가 여기서 비롯됐던 듯싶다. 그 측정치가 맞다면, 전문 사이클 선수이거나, 시시각각 바람의 도움을 받거나, 강철 체력의 소유자의 그것임에 틀림없다.

아예 바닥난 체력 탓이기도 하겠지만 전조등에 의지하려니 속도는 더욱 느려졌다. 도심의 아파트 불빛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칠흑 같은 바다를 헤매던 배가 천신만고 끝에 등대를 발견한 기분이 이런 것일까. 힘들어 눈이 벌겋게 충혈이 된 아이도 그 불빛을 보고 비로소 생기를 찾았다. 집 현관문에 도착하니 오후 9시 반. 정확히 집을 나선지 12시간 만이다.

총 주행거리는 자그마치 130km. 이곳 광주에서 서울까지가 고속도로로 300km 남짓이니, 얼추 절반 가까운 거리를 자전거로 열한 살짜리 아이와 '겁 없이' 달려온 것이다. 앞으로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아이도 아빠도 하루 동안 이렇게 먼 거리를 가기 위해 자전거 페달을 밟는 그런 경험을 다시 겪진 않을 것이다. 

"나중에 꼭 다시 도전!"이라는 아들... 정말?

아이는 도착하자마자 '생애 최대의 사건'이었다며 아빠와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오는 내내 힘든 기색 한 번 안 하더니만, 그제야 곳곳이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기차를 탄 1시간을 뺀 11시간 동안 딱딱한 안장 위에서 페달을 밟아댔으니 어린 몸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샤워할 때 보니 엉덩이와 사타구니가 벌겋게 부어있었다.

피곤했을 텐데도 아이는 '역사적인' 순간을 소중히 기억해야겠다면서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자신을 태우고 그 먼 거리를 아무 탈 없이 오게 해준 자전거를 쓰다듬으면서, 과연 이 조그만 자전거 바퀴가 몇 번이나 회전했을까를 궁금해 했다. 바퀴의 둘레를 계산하기 위한 원주율(π)과 공식을 알려줬더니, 바퀴의 지름을 재고 계산기를 들더니 무려 8만4000여 바퀴를 돌았다며 놀라워했다. 

우리 부자의 무모한 도전은 그렇게 끝났다. 시쳇말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사실을 우리 부자가 증명한 셈이다. 해냈다는 성취감에 아이는 마치 생일 마냥 이날을 달력에 적어놓고 해마다 기념할 모양이다.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중 아빠가 돼서 아들에게 오늘 겪었던 일을 꼭 들려주고, 다시 도전해보겠어!"

사족 하나. 어린 아들과 함께한 이날의 경험을 통해 직접 보고 깨달은 바도 있다. 우선, 우리 사회의 도로 체계가 얼마나 자동차 위주로 돼 있는지를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 도심 내 자전거도로는 사실상 방치된 채 유명무실하다. 정비나 보수, 단속은커녕 설치돼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영산강 자전거 종주길, 그거 오래갈까요?"

자전거도로 위를 자전거가 달리는 데도 자동차와 보행자·상인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다 보니 자전거는 시나브로 도로를 오가는 교통수단이 아니라, 유원지나 공원에서 타는 놀이기구나 레저 용품 정도로 인식돼버렸다. 거칠게 말해서, 기차에 설치된 자전거 거치대도, 도심 속 자전거도로도 모두 '장식품'일 뿐 제 기능을 상실했다.

누군가는 영산강을 비롯한 4대강 자전거 종주 길이 자전거 타기 열풍을 불러와 자동차 중심의 교통문화를 혁신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여긴 모양인데, 오가며 만난 라이더들 중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 중 한 명은 자전거에 '미친' 자신들에게 '놀이터' 한 곳이 더 생긴 것일 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강 따라 자전거도로를 만들면 뭐해요. 일반인들이 그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접근하기가 위험하고 힘든데. 영산강 자전거 종주 길은 우리처럼 자전거 거치대가 설치된 자가용 운전자나 강변에 사는 사람들의 레저 활동을 위한 배려일 뿐이죠. 자전거 타는 걸 '생활'이 아닌, '레저'로 접근하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 경험상 그나마 좋든 싫든 4대강 사업에 대한 관심이 시들고 나면 강둑 자전거도로는 아마 자동차 차지가 될 걸요. 아니면 농로로 이용되거나. 지금도 낚시꾼들의 차들 때문에 위험할 때가 많잖아요. 어떻든 그렇게라도 쓰이지 않는다면 버려진 채 머지않아 콘크리트 위로 잡풀더미가 우거질 걸요."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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