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A%B3%A0%EA%B5%AC%EB%A0%A4#.EC.A0.95.EC.B9.98.EC.A0.9C.EB.8F.84

고구려 정치제도

정치제도  

고구려가 부족 연맹체적인 지배 체제에서 벗어나 고대 국가로서의
 관료 조직을 갖추게 된 것은 대체로 율령 정치가 시작된 소수림왕 때의 일이며, 그것이 더욱 정비된 것은 고구려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이 후의 일이라고 여겨진다. 고구려의 중심 세력은 본래 소노(消奴)·절노(絶奴)·순노(順奴)·관노(灌奴)·계루(桂婁)의 5부족으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때의 왕은 부족 연맹장이 되었다. 왕은 선출에서 세습제로 변하였는데 초기는 소노부에서 동명성왕 이후는 계루부에서 세습하였다 한다. 

초기에는 국왕 밑에 상가(相加)·대로(對盧)·패자(沛者)·주부(主簿)·우대(優台)·승(丞)·사자(使者)·조의(皁衣)·선인(先人) 등을 두었는데, 이 관계(官階)는 그 후 발전 과정을 통하여 427년 평양천도 이후에 재정비되었다. 관료의 등급은 대체로 12등급으로 분화·발달되었는데 대대로(大對盧)·태대형(太大兄)·울절(鬱折)·태대사자(太大使者)·조의두대형(皁衣頭大兄)·대사자(大使者)·소형(小兄)·제형(諸兄)·선인(仙人) 등으로 나뉘었다. ‘형’은 연장자로, 가부장적(家夫長的) 족장의 뜻을 나타내며 부족 연맹에서 고대 국가로 전환하면서 여러 족장 세력을 이러한 관등에 흡수한 것 같다. ‘사자’가 붙은 것은 씨족원으로부터 등용된 것으로 공부(貢賦) 징수의 직역(職役)을 뜻하는 것 같다.대대로 막리지(莫離支)는 수상격인 고구려 최고의 관직으로 대대로가 평시 행정 담당의 수상이다. 막리지 밑에는 중외대부(中畏大夫)·대주부(大主簿)·고추대가(古雛大加) 등을 두었는데 각각 내정(內政)·외정(外政)·재정(財政)을 맡아보았다. 

지방은 동·서·남·북·중의 5부(部)로 나누고, 5부에는 욕살(褥薩)이라는 부왕(副王)급 군관(軍官)과 처려근지(處閭近支)[8]라는 행정관이 파견되었다. 이들은 각 내부의 여러 성주(城主)를 통솔하여야 했다. 원래 부족 세력의 근거지였을 여러 성(170)은 고구려 왕국의 사적·행정적 단위로 통합되어 있었고 또 부세(賦稅) 등 지방민에 대한 통치가 행해지기 마련이었다. 

고구려에는 귀족 회의의 하나인 제가 회의도 있었다.


지방 행정 조직

초기의 5부족은 그대로 행정구역으로 발전, 수도와 지방을 5부로 나누었다.
 계루부(桂婁部)는 내부(內部)[9], 소노부(消奴部)는 서부(西部)[10], 절노부(絶奴部)는 북부(北部)[11]·순노부(順奴部)는 동부(東部)[12]·관노부(灌奴部)는 남부(南部)[13]라 하였다. 5부 밑에는 성(城)이 있었다. 

부에는 욕살(褥薩)이라는 군관(軍官)과 처려근지(處閭近支)
[8]라는 행정관이 파견되었고, 이들은 각 부 내의 여러 성주(城主)를 통솔했다. 

그 밑에 각 이원(吏員)이 있어 사무를 분장하였다. 문무의 구별이 체계화되지 못하였던 고구려는 부족 세력의 근거지였던 여러 성을 행정적·군사적 단위로 편성하였던 것 같다.  
5부를 중심으로 하여 기내(畿內)의 뜻인 듯한 내평(內評)과 기외(畿外)의 지방을 의미하는 외평(外評) 제도가 있었다. 또한 평양 천도 후에는 평양 이외에 국내성(國內城, 통구)과 한성(漢城, 재령)의 별경(別京)이 있어 삼경제(三京制)가 성립되었다.



주석
  1.    일명 도사(道使)
  2.  또는 황부(黃部)
  3.  또는 우부(右部)
  4.  또는 후부(後部)
  5.  또는 좌부(左部)
  6.  또는 전부(前部)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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