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도주(玄兎州) 

755년 안사의 난 이후 발해가 진출 현도성을 병합해 현도주를 설치하고, 759년까지는 현도주자사가 파견된 것으로 보이며 820년 선왕(대인수)가 소고구려를 완전 병합해 926년 발해 멸망때까지 존속한 것으로 보입니다. 위치는 무순 현도성 근방으로 추정됩니다.


하나도 모르고 쓰는 역사 이야기<99>후고려기(後高麗記)(12) - 광인
759년 현도주자사


辛亥, 迎藤原河清使判官内藏忌寸全成. 自渤海却廻, 海中遭風, 漂着對馬. 渤海使輔國大將軍兼將軍玄菟州刺史兼押衙官開國公高南申相隨來朝

신해(18일)에 등원하청(후지와라노 카와키요)와 사신 판관 내장기촌(内藏忌寸, 쿠라다노이미키) 전성(全成, 마타나리)를 맞이하였다. 발해에서 却廻하여 바다 위에서 바람을 따라 대마(對馬)에 표착하였다. 발해의 사신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 겸 장군ㆍ현도주자사(玄菟州刺史) 겸 압위관개국공(押衙官開國公) 고남신(高南申)을 따라[相隨] 내조하였다. 
《속일본기(續日本紀)》 권제22, 천평보자(天平寶字) 3년(759) 10월

중대첩. 발해의 정치제도인 '3성 6부'의 하나인 중대성에서 발행한 첩지다. 《속일본기》에 기록된 이 중대성첩 내용은 발해에서 일본으로 보낸 최초의 첩문으로, 발해의 대일본외교 자세가 국왕의 계서를 통해서 진행되던 차원에서 '중대성'이라는 전문화되고 조직화된 관부를 통해 실무적으로 진행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에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아울러 고원도 일행은 이로부터 3년 뒤인 대흥 23년(761) 8월에 당에서 돌아와서 발해의 견당하정사 양방경을 따라 입당할수 있었음을 보고했다. (이 시기에 이르면 목저주에 이어 현도주에도 발해의 자사가 파견되었다.)

출처 : http://blog.naver.com/spiritcorea/130047173661http://tadream.tistory.com/6506


소고구려 [小高句麗] - 민족문화대백과
755년 안사의 난 이후

당의 요동지배는 755년 평로절도사 안녹산(安祿山)의 반란을 고비로 전면적으로 붕괴되었다. 반란군이 화북으로 진출해 나가 당의 중심부가 전란의 와중에 빠졌고, 그것이 장기화되자 요동지역은 당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 틈을 타 발해가 진출해 와 목저성(木低城)과 현토성 일대를 병합하여 요동평야를 압박하는 형세가 되었다. 그 뒤 당의 세력이 요서지역에 재차 뻗쳐 왔지만, 요동은 당과 발해세력 사이의 완충지대로 되었다.

출처 : http://enkorea.aks.ac.kr/ , http://tadream.tistory.com/5511



발해의 대외관계와 동아시아의 국제질서 - 서영수
선왕 시기 요동 병합

大仁秀는 遼東지역에 唐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遼河유역의 小高句麗國을 병합하여 이 곳에 목저주(木底州), 약홀주(若忽州), 현도주(玄兎州) 등을 두었다. 이후 遼東진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10세기 초에 契丹이 이곳으로 진출하기 전까지 遼東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출처 : http://mahan.wonkwang.ac.kr/source/Balhea/10.htmhttp://tadream.tistory.com/6631
        

소고구려 - 위키
820년 요동병합

820년에 선왕이 고구려와 부여의 옛 땅을 되찾으면서, 소고구려는 발해로 합병되었다.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C%86%8C%EA%B3%A0%EA%B5%AC%EB%A0%A4


List of provinces of Balhae - 위키

현도주 (玄兎州) (현재 만주의 무순 근방)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provinces_of_Balhae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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