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발] 원세훈 뒤에 이명박 / 김이택
등록 : 2013.06.04 19:19수정 : 2013.06.05 00:45

김이택 논설위원

이명박 정권은 뭘 믿고 그렇게 대담하게 불법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다. 불법사찰과 공작을 꽤 광범위하게 벌였던 것 같다.
촛불시위 뒤 2008년 중반부터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중심으로 ‘이영호팀’이 정치인과 민간인을 두루 사찰했고, 국가정보원도 여기에 내사자료를 넘겨주는 등 공조를 했다는 건 국가인권위원회의 올해 2월 발표로도 확인된다.

올해 초부터 연이어 공개된 내부 자료들을 보면 국정원은 이와 별개로 ‘정치공작’이라고 부를 만한 일들도 은밀하게 벌인 모양이다. 원세훈씨가 국정원장 시절 매달 주요 간부회의에서 강조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을 보면 하나같이 ‘정부’ 정책의 진의를 홍보하고, ‘국책사업’이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도록 하라는 식의 ‘정권 보위’ 의지가 짙게 묻어난다. 국익전략실이 만들었다는 문건에는 야당의 반값등록금 정책을 반박하는 홍보자료를 만들어 심리전에 활용하게 하고, 무상급식과 등록금 인하 등 서민정책을 펴는 서울시장을 제어하기 위한 공작 실행계획까지 나와 있다.

여러 달 동안 심리정보국 요원들이 단 댓글 내용과 ‘지시 말씀’, ‘박원순 시장 제압’ 문건 등 자료를 분석하고 관련자를 불러 조사한 검찰이 국가정보원법상의 정치관여죄와 공직선거법 위반죄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니 정치공작 실체는 곧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라면 뭔가 찜찜하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이런 불법·공작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건가. 여러 정황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원세훈 전 원장이 대통령을 위해 불법을 감수하며 공작을 벌이면서 과연 자기의 ‘일심충성’ 활약상을 보고하지 않았을지 의문이다. 독대 자리에서 국정원 전 조직이 얼마나 열심히 4대강과 세종시 등 정부 정책을 홍보하고, 때로는 야당 의원을 겨냥한 심리전 등 ‘공작’까지 감행하는지 시시콜콜 보고하지 않았을까.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좌파단체(2010.1.22) 등 이 전 대통령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들이 등장하는 걸 보면 둘 사이 교감의 흔적도 엿보인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작성의 ‘브이아이피 비선보고’를 받는다는 대통령이 이보다 더 보안 유지가 확실한 조직의 보고를 내쳤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전 대통령은 이밖에도 민간인 불법사찰, 내곡동 사저 비리와 관련한 직권남용 및 횡령·배임 등 혐의 고소고발이 접수돼 서울중앙지검의 수사를 앞두고 있다.

원 전 원장에게 공직선거법을 적용할 것인지를 놓고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맞서는 바람에, 이 전 대통령 문제는 아직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조만간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 처리 문제가 우리 사회의 현안으로 등장할 것이다. 그를 둘러싼 의혹들은 사실 상당 부분 드러나 있어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처벌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내곡동 특검 수사에서 아들의 아파트 전세금으로 1만원짜리 구권화폐 1억4000만원이 지불된 사실이 드러났고, 2008년 비비케이 특검 때는 130억원대 비자금이 발견됐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이제 국민들도 웬만큼 그런 내용들을 안다.

조만간 검찰이 수사 결과와 여론을 고려해 결정을 하겠지만 또다른 변수는 청와대다. 법무장관이 선거법 적용을 가로막고 나선 것도 대선 결과에 흠집이 나길 바라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의 뜻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과연 이 전 대통령 문제에 검찰 수사 결과를 존중해 ‘법대로’ 하라고 쿨한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또다른 비자금의 주인공 전두환 전 대통령까지, 검찰 앞에 전·현직 대통령들이 걸림돌로 줄줄이 늘어선 형국이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