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2001


건안성 [ 建安城 ]
1998년 임기환

건립시기 : 5세기 무렵(추정)

중국 요령성 영구시 개주시(盖州市) 고려성자촌(高麗城子村) 동쪽 석성산(石城山)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

고구려의 성. 고구려 요동 지역의 요충성(要衝城)으로, 한(漢)나라의 평곽현(平郭縣)에 설치되었다. ≪한원 翰苑≫의 주(註)에 인용된 <고려기 高麗記>에는 “평곽성(平郭城)은 지금은 건안성(建安城)이라고 부른다. 나라(고구려)의 서쪽에 있다. 본래 한나라의 평곽현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신당서 新唐書≫ 지리지에 인용된 <도리기 道里記>에는 “요양(遼陽)의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기점으로 해서 서쪽으로 건안성까지 3백 리이며 본래의 평곽현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건안성은 요하(遼河)선을 따라 설치한 중요한 방어 거점 중의 하나로 당(唐)나라와의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645년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할 때에, 영주도독(營州都督) 장검(張儉)이 요하를 건너 건안성을 공격하여 고구려병 수천명을 죽였으나 함락하지는 못하였다.

이어 당군이 개모성(蓋牟城)·요동성(遼東城)·백암성(白巖城)을 차례로 함락하고 안시성(安市城)을 공격하였으며, 비사성(卑沙城)을 함락시킨 수군총관 장량(張亮)은 육로로 건안성으로 진주하여, 고구려군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안시성과 건안성이 당군의 공격을 물리치고 성을 지킴으로써 결국 당군은 후퇴하고 말았다.
 
당시의 전투를 보면 남쪽의 건안성과 북쪽의 안시성은 고구려의 1차 방어선의 기능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건안성은 지금의 중국 요령성(遼寧省) 개현(蓋縣) 청석령향(靑石嶺鄕) 고려성자촌(高麗城子村)에 있는 고려성자산성(高麗城子山城)에 비정되고 있다.

이 고려성자산성은 청석령산성(靑石嶺山城) 혹은 고려성산산성(高麗城山山城)으로도 불린다. 고려성자산성은 포곡식산성(包谷式山城 : 계곡과 산정을 함께 두른 산성)으로 여러 개의 산봉우리와 능선을 이어가며 축조하였는데, 성벽의 길이는 대략 5km에 이르는 대규모 산성이다.
 
서북쪽으로 열려진 계곡에 문지(門址)가 남아 있는데, 성의 주 출입구였다. 서북문은 옹성(甕城)의 형태로 구축되어 있는데 현재는 많이 파괴되었다. 성벽은 석축(石築)과 토축(土築)을 적절히 혼합하여 축조하였다. 서쪽 성벽 부분은 주로 석축으로 쌓았으며, 성벽 위에는 너비 5∼6m의 마도(馬道)가 시설되어 있다.
 
또 남서쪽 성벽은 흙을 다져쌓은 판축토성이다. 남문의 주위에는 토축으로 2개의 치(稚 :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를 설치하여 방어 능력을 높이고 있다. 남동부 성벽은 험준한 암벽을 이용하여 부분적으로 석축하였으며, 동부와 북부 성벽은 토축으로 구축하였다. 성안에는 작은 산이 있는데, 그곳에 건물지가 남아 있다.
 
또 우물 5곳과 저수지가 남아 있다. 성안은 상당히 넓은 편으로 여러 건물지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현재 곳곳에서 기와편·토기편·마구(馬具)·철촉 등이 출토된다. 이 건안성은 사료상으로는 645년(보장왕 4) 당과의 전쟁기사에서 처음 나타나지만, 실제의 축조 연대는 고구려가 요동 지역을 차지한 5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唐書」
「東北歷史地理 2」(孫進己·馮永謙 編, 黑龍江人民出版社, 1989)
「高句麗の歷史と遺蹟」(田中俊明, 中央公論社, 1995)


고구려시대 요동지역의 요충성. 지금의 중국 요령성 개현 청석령향 고려성자촌에 있는 고려성자산성으로 비정되고 있는데, 이 산성은 포곡식산성으로 성벽의 길이가 대략 5km 여 정도에 이르는 대규모 산성이다.


중국 요령성 개현에 있는 고구려의 산성. 성벽 총 둘레는 5km 정도의 포곡식 산성이다. 윤명철 제공.

중국 건안성 전경. 1997년 이전에 촬영된 중국 건안성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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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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