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X파일]수돗물값 논란과 홍길동?
헤럴드경제 | 입력 2013.06.21 16:08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정부가 4대강 사업으로 생긴 수자원공사의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물값 인상을 추진하려 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4대강 때문에 생긴 부채를 국민에 떠넘기려 한다는 건데요.

상황은 이렇습니다. 지난 19일 오전 세종시 LH 세종특별본부 식당에서 열린 서승환 국토교통부 기자간담회 때 일인데요. 취임 100일을 맞아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한 기자가 마지막 순서로 "4대강으로 인해 수자원공사의 빚이 8조원으로 늘어났다. 친구수역 사업 등으로 빚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라고 질문했습니다.

서 장관은 그다지 고민하지 않고 즉시 "친수구역 개발 사업으로 수공 부채를 줄이는 방안을 마련한 게 사실이다. 부산에코델타시티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고, 구리(월드디자인센터 사업) 등은 지구지정을 받고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사실 친수구역개발사업으로는 (수공의) 부채 절감을 하는 건 한계가 있다. 물 값을 조정하는 게 필요한데 이 부분은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고, 물가 당국과 협의를 해야 해 다소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부가 말하는 '조정'은 '인상'을 완곡하게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누가 들어도 정부가 물값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질문과 답변의 맥락을 보면 4대강 부채로 늘어난 수자원공사의 부채 해소를 위해 친수구역개발사업으로는 한계가 있고, 물값을 올리려 한다는 입장을 밝힌거죠.


기자들은 간담회 직후 "정부가 수자원공사의 부채해소를 위해 물 값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기사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수돗물 인상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니 꽤 큰 뉴스였죠.

기사가 하나둘 인터넷에 뜨기 시작하자 국토부 담당자들이 화들짝 놀랐나 봅니다. 장관이 한 말에 대해 담당 공무원이 기자실로 달려와 해명하고 해명자료를 뿌리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해명의 요지는 "수공의 4대강 부채 해소를 위한 물값 인상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다만 "장관이 단순히 원가 대비 83%에 불과한 물값을 보다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의 원론적 발언을 한 것"이라는 해명하더군요.

어쨌든 물 값은 현실화할(올릴) 필요가 있는데 그게 수공의 부채와는 상관없다는 겁니다. 기사를 본 야당은 아니나 다를까 정부와 여당을 상대로 공격을 시작합니다. 국민 호주머니로 4대강 부채를 갚겠다는 것 아니냐며 4대강에 대한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나왔습니다.

사태가 진정되지 않자 다음날인 20일 국토부는 이번엔 서승환 장관이 직접 보낸 형식으로 해명자료를 또 냅니다. 내용은 전날 뿌린 것과 거의 같습니다. 다시 한번 '수도요금 산정은 4대강 부채해소와 관계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다만 당장에 '물값 인상계획은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해명 내용을 보면 어쨌든 물값 인상은 필요하다는 게 국토부의 입장입니다. 다만 그건 '수공의 부채해소 위한 것은 아니다'는 겁니다.

수공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면 물값을 인상하는 수밖에 없는데 굳이 그게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잘 알려졌듯 수공의 부채문제는 4대강 때문에 생겼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수공 부채는 2008년 1조9000여억원에서 작년말 13조7000여억 원으로 급증했습니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도 19.6%에서 121.9%로 나빠졌죠.

물값 인상 논란이 본격화한 건 이런 상황에서입니다. 당연히 물값 인상은 수공의 부채가 급증했기 때문에 더욱 필요해졌습니다.

그런데 물값 인상 논란에 굳이 수공 부채가 원인은 아니라고 강조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과 비슷합니다. 모두들 수공 부채때문에 물값이 오를 것이라고 하는데 국토부만 아니라고 하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물값 인상 논란이 수공 부채 때문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건 MB정권의 최대 사업인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4대강 사업은 들어간 돈에 비해 수질이나 환경 개선이 미미하고 앞으로도 천문학적인 돈이 더 들어가야 하는 등으로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입찰담합 수사를 진행하는 등 국민들의 반감도 높죠. 그런데 이런 4대강 때문에 물 값까지 오른다고 하면 4대강에 대한 반감은 더욱 커질 겁니다. 4대강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은 이를 함께 추진했던 현 정부에도 결코 좋을 수 없습니다. 4대강과 물값 인상을 떼어 놓으려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당장은 아니겠지만 앞으로 물값은 오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정부 말마따아 원가 구조 문제도 있고, 수공 부채가 심각한 상황이니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입니다. 그렇게되면 물값 인상의 원인이 4대강 때문이라는 논란은 다시 튀어나올 게 분명합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못 부르게 한다고 아버지란 사실이 달라지진 않기 때문입니다.

jumpcut@heraldcorp.com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