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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화백과사전 (검색어) "발해" 글에서 [사회구성] 내용만 가져왔음.

발해의 사회구성

발해의 [건국과 성쇠] 1. 건국 http://tadream.tistory.com/6937

2. 발전, 3. 내분, 4. 융성  http://tadream.tistory.com/6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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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사회는 소수의 고구려계와 다수의 말갈계로 구성되어 있었다.『루이쥬코쿠시(類聚國史)』에는 발해 초기의 지방사회 모습을 전하는 구절이 있으니, “그 나라는 사방 2천리인데, 주(州)·현(縣)과 관(館)·역(驛)이 없다. 곳곳에 촌락이 있는데 모두 말갈 부락이다. 그 백성은 말갈이 많고 토인(土人)이 적은데, 토인이 모두 촌장이 된다. 큰 촌락의 지배자는 도독이고, 그 다음 크기의 지배자는 자사이며, 그 아래는 백성들이 모두 수령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를 통하여 지방사회에서도 토인으로 불리는 고구려계 인물들이 지배층을 이루고, 말갈계 주민들이 피지배층을 이루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또『송막기문(松漠紀聞)』에 “왕은 옛부터 대(大)를 성으로 삼았고, 유력한 성씨로는 고(高)·장(張)·양(楊)·두(竇, 賀의 잘못인 듯)·오(烏)·이(李)로써 몇 종에 불과하다. 부곡과 노비, 성이 없는 자는 모두 주인의 성을 따른다”고 했다. 따라서 왕족으로 대씨가 있었고, 중앙의 유력한 귀족에는 고·장·양·하·오·이씨가 있었다. 그 아래에는 일반 귀족으로서 왕(王)·모(慕)·해(解)·여(茹)씨 등과 같은 50개 가까운 성씨들이 있다. 이 가운데에는 신라계로 보이는 박(朴)·최(崔)씨도 포함되어 있다.
 
유력 귀족 가운데에서는 고구려계인 고씨가 핵심을 이루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발해인은 유민까지 합쳐서 모두 380명이다. 왕족인 대씨가 117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고씨가 63명이고, 왕씨가 30명, 장씨가 20명, 양씨가 8명, 오씨가 13명, 이씨가 21명, 하씨가 4명 등이다. 이들 왕실과 유력귀족이 전체 발해인의 65%를 차지한다. 대조영이 어느 계통의 인물인지 논란이 있으니 제쳐두고 신하들만을 분석하면 고씨가 전체에서 47.5%를 차지한다.
 
중앙에서 지방에 관리를 파견하였고, 그 아래에는 수령(首領)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독립적인 세력을 지닌 지방의 지배자로서, 독자적인 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일본에 파견되는 중앙정부의 사신단에 붙여서 따로 사신을 파견하는 경우도 있다. 옛 고구려 지역에서는 고구려 유민 출신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수령은 말갈족 출신이었을 것이다. 수령 아래에는 말갈족이 대다수인 평민층이 있었고, 부곡(部曲)과 노비가 천민층을 이루었다.
 
종족적으로 이원적인 발해의 사회구성은 말기에 이르러서도 큰 변화가 없었다. 발해가 멸망한 뒤에 발해국인들이 발해인과 여진인으로 분리된 것은 바로 과거의 고구려계인과 말갈인들이 멸망 시까지도 상호 융합되지 않았음을 반영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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