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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화백과사전 (검색어) "발해" 글에서 [문화] 중 "4미술과 공예" 내용만 가져왔음.

발해의 미술
4. 미술과 공예
 
발해의 회화에 관해서는 원나라 때에 편찬된『도회보감(圖繪寶鑑)』에 대간지(大簡之)가 소나무와 돌 및 소경(小景)을 잘 그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대간지를 발해인이라 하면서도 금나라 항목에 넣은 점으로 보아, 금나라 때에 활동한 발해 유민으로 보인다.
 
발해시대의 그림으로는 정효공주 무덤과 삼릉둔(三陵屯) 2호묘의 벽화가 대표적이다. 정효공주 무덤에는 널길과 널방의 3벽에 모두 12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공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여기에 그려진 무사(武士)·시위(侍衛)·내시(內侍)·악사(樂師)·시종(侍從)을 통해 공주의 궁중생활을 엿볼 수 있다. 널받침〔棺臺〕남쪽 측면에도 백회 위에 그린 사자머리 같은 모습이 희미하게 남아 있으나 손상이 심하다.
 
인물 표현을 보면 하얗게 칠한 얼굴은 둥글고 크며 살이 쪄서 풍만하다. 눈은 작고 눈썹은 가늘며 코가 낮다. 뺨은 둥글며 붉은 입술은 작고 동그랗다. 이러한 인물 표현은 대체로 당나라 풍격을 반영한다.
 
이 벽화는 발해인의 복식도 엿볼 수 있게 한다. 머리에는 높은 상투를 틀고 복두나 말액(抹額)·투구를 썼다. 몸에는 단령포나 갑옷을 입었다. 단령포는 깃이 밭아서 목둘레선에서는 속옷이 보이지 않는다. 허리 아래에서 옆으로 트인 옆트임을 통해 속에 입은 중단(中單)·내의(內衣)·고(袴)가 드러난다. 소매에는 넓은 것과 좁은 것이 있고, 옷자락이 발등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다. 겉옷에는 여러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겉옷의 색깔은 갈색·붉은색·짙푸른색·흰색·자색 등이 있는데, 동일한 직분인데도 옷 색깔이 각기 다른 점으로 보아서 관복 규정에 따른 것은 아닌 듯하다. 허리에는 가죽띠를 띠었고 신발은 검은 가죽신이나 미투리를 신었다.
 
삼릉둔(三陵屯) 2호묘의 널방〔玄室〕과 널길〔羨道〕의 벽 및 천장에도 백회를 바르고 벽화를 그렸다. 이 무덤에는 인물과 함께 꽃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정효공주 무덤 벽화와 조금 다르다. 인물 그림은 널방 동·서쪽 벽에 각각 4명, 북쪽 벽에 3명, 남쪽 널길 입구 좌우에 각각 1명, 널길 동·서쪽 벽에 각각 무사 1명씩 도합 15명이 그려져 있지만 훼손되었다. 널방 천장과 널길 천장에는 꽃 그림이 있다. 삼각고임한 천장에는 흰색 바탕에 노란색 꽃이 가득 그려져 있다.
 
이밖에 함경북도 화대군 금성리 고분에서도 사람의 다리 등이 묘사된 벽화편이 발굴되었다. 상경성에서 발굴된 절터에서도 꽃이나 천불도(千佛圖)가 그려진 벽화편들이 발굴되었으며, 연해주 아브리코스(Abrikos) 절터에서도 번개무늬와 직물무늬가 섞인 벽화편이 발견되었다. 상경성에서 출토된 벼루 위에 복두를 쓴 인물의 얼굴이 그려진 것도 있다.
 
발해의 공예품으로는 조각·도자기·기와·벽돌·금속 세공품 등이 있다. 상경성 2호 절터에는 현무암으로 만든 높이 6m의 거대한 석등(石燈)이 지금도 남아 있다.
 
돌사자상(石獅子像)으로 대표적인 것은 정혜공주 무덤에서 출토된 두 개의 화강암 사자상이다. 이들은 당나라의 돌사자보다 크기가 작지만 강한 힘을 표현한 조각수법이 돋보인다. 조각품에 속하는 것으로는 이 밖에 귀부(龜趺)·그릇 다리·묘지석(墓誌石) 등이 있다. 현무암으로 만든 귀부는 1976년 상경성에서 발견되었다. 상경성에서 출토된 그릇에는 다리에 짐승머리가 조각된 것도 있다. 길게 내민 혀가 바닥에 닿고 머리로 그릇의 몸을 떠받들게 되어 있어서 발해 예술품의 하나로 삼을 수 있다. 정혜공주와 정효공주 묘지석의 경우는 모두 규형(圭形)으로서, 앞면에는 해서체로 묘지문이 음각되어 있다.
 
발해시대에 사용되었던 그릇으로는 도기(陶器)와 자기(磁器)가 있다. 도기에는 유약을 바른 것과 바르지 않은 것이 있는데, 발해인들이 주로 사용한 것은 유약을 바르지 않은 도기이다. 이들은 세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 바탕흙이 거칠고 모래가 많이 섞여 있으며, 홍갈색·회갈색·황갈색이 많고 색깔이 고르지 못하다. 손으로 빚은 것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주로 말갈계 도기들이고, 이른 시기에 많이 보인다. 둘째, 바탕흙에 모래가 섞인 것이 줄어들고 물레를 사용한 것이 많아지며 회색이 주류를 이룬다. 이들은 주로 고구려계 도기들이다. 그릇 표면에는 다양한 문양들을 누르고, 찍고, 새기고, 덧붙여서 장식했고, 일부에는 글자들을 새기거나 찍었다. 이들은 중·후기에 많이 보인다. 셋째, 유약을 바른 도기로서, 구운 온도가 높고 바탕이 희고 단단하다. 유약으로 삼채를 즐겨 사용했는데, 이를 생활 용기로 많이 사용한 것은 통일신라가 장례용으로 많이 사용한 것과 대비된다. 화룡 북대(北大)고분군에서 삼채 도기, 화룡 석국(石國)고분군과 용해고분군에서는 삼채 도용, 삼릉둔 4호묘에서는 삼채 향로가 각각 발굴되었다. 자기는 수량이 아주 적은데, 상경성에서 출토된 것으로 백자완(白磁碗)과 자색관(紫色罐) 등을 들 수 있다.
 
발해 도기는 세 가지 문화를 반영한다. 첫째, 말갈 전통을 담은 것으로서 입술이 두 겹이고 몸통이 긴 통형관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계통의 단지에는 일반적으로 톱날같은 융기문이 덧붙여져 있다. 둘째, 고구려 풍격을 지닌 것으로서 상경성에서 발견된 입이 나팔처럼 벌어지고 몸통에 가로띠 손잡이가 달린 그릇이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삼채 그릇이나 자기는 당에서 유래된 것이다.
 
자기는 수량이 아주 적고 그마저 조각 상태로 발견되었다. 상경성에서 출토된 것으로 백자 사발과 자색 단지가 있다. 호리병도 있는데 갈색 교유(絞釉)를 흐르는 구름이 에워싸듯이 생동감 있게 처리했고, 바닥에는 먹으로 ‘함화(咸和)’라는 발해 연호가 쓰여 있다. 발해 그릇이 중국에서도 높이 평가받았던 사실은『두양잡편(杜陽雜編)』에 나온다.
다음으로 기와와 벽돌이다. 발해 기와에는 암키와·수키와·치미·용면와(龍面瓦)·기둥밑장식〔柱礎裝飾〕등이 있다. 이들 기와에는 유약을 바른 것과 바르지 않은 것이 있는데 유약은 녹유를 바른 것이 대부분이고, 자색 유약을 바른 것도 일부 있다.
 
암키와의 겉에는 새끼줄 무늬·그물 무늬·마름모꼴 무늬 등이 장식되어 있다. 안쪽에는 포목 무늬가 많으며, 가장자리에는 손가락으로 누른 무늬나 연주문(連珠紋) 또는 톱날 무늬가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수키와는 막새기와가 대표적이다.
 
수막새의 문양으로는 연꽃잎 무늬가 주종을 이룬다. 고구려 전통을 강하게 띠면서 발해 고유의 양식을 드러낸다. 연꽃잎은 대체로 양식화되어 있는데, 잎의 숫자는 6개가 기본을 이루면서 4개에서 8개에 이른다. 연꽃잎 사이에 장식을 넣은 것이 매우 특징적인데, 연해주 코르사코프카(Korsakovka) 절터에서는 봉황새를 부조해 넣은 것이 발굴되었다. 발해 기와 가운데에는 문자를 찍거나 새긴 것이 다수 있다.
 
건물에 장식적 효과를 더해 주는 기와에는 치미·용면와·기둥밑장식 등이 있다. 치미는 상경성·서고성·연해주 아브리코스 절터 등에서, 용면와는 상경성·서고성 등지에서 발견되었다. 기둥밑장식은 발해에서 독특하게 발견된다. 커다란 고리 모양으로 기둥과 주춧돌이 만나는 부분을 씌워 장식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비가 들이쳐 기둥이 썩는 것을 방지하였다.
 
금속공예품에는 쇠나 구리 또는 은이나 금으로 만든 것들이 많다. 2004년과 2005년에 용해고분군에서 발굴된 13호분과 14호분에서 도굴되지 않은 채 금제품이 다수 출토되었다. 13호분에서는 금팔찌와 금비녀 등이 출토되었고, 14호분에서는 금관 장식, 금판을 붙인 옥대(玉帶)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금관 장식이다. 이것은 길다란 잎사귀가 세 갈래로 갈라진 모양인데, 가운데 것은 위로 곧게 솟아 있고, 그 양쪽 것은 뒤로 날개를 편 듯이 구부러져 있다. 전체 모습은 고구려 조우관과 매우 닮았다.
 
814년에는 발해 사신이 당나라에 금과 은으로 만든 불상을 바쳤다. 연해주 아누치노(Anuchino) 구역에 있는 노보고르데예프카(Novogordeevka) 산성은 커다란 수공업 중심지였음이 밝혀졌다. 하남둔(河南屯) 고분에서 발견된 순금 세공품은 금 알갱이를 촘촘하게 붙인 누금(鏤金) 수법이 뛰어나다. 또한 용두산(龍頭山) 고분군에서 발굴된 금제 관장식은 고구려 조익형 관식을 닮아서 고구려 계승성을 실물로 확인해준다.
 
연해주 크라스키노 성터 부근의 강가에서 발견된 청동용(靑銅俑)은 발해인의 얼굴과 의상을 자세히 보여 준다. 청동으로 만든 기마인물상(騎馬人物像)은 상경성, 연해주 우수리스크 등에서 발견되었는데 대단히 양식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1975년에 상경성 토대자(土臺子)에서 발견된 사리함에 새겨진 사천왕상(四天王像)도 주목된다. 방형의 은합(銀盒) 4면에 양각한 것으로 선이 가늘고 유려하게 표현되어 있다.

발해 문화 http://tadream.tistory.com/6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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