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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화백과사전 (검색어) "발해" 글에서 [주요 유적]에서 "1. 성터와 건물터" 내용만 가져왔음. 

발해의 성
1. 성터와 건물터
 
성터에 대한 체계적인 학술 조사는 1933년과 1934년에 일본 동아고고학회(東亞考古學會)가 동경성(東京城: 지금의 상경성)을 발굴한 것이 최초이다. 그 뒤 많은 성터들이 확인되었다. 이들은 그 중심지였던 만주의 동부 지역에서뿐 아니라 북한,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도 고루 분포해 있다. 발해 성터에는 평지성, 산성이 있는가 하면, 중심이 되는 성을 방어하기 위한 보루, 차단성도 있다.
 
성을 쌓는 재료로 볼 때에 토성(土城), 석성(石城), 토석 혼축성(土石混築城)이 있다. 평지성은 토성이 대다수이고, 산성은 석성이 대부분이다. 평면은 긴네모모양〔長方形〕·네모모양〔方形〕·부정형 등이 있다.
 
발해는 전국을 부(경)-주-현으로 설정하여 통치했다. 주요 관청의 소재지에는 성을 쌓아 통치 거점으로 삼았으니, 대체로 도성, 부성, 주성, 현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도성으로는 성산자산성(城山子山城), 상경성(上京城), 서고성(西古城), 팔련성(八連城) 등이 있다. 성산자산성은 중국 지린성 둔화(敦化)에 있는 초기 도읍지이다. 대조영이 성을 쌓고 도읍으로 정한 동모산이 이곳으로 추정된다.
상경성은 헤이룽장성 영안(寧安)에 있는데, 8세기 중반에 문왕이 이곳에 도읍을 옮긴 뒤로 가장 오랫동안 수도가 되었다. 서고성은 지린성 화룡(和龍)에 있는데, 8세기 전반기에 일시적으로 도읍을 삼았다. 팔련성은 지린성 혼춘(琿春)에 있으며, 8세기 후반기에 10여년 간 도읍을 삼았다.

부성으로는 청해토성(靑海土城)·소밀성(蘇密城)·대성자고성(大城子古城) 등이 있다. 청해토성은 함경남도 북청(北靑)에 있는데, 5경의 하나인 남경 소재지이다. 소밀성은 지린성 화전(樺甸)에 있으며 장령부(長嶺府) 소재지이다. 솔빈부(率賓府)의 소재지로는 대성자고성이 지목되고 있다.

주성으로는 크라스키노(Kraskino)성·온특혁부성(溫特赫部城)·남성자고성(南城子古城)·남호두고성(南湖頭古城) 등이 지목된다. 크라스키노 성은 연해주 하산(Khasan)에 있는데, 동경 관할의 염주(鹽州) 소재지이다. 남성자고성은 독주주(獨奏州)의 하나인 속주(涑州)의 소재지로 추정된다. 남호두고성은 상경 관할의 호주(湖州) 소재지일 것이다.
 
발해 성터와 관련하여 고구려 및 당나라 성과 비교해 발해 성의 변화 과정을 언급한 연구가 주목된다. 발해 성은 성산자산성처럼 초기에 산성에 의지했는데, 이것은 환인(桓仁) 오녀산성이나 집안(集安) 환도산성에서 볼 수 있듯이 고구려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8세기 중반 이후 당나라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장안성(長安城)을 모방한 평지성 중심의 방어체계로 전환한다. 따라서 전체 시기를 놓고 볼 때, 발해의 성은 건국 초기에 고구려 양식을 따르다가 당나라 양식으로 전환했다.
 
발해시대의 건물로서 궁전이나 관청터 등이 발굴되었다. 절과 탑 자리도 많이 확인되었으며 평민 주거지도 조사되었다. 건물 성격에 관해 논란이 있는 24개석 주춧돌 유적도 10여 곳 발견되었다.
 
궁전과 관청 자리는 상경성에서 조사된 것이 대표적이다. 2천년대에 들어 서고성과 팔련성에서도 궁궐지가 발굴되었다. 상경성 궁전은 5개의 건물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고, 각 건물은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왕이 거처하던 건물지에서는 온돌이 발굴되었는데, 이것은 고구려 온돌을 전해받은 것이다. 관청 자리는 일부만 조사되었다.
 
이 밖에 궁성의 동쪽 구역에는 어화원(御花園)이라 불리는 궁궐 후원이 있었다. 이곳에는 인공으로 만든 못과 산이 있고 정자터도 확인되었다. 상경성 부근의 목단강에는 발해시대에 사용되었던 오공교(五孔橋), 칠공교(七孔橋)로 불리는 교량 유적이 남아 있다.
 
한편, 성에서 벗어난 지역에서도 주거 유적들이 발견되었다. 평민 주택으로 보이는 반지하식 건물지들이 동녕(東寧) 단결(團結)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연해주 일대에서도 성 안팎에서 화덕자리나 온돌 장치가 딸린 반지하식 또는 지상식 주거지들이 발굴되었다. 건물 축조에 사용되었던 기와와 벽돌을 굽던 가마터도 상경성 부근의 행산(杏山)과 크라스키노 성터 등지에서 발굴되었다.
 
발해 건물의 외형은 1987년에 연해주 하산 구역에서 발견된 불판(佛板)에 불상이 안치된 목조 건물에서 찾아볼 수 있고, 상경성 석등 상부에도 목조 건물이 묘사되어 있어 이 방면의 연구에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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