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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화백과사전 (검색어) "발해" 글에서 [주요 유적]에서 "2. 무덤" 내용만 가져왔음. 

발해의 고분
2. 무덤
 
고분들은 주로 구국(舊國)의 소재지였던 지린성 돈화, 상경용천부의 소재지로서 가장 오랫동안 수도였던 헤이룽장성 영안 상경성 등에서 발견되었다. 중경현덕부의 소재지인 지린성 화룡 서고성, 동경용원부의 소재지인 지린성 혼춘 팔련성 주변에서도 발견된다. 또한 서경의 관내였던 지린성 통화(通化), 남경의 관내였던 함경남북도 지역, 변방에 해당하는 길림시 지역, 수분하(綏芬河) 유역, 러시아 연해주 남부 지역 등에서도 고분이 발견되었다. 연해주에서는 고분이 매우 적게 발견되었다.
 
주요한 고분군은 다음과 같다. 돈화에 있는 육정산(六頂山) 고분군에는 제1구역에 30여 기, 제2구역에 130기가 확인되었다. 1949년에 정혜공주(貞惠公主) 무덤이 발견됨으로써, 발해 초기의 왕실과 귀족들이 묻혀 있음이 확인되었다.
서고성에 가까운 화룡 용두산(龍頭山) 고분군에서도 1980년에 정효공주(貞孝公主) 무덤이 발견되었다. 용두산 고분군은 제일 남쪽의 석국(石國)고분군, 중간의 용해(龍海)고분군, 북쪽의 용호(龍湖)고분군으로 나뉘는데, 정효공주 무덤은 용해고분군에 속한다. 용해고분군에서는 2천년대에 들어 20기의 고분이 확인되어 15기가 발굴되었다. 발굴된 무덤은 돌방흙무지무덤〔石室封土墓〕9기, 대형 벽돌방무덤〔塼室墓〕2기, 대형 벽돌방탑묘〔塼室塔墓〕2기, 이혈(異穴) 어울무덤〔合葬墓〕한 쌍이다. 이 고분군에서 효의황후 및 순목황후 무덤이 확인되었다.
 
상경성 부근에서는 왕실 무덤들인 삼릉둔(三陵屯) 고분군이 발굴되었다. 벽을 돌려서 왈(曰)자 모양의 능역을 조성한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다. 남쪽은 제사구역이고 북쪽은 무덤구역인데, 이 능역에서는 3기가 발굴되었고, 그 부근에서도 1기가 더 발굴되었다. 1호묘는 내부가 드러난 채 오랜 기간 방치되어 있었고, 2호묘에서는 벽화가 발견되었으며, 4호묘에서는 삼채 향로가 발굴되었다.
 
상경성 부근의 홍준어장(虹鱒魚場) 고분군에서도 1990년대에 고분 323기, 방단(方壇) 7기, 집터〔住居址〕1기를 발굴하고, 유물 1,800여 점을 수습했다. 축조 재료에 따라 석축묘(石築墓), 전축묘(塼築墓), 석전혼축묘(石塼混築墓) 세 가지로 대별되고, 움무덤〔土壙墓〕은 발굴되지 않았다. 제단 시설이 발굴된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다.
 
북한에서는 화대 금성리 고분에서 벽화고분이 발굴되었고, 근래에 연변대학과 공동으로 청진 부거리 고분군을 발굴하여 국내에서 보고서를 출간했다.
 
연해주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 체르냐티노(Cherniatino) 5고분군에서 159기의 고분이 발굴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연해주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움무덤이 대다수를 이루면서 돌방무덤〔石室墓〕, 돌깐무덤〔敷石墓〕, 돌돌림무덤〔圍石墓〕, 무시설 무덤 등 다양한 고분 양식이 확인되었고, 장법에서도 매장, 화장(火葬), 굴지장(屈肢葬), 단인장(單人葬), 다인장(多人葬), 1차장, 2차장 등 다양한 모습이 나타나서 주목된다. 지방의 말갈사회에 발해 중앙문화가 침투되어 들어가는 모습을 추적해볼 수 있는 고분군이다.
 
발해 고분에는 흙무덤, 돌무덤, 벽돌무덤 등이 있다. 흙무덤은 건국 이전부터 유행했던 양식이다. 돌무덤은 다시 돌방무덤, 돌덧널무덤〔石槨墓〕, 돌널무덤〔石棺墓〕로 나뉜다. 이 중 돌방흙무지무덤〔石室封土墓〕가 최상층의 발해 무덤을 이룬다.
 
돌을 이용해 무덤을 쌓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고구려에서 영향을 받았다. 특히 돌방흙무지무덤은 고구려 후기의 양식을 거의 그대로 계승한 것인데, 정혜공주 무덤이 대표적이다.
 
벽돌무덤은 당나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써 왕실을 중심으로 수용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정효공주 무덤이다. 이 무덤은 벽을 벽돌로 쌓으면서 천장은 돌로 평행고임을 해 당나라 양식과 고구려 양식이 결합되어 있다. 이 밖에 삼릉둔에서 발견된 고분들은 돌을 벽돌처럼 깎아서 축조하였다.
 
매장 방식으로 단인장·2인합장·다인합장이 모두 보인다. 2인합장은 부부 매장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인합장은 발해 매장 습속의 특색을 이루는데, 주인공과 배장자가 뚜렷하게 구별된 예도 있다. 배장자는 적게는 1인에서 많게는 14인에 이른다. 1차장과 2차장이 모두 있으며, 한 무덤에서 두 가지가 혼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 2차장 사람뼈〔人骨〕는 대체로 추가장(追加葬)에 의한 것이다. 1차장의 경우에는 널〔木棺〕을 사용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널 없이 직접 묻은 예도 보인다. 발해 초기에는 육정산 고분군에서처럼 화장도 유행했다. 이것은 시신을 널에 넣은 채 무덤 안에서 불에 태운 것이다.
 
이 밖에 육정산 고분군에서는 사람뼈와 함께 동물뼈도 출토되었다. 동물뼈로는 말, 소, 개의 뼈들이 있다. 무덤 위에 건물을 짓던 풍습도 있었다. 삼릉둔 고분과 하남둔(河南屯) 고분, 용해고분군에서는 흙무지〔封土〕위에 주춧돌이 남아 있는 무덤도 발견되었다. 육정산 고분군과 용두산 고분군에서는 흙무지에서 기와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러한 묘상 건축물 전통은 불교가 성행하면서 탑으로 변모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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