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palhae.org/sogilsu/balhe/balhe-34.htm

부거석성은 동경 용원부 : 북한 학자 주장
서 일 범(연변대 교수)
 
부거석성은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 부거리에 있다. 성은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인 18세기 후반기에 이미 기초가 드러나 있은 상태였으므로 지금은 원래의 완전한 모습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성벽은 돌로 쌓았으며 현재까지 남아있는 성벽의 길이는 1,236m이고, 성벽의 너비는 4m, 높이 는 2m이다. 성문 초석은 네 곳에서 발견되었으므로 적어도 네 개의 성문이 있은 것으로 인정된 다. 성벽은 밑에 큰돌을 깔고 그 위에 좀 작은 돌로 2∼3단 안으로 조금씩 들여쌓은 다음 다시 곧게 올려 쌓는 이른바 고구려의 '퇴물림식' 축성법으로 쌓았다.
성안에는 성문들을 연결하는 길들이 가로세로 나 있으며, 여러 곳에서 집자리와 두가닥 고래 온돌시설들이 드러났다. 또한 성안에서는 고구려, 발해의 기와조각들이 수없이 출토되었으며, 독, 단지, 시루, 버치, 쌀함박, 나팔병 등 도기들과 부채모양의 쇠활촉들도 출토되었다. 성안에서 나온 발해의 기와는 동해안 일대의 발해 유적인 성상리토성에서 나온 것과 같으며 쇠활촉은 청해토성 에서 나온 것과 같다고 한다. 부거석성의 축조방법이나 출토유물로 미루어 이 성도 고구려 때에 쌓고 발해 때까지 사용해온 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거리 일대에 대한 고고학적인 조사·발굴이 주목받는 이유는 발해의 동경 용원부 소재지를 이 지역으로 볼 수 있는 일부 고고학적 자료들이 밝혀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종래 동경 용원부의 위치비정에 있어서 훈춘 팔련성설이 거의 일반화된 정설이었으나, 지난 90년 초부터 북한 학계에 서는 이에 대한 재검토를 시도함과 동시에 부거리 일대가 동경 용원부의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동경용원부-팔련성설의 부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요사 지리지에는 동경용원부가 둘레 20리에 달하는 석성이었다고 하였는데, 팔련성은 토성일 뿐 아니라 둘레도 7리 밖에 되지 않는다.
 
둘째, 신당서 발해전에는 동경 용원부가 동남으로 바다에 면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팔련성은 바다로부터 200여 리나 떨어져 있는 지점에 있다.
 
셋째, 삼국사기 지리지에 발해의 책성부와 신라 천정군 사이에 39개의 역참이 있다고 하는데, 신라의 시발역은 종래의 학자들이 주장한 덕원이 아니라 강릉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점이다.
 
넷째, 발해와 일본의 교섭 기록을 보면 겨울철에도 사신이 오갔는데, 용원부의 항구인 모구위 (러시아 포시예트)는 겨울철에 어는 항구임으로 사신파견이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청진시 부거리 일대는 위에 말한 몇 가지 조건을 동시 갖춘 지역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첫째로, 부거석성이 발해의 성으로 확인된 석성이었다는 점이고, 둘째로, 그곳은 동남쪽으로 바다에 직면했다는 점이며, 셋째로, 부동항인 용제항과 여진항을 끼고 있으며, 넷째로, 조선시대의 역참제도로 미루어 볼 때, 이곳은 강릉에서부터 39개 역의 거리에 있다는 점이다. 부거석성과 그 주변의 산성, 봉수체계 그리고 발해무덤 떼의 분포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보아도 북한 학계의 이러한 주장은 일리가 있는 것으로 보여지나 아직 이 일대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은 조건에서 속단할 수는 없다고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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