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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랑 : 삼론종을 발전시킨 고구려의 승려  


고구려는 우리 역사상 가장 먼저 불교를 받아들인 나라였다. 원효, 의상 등 신라에는 유명한 고승들이 많지만, 고구려 출신 스님 가운데는 널리 알려진 스님이 적다. 그렇지만 고구려 출신 스님 가운데 불교 발전에 두드러진 업적을 남긴 분도 많다. 대표적인 스님으로 승랑을 꼽을 수가 있다.

고구려 불교가 태동할 무렵에 태어나다
 
승랑(僧朗, ?~?)은 5세기에 고구려 요동성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없다. 다만 447〜456년경에 태어나 530년대까지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승랑이 성장할 당시, 고구려에는 불교가 막 퍼지기 시작했다. 372년(소수림왕 2) 북중국의 전진(前秦, 351~394)에서 온 순도 스님이 불상과 불교 경전을 전해 주었고, 순도 스님과 374년 고구려에 온 아도 스님을 위해 375년 소수림왕이 초문사와 이불란사를 지어주어 불교를 신앙하도록 했다. 고구려 사람들이 불교를 알게 된 것은 공식적인 불교 전래 이전인 4세기 초부터라고 할 수 있지만, 5세기 초에도 여전히 불교는 널리 퍼지지 못한 상태였다. 따라서 불교 교리에 대한 연구나 이해도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총명하고 배우기를 좋아했던 승랑
 
그렇지만 그가 태어난 요동성 일대는 고구려의 다른 지역에 비해 불교가 발전된 지역이었다. 승랑은 이곳에서 구족계(具足戒: 승려가 되어 지켜야 할 계율)를 받아 승려가 되었다. 이해능력이 뛰어난 그는 많은 불교 경전들을 섭렵했다. 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천성이 널리 배우기를 즐기고 생각의 능력도 좋아서 읽어본 경론은 모두 강의할 수 있고, 특히 화엄경과 삼론에 가장 익숙하다.”

[삼론조사전집(三論祖師傳集)]에는 승랑이 다른 사찰에 가서 계본(戒本: 승려가 지켜야 하는 것들을 조목별로 적은 것)을 빌려왔는데 본사로 오는 길에 모두 암송하였기에 도착 즉시 다시 되돌려 보냈고, 사람들이 이를 다시 암송해 보라고 하자 물 흐르듯이 단 한 구절도 막힘 없이 읊었다고 한다. 승랑은 총명했을 뿐만 아니라 얼굴이 매우 희고 잘 생겼으며, 체구도 우람했고, 위엄 있게 덕을 갖춘 모습에 당할 자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고구려에서 배운 불경에 만족하지 못했다. 승랑은 더 넓고 깊게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결심했다.

배움을 위해 여행을 떠나다
 
승랑은 마침내 30세 무렵인 대략 476년 즈음에 고향을 떠나 북중국으로 건너가 여러 도시를 다니며 불교를 공부했다. 특히 장안(長安)에서 불교의 중요 이론인 반야사상과 화엄사상, 그리고 삼론의 이치를 담은 중도사상을 배웠다. 479년경 둔황(敦煌)에 가서 담경(曇慶) 법사에게 삼론(三論)을 배운 후 교화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북중국의 서쪽 끝인 둔황은 장차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될 석굴사원이 한참 만들어지는 등 불교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었다. 둔황에서 열심히 삼론학을 배운 승랑은 삼론종을 중심으로 자신의 공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삼론이란 제2의 석가로 추앙받는 인도 출신 나가르주나(龍樹, 서기 150〜250년경) 스님이 만든 ‘중론’, ‘십이문론’, 그의 제자가 만든 ‘백론’ 이렇게 3가지 글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불교의 한 학설이다. 이를 쿠마라지바(鳩摩羅什, 344〜413) 스님이 5세기 초에 중국에 소개했다. 그런데 승랑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아직 제대로 연구되지도 못한 상태였다. 승랑은 삼론학을 새롭게 집대성했다. 때문에 그가 등장하기 이전의 삼론을 구삼론, 승랑이 발전시킨 삼론을 신삼론으로 구분할 정도다.

484년 이전에 승랑은 둔황을 떠나 불교가 번성하던 양자강 유역에 위치한 제나라의 수도 건강(建康, 난징)으로 갔다. 남제(南齊) 무제(武帝, 재위: 482〜493)의 둘째 아들인 경릉왕(竟陵王) 소자량(蕭子良)은 불교에 심취해 유명한 승려들을 모셔 불법을 들었는데, 승랑도 그의 초청을 받아 섭산에서 불교를 강의했다.

삼론종의 개조(開祖)가 되어 삼론학을 전파하다
 
승랑은 차츰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공부한 삼론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러자 종산(鍾山)에 있는 초당사(草堂寺)에서 주옹(周顒)이란 선비가 승랑을 스승으로 모시고자 간절히 청을 했다. 승랑은 그에게 삼론학을 가르쳐 주었고, 주옹은 승랑에게 배운 바를 [삼종론(三宗論)]이라는 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주옹의 노력 덕분에 승랑의 업적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그는 여러 스님들의 초청으로 장쑤성 섭산 지관사로 와서, 삼론학을 설법했다. 당시 중국의 불교계 지형을 살펴보면 북중국에서는 불교 교리 가운데 [아비달마론]이 성행하고, 남중국에서는 [성실론(成實論)]에 치우치는 등 삼론학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였다. 승랑은 남중국의 성실학파를 비판하는 입장에 있었다. 승랑이 설법하자, 곳곳에서 그에게 배우려는 스님과 신자들이 몰려들었다.

승랑이 설교를 할 때면 늘 1,000명 이상의 사람들로 붐비고 서로 땀을 흘리면서 꿇어앉아서 강의를 들어도 불평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산속 절에서 시작된 승랑의 가르침은 양나라 수도에도 퍼졌고, 마침내 양(梁)나라 무제(武帝, 재위: 502〜549) 임금도 승랑의 이름을 듣게 되었다.

512년 무제는 승랑을 초청하여 그에게 삼론학을 배웠다. 뿐만 아니라 무제가 선발해 파견한 지적(智寂, 당시 양나라 불교 교단의 최고 지도자)ㆍ승전(僧詮) 등 고승 10명에게 삼론학을 가르쳤다. 512년 이후 섭산의 서하사가 중창(重創: 낡은 건물을 헐고 고쳐지어짐)되자 승랑은 그곳으로 옮겨 주지를 맡으며 오래 머무르게 되었다.

승랑과 고구려
 
승랑 스님이 서하사에서 설교를 한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려진 바가 없다. 승랑의 제자 가운데 승전이 그의 학설을 계승하였고, 승전의 학통을 법랑(法朗)이 계승했으며, 법랑의 후계자인 길장(吉藏, 549〜623) 대사는 삼론학을 집대성했다. 길장은 자신의 삼론학이 모두 고구려 승랑 스님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그의 저서에서 밝혔다. 이처럼 승랑은 중국과 한국, 일본에 널리 퍼진 삼론종의 실질적인 개조(開祖: 종파를 일으킨 사람)로 추앙받고 있다. 그가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를 중국에 가서 발전시킨 것은 인류 지혜의 산물인 종교와 학문 등을 발전시키는 일에는 국적이 문제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는 고구려로 돌아오지는 못했다. 그는 530년 무렵에 서하사에서 생을 마감한 듯하다. 양나라에서 그를 따르는 스님과 신도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을 두고 귀국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당시 고구려에서는 불교가 전체적으로 침체기였기 때문에, 삼론학이 널리 전해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그가 고구려로 되돌아오지 못했던 듯하다.

하지만 6세기 말엽이 되면 고구려에도 다시 불교가 발전하기 시작한다. 이때 고구려 스님 가운데 삼론을 강의한 스님들이 여럿 등장한다. 인법사(印法師), 실법사(實法師)는 수(隋, 581〜618)나라에 가서 삼론을 공부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설법을 한 스님들이다. 혜관(慧灌) 스님은 수나라에 건너가 길장 대사에게서 삼론을 배운 후 귀국하여, 다시 625년 고구려 사신을 따라 왜국에 건너가 일본 삼론종의 개창자가 된 분이다. 도등(道登) 역시 길장에게서 삼론을 배운 후, 혜관보다 약간 늦게 왜국에 건너가 삼론종을 전한 스님이다. 이처럼 승랑이 발전시킨 삼론종은 고구려 스님들에 의해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6〜7세기 고구려 불교의 주류는 삼론이었다고 할 수 있으니, 승랑의 업적은 결국 고구려에도 큰 영향을 끼친 셈이다.


<참고문헌>
김성철, <승랑과 승조>, [불교학보] 61집, 2012; 장석영, <승랑의 삼론학과 고구려 교학과의 연관성에 대한 소고>, [구산논총] 11집, 2006; 김성철, <승랑의 생애에 대한 재검토1>, [한국불교학] 40집, 2005; 남무희, <고구려 승랑의 생애와 그의 신삼론사상>, [북악사론] 4집, 1997.


김용만 /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글쓴이 김용만은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삼국시대 생활사 관련 저술을 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한국고대문명사를 집필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 등의 책을 썼다.
 
그림장선환 /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학과와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화가와 그림책 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경희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http://www.fartzzang.com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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