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노무현 NLL 포기’ 딜레마에 빠졌다
공식입장 여부 번복에 오락가락…회담주역 박근혜 외교안보실세 김장수·김관진·윤병세도 침묵
입력 : 2013-07-12  18:10:10   노출 : 2013.07.13  09:23:21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임의공개한 국정원이 그 내용조차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라고 일방해석하는 공식입장을 발표하고 나서면서부터 어떠한 입장에 서야할지 정하지 못한채 딜레마에 빠져있다.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라는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주장에 동조했다가는 대한민국 정부가 이전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영토선을 포기했다’고 인정해버리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반대로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밝힐 경우 박 대통령을 비롯해 국정원과 새누리당 모두 허위사실을 갖고 지난 대선 때부터 지금까지 정치공세를 넘어 정치공작에 가담한 꼴이 된다. 이렇게 얘기하기도 저렇게 얘기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 대변인이 자신이 한 말을 사실과 다르게 해명하는가 하면, 한 발 뒤로 물러서는 등 오락가락하는 행태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대변인을 맡고 있는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정원에 이어 국방부 대변인이 남북정상회담 녹취록과 관련해 ‘NLL을 포기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밝힌 것과 관련해 “국방부 국정원 쪽에서 자기의 입장을 얘기한 것이고, 정부의 전체 입장에서는 논의하거나 입장을 정한 것은 없다”며 “공식 정부입장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정부대변인인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연합뉴스
  
이 같은 유 장관의 발언이 미디어오늘에 보도되자 노점환 문화부 홍보담당관은 유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한 뒤 이런 말을 했는지 물어본 뒤 이날 밤 해명자료를 냈다. 문화부는 해명자료에서 “유진룡 장관은 공식 휴가중이며 산행중 전화가 걸려와 NLL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확한 팩트나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대답했다”며 “따라서 ‘노무현 NLL 포기, 정부 공식입장 아니다’라는 보도내용은 사실과 다름을 밝힌다”고 주장했다.

미디어오늘이 취재할 때 했던 말을 해당 부처 담당공무원이 물어보니 ‘그런 게 아니다’라고 말을 바꾼 것이다. 이를 두고 노점환 담당관은 12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기사난 것을 본 뒤 보고하기 위해 확인전화를 했으며, 이 같은 해명자료 낸 것에 동의해서 자료를 낸 것”이라며 “절차를 밟아 해명자료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유 장관이 ‘공식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한 사실이 있는데 그런 사실이 없다고 거짓해명을 하느냐는 지적에 노 담당관은 “거짓해명이 아니라 장관은 ‘정확한 팩트나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말할 게 없다’고 대답했기 때문에 이 말이 더 중요한 말”이라며 “그러므로 공식입장인지 아닌지 말할 수 없다고 한 것이며, 실제로 (장관이 저와 통화할 때) 그런 취지로 말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상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NLL 발언을 두고 “이 말은 NLL 밑으로 우리가 관리하고 있는 수역에 공동어로구역을 만들자는 내용이고, 그 말은 우리가 관할하는 수역을 북한에 양보하는 그런 결과가 났다…그 결과는 바로 우리가 NLL을 포기하는 결과가 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해 남북정상이 우리측의 NLL 포기를 논의한 것으로 밝혔던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12일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김 대변인은 이날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내가 말한 부분은 김정일 발언한 것에 대한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에서 NLL을 포기했다는 판단이냐’는 질문에는 “그것은 아니다. 김정일 발언에 대해서만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정부 당국자들이 발언 진의를 번복하거나 발을 빼는 모습을 보이며 민감해하는 배경에는 2007년 정상회담 때 회담실무책임자들이 현재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수장을 맡고 있는 점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회담 당시 국방부장관을,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당시 합참의장을,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당시 청와대 안보정책수석이었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했다고 현 정부가 인정하는 순간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고위책임자들이 ‘NLL 포기에 동참한 사람들’이었음을 인정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김관진 국방부장관. ⓒCBS노컷뉴스
  
실제로 이들 세 사람은 당시 NLL을 기점으로 등거리 등면적의 공동어로구역 설정을 우리 정부 입장으로 정하는 데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남북정상회담록에 이런 말은 없으며 NLL과 북한의 해상경계선 사이를 공동어로구역으로 설정하는 논의가 이뤄졌다고 발표해 한 가지 사실을 두고 전혀 상반된 해석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회담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자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이들 3인이 더 이상 침묵해선 안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문 의원은 11일 자신의 블로그에 “지금 박근혜 정부에 있는 참여정부의 정상회담 관여 인사들이 이런 상황에 이르도록 이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옳지 않으며 비겁한 일”이라며 “세 분 모두 지금까지 거짓에 가세하지 않은 것이 매우 고맙지만, 더 이상의 침묵은 거짓을 인정하는 것이니 이제 진실을 말해달라”고 밝혔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문 의원에 따르면, 정상회담 이전인 지난 2007년 8월 18일 노 전 대통령 주재로 열린 남북정상회담 자문회의에서 ‘NLL은 남북 간의 실질적 해상경계선이므로 손댈 수 없다’는 기본 방침을 확인하고, ‘NLL 상의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공동어로구역 설정을 관철하자’는 방침을 결정했을 때 회의 때 김관진 당시 합참의장(현 국방장관)은 ‘NLL을 기선으로 해서 남북의 등거리 수역에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할 것’을 주장했다. 문 의원은 김 장관에게 “그 때 장관이 주장했던 공동어로구역이 NLL 포기였느냐”고 되물었다.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경우 정상회담 전후의 준비논의와 정상선언이행 대책논의에 두루 참여하면서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NLL에 대한 입장과 공동어로구역 취지를 여러 번 들었다고 문 의원은 전했다. 특히 2007년 11월 23일 남북 국방장관 회담 대책 보고회의에서, ‘NLL을 기선으로 해서 남북의 등면적 수역 4곳에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는 방안을 양보 없이 고수하겠다’는 회담 방침을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승인 받았으며, 실제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실제로 그 방안을 고수해 스스로 ‘NLL을 지키고 왔노라’고 언론에 말했다고 문 의원은 전했다. 문 의원은 김장수 실장에게 “노 전 대통령 앞에서 등면적 공동어로구역을 표시한 지도까지 준비해 와서 직접 보고한 방안이 NLL을 포기하는 것이었느냐”고 반문했다. 

윤병세 당시 청와대 안보정책수석(현 외교부장관)을 두고 문 의원은 “저와 함께 회담 전후의 모든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회담 준비 실무 작업을 총괄했으므로 NLL의 진실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이와 관련해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11~12일 여러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김관진 국방장관의 입장과 관련해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12일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김 장관은 말을 하지 않는다. 대화록 워딩의 의도가 뭔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며 “(내가 밝힌 것과 마찬가지로) 김정일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11일 아침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지난 (노무현) 정부에 있다가 이번 정부에 온 분 중 저와 김관진 국방부장관(당시 합참의장),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당시 국방부장관)이 현 정부의 외교안보수장을 맡고 있다”며 “이 세 사람들의 국가관과 안보관이 어떤지는 잘 알 것이다. 애매모호하다면 이번 정부에서 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각도에서 비춰보면,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어떻게 준비했을지 확인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여러 언론에서 전했다. 

이를 두고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1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국가 중요 정상회담 대화록에 대해 공개하거나 해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결정인데도 박근혜 정부엔 컨트롤타워에 의해 이뤄지고 있지 않다”며 “누가 뭘 하면 우왕좌왕하고 뭔가 정부가 어수선하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청와대 따로, 국정원 따로, 국방부 따로, 문화부 따로, 과거 정부 몸담은 사람 따로, 새로 들어온 사람 따로 얘기하는 완전히 ‘따로 정부’라고 할 판”이라며 “이렇게 입장이 다르니 딜레마에 빠져서 어떻게 하지 못한채 그저 박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나마 이런 결정이 시스템대로 해야 하는데 그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며 “국가안보실이 그런 것의 콘트롤타워인데 김관진 실장이 문제의 지난 2007년 정상회담 실무자이고 후속회담 당사자 아니냐. 대체 이런 나라꼴이 어디있느냐. 답답한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윤병세 외교부장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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