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두환 비자금, 3억~5억씩 쪼개 계좌 갈이…2000억 넘었다”
등록 : 2013.07.19 08:48수정 : 2013.07.19 10:21

시공사 창고의 고가구들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 친인척의 집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이틀째 나선 1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출판단지 안에 있는 전 전 대통령의 맏아들 전재국씨의 시공사 창고에 도자기와 고가구들이 쌓여 있다. 이 사진은 유리창 틈을 통해 찍었다. 촬영 직후 시공사 직원들은 종이와 테이프로 틈새조차 막아버렸다. 파주/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1995년 수사팀 “평균 석달마다, 동원 계좌만 수천개”
명의자 조사 엄두 못내…전문가 치밀한 돈세탁 의심

전두환(82) 전 대통령이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3억~5억원씩 쪼개 수백개의 가명 및 차명 계좌에 넣은 뒤 평균 3개월마다 또다른 사람 이름의 계좌로 옮기는 방식으로 세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 전 대통령이 비자금 관리에 이용한 명의자만 수천명, 수천개 계좌여서, 1995~1996년 당시 검찰 수사팀은 이들 계좌를 다 추적하기 어렵다고 보고 수사를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전 전 대통령은 대법원에서 확정된 추징금 2205억원 가운데 533억원만 추징당했다. 반면, 노태우(81)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복잡한 세탁 과정을 거치지 않아 검찰이 비교적 쉽게 추징할 수 있었다.

18일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에 참여했던 검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전 전 대통령은 하나의 가명 및 차명 계좌에 3억~5억원씩 넣고는 몇달 뒤 다른 가명 및 차명 계좌로 돈을 옮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700~800개 정도의 차명계좌에 3억~5억원씩 돈이 들어갔고, 상당수 계좌는 이후 평균 3개월에 한번씩 돈이 빠져나가 연결이 끊겼다. 한달 반 만에 다른 차명계좌로 빠져나간 돈도 있었다. 금융에 밝은 전문가들이 비자금을 치밀하게 관리한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은행 지점의 한 창구에서 차명계좌에 든 돈을 모두 인출한 뒤 같은 지점의 다른 창구에 가서 다른 명의의 차명계좌로 입금하는 식이었다. 이 때문에 수사팀은 특정한 날 계좌에서 3억원이 인출되면, 같은 날 해당 은행 지점에서 거래된 모든 전표를 훑어 비슷한 금액이 입금된 계좌를 찾아야 했다.

당시 수사팀의 또다른 관계자는 “정확하진 않지만 당시 그렇게 쪼개져 관리되던 자금이 2000억원이 훨씬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달 만에 돈이 옮겨져서 명의자만 수천명이었다. 그래서 계좌 명의자를 불러 조사하는 것이 무의미했다”며 “수십명의 전담팀을 꾸려서 몇년 동안 추적해야 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밝힐 수 있을 정도라는 판단이 들어 더 이상 자금을 추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검찰은 공식적으로 “전 전 대통령 가명·차명 계좌, 이들 계좌와 이어진 계좌 등 183개 계좌를 추적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금융당국으로부터 친인척 등의 명의로 개설돼 있는 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의 계좌번호 등을 넘겨받아 추적했고, 은행 지점장을 불러 전 전 대통령의 계좌를 확인했다. 또 재벌 총수들을 호텔로 불러 조사하며 ‘100억~200억원을 건넸다’는 진술도 받아냈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대기업 등으로부터 9500억원의 돈을 거둬들인 것으로 추산했고, 이 가운데 5774억5000만원을 이른바 ‘통치자금’으로 썼다고 보고, 43개 업체로부터 받은 2295억5000만원만 뇌물 혐의로 기소했다. 1997년 대법원은 2205억원을 뇌물로 인정했다.

한편, 검찰이 지난 16일 전 전 대통령의 두 아들 자택을 압수수색할 때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 영장을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김원철 송경화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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