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NLL 대화록 공개했다 거짓 들통…줄줄이 고발
NLL 기준 등면적 지도 결정타, 회의록엔 노무현 되레 NLL 고수 “기본합의 연장선에서”
입력 : 2013-07-17  09:03:51   노출 : 2013.07.20  09:24:40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국가정보원이 빗발치던 불법대선개입 규탄 여론과 국회 국정조사 실시 요구 국면에서 돌연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했다가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한 것이 드러날 위기에 처했을 뿐 아니라 정치개입 금지 및 허위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국정원장을 비롯한 간부진이 줄줄이 고발당하는 등 된서리를 맞고 있다.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한 보고서에 NLL을 기점으로 한 등면적 공동어로구역 지도가 들어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주장이 허위날조였다는 비판에 직면해있다.

▷‘노무현 NLL 포기 성명’에 민주, 국정원장·대변인 고발키로

민주당은 정치개입 금지 위반(국정원법) 혐의로 남재준 국정원장과 국정원 대변인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남 원장은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민주당에 검찰고발을 당한 것이 이번으로 세 번째이다. 민주당 국정조사 특위 위원이자 남북정상회담 녹취록 열람위원인 박범계 의원은 지난 1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 같이 밝히면서 지난 10일 발표한 ‘국정원 대변인 성명’을 이유로 들었다. 

국정원은 성명에서 “NLL 관련 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은 남북정상이 수차례 걸쳐 백령도 북방을 연한 NLL과 북한이 주장하는 ‘서해해상군사경계선’ 사이 수역에서 쌍방 군대를 철수시키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을 만들어 경찰이 관리하는 공동어로구역으로 한다는 것”이라며 “회의록 내용 어디에도 ‘NLL을 기준으로 한 등거리·등면적에 해당하는 구역을 공동어로구역으로 한다’는 언급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이 자체가 허위날조라고 박 의원과 민주당은 비판하고 있다.

▷정작 대화록엔 노무현 NLL 고수 “NLL, 기본합의 연장…바꾼다가 아니고”

NLL과 북한의 해상군사경계선 사이를 공동어로구역으로 하자는 것은 대화록 상 김정일 전 위원장의 발언일 뿐 노 전 대통령은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노 전 대통령은 명시적 답변을 하지 않은채 NLL에 대해 “현실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NLL 가지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기본합의의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 여기엔 공동의 번영을 위한 그런 바다이용계획을 세움으로써 민감한 문제들을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 돼 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나는 위원장하고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NLL은 바꿔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민감하게 시끄럽긴 되게 시끄럽다. 그래서 우리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안보지도 위에 평화 경제지도를 크게 위에다 덮어서 그려보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서해 북방 군사분계선 경계선을 쌍방이 다 포기하는 법률적인 이런 것 하면”이라는 김정일 위원장 말에 노 전 대통령은 곧장 “평화협력지대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를 해야 한다”며 “그것이 기존의 모든 경계선이라든지 질서를 우선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은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설치하기로 하고…실무협의를 해나가면 내 임기동안 NLL 문제는 다 치유가 된다”며 “NLL 보다 더 강력한 것”이라고 했다.

이는 김 전 위원장이 이런 저런 경계선이나 법을 포기하자는 제안을 노 전 대통령은 ‘평화협력지대’를 하면 NLL 보다 더 강력하다고 맞섰으며, 무엇보다 NLL은 남북의 “기본합의”에 따른다고 언급해 결국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 합의를 이끌었다. 

김정일 전 위원장도 “실무협상에 들어가서는 쌍방이 다 법을 포기한다, 과거 정해져 있는 것, 그것은 그때가서 할 문제”라며 “그러나 이 ‘구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발표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김 전 위원장조차 법을 포기하는 것은 실무협상에서 할 문제라고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아무리 읽어봐도 NLL을 포기했다고 보기 어려운데도 국정원은 두 정상이 NLL 포기하기로 한 것으로 단정하고 대국민 발표를 한 것이다. 그 시기도 여야가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회담 녹취록 원본을 어떻게 열람·공개할지 논의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박범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 NLL 문제를 ‘기본합의에 따른다’는 대목이 가장 중요하다며 “92년 체결된 남북합의서엔 ‘쌍방이 지배하는 것을 존중한다’고 돼 있는데 이는 NLL을 북한이 인정한다는 의미로, 남북합의에 따른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에 전달했다는 이른바 NLL 기준 등면적 지도. ⓒ윤호중 민주당 의원 공개
 
▷노무현 등면적지도 공개 “국정원 지도까지 거짓말” 결정타

특히 국정원 성명 뿐 아니라 그동안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NLL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한 새누리당 주장이 허위라는 결정적 근거가 된 것은 윤호중 의원이 공개한 이른바 노 전 대통령의 ‘NLL 등면적 지도’였다. 노 전 대통령이 회담 말미에 김정일 전 위원장에게 전달한 세권의 보고서 가운데 ‘경제공동체구상’의 공동어로구역 항목에 수록된 이 지도에는 공동어로구역이 NLL을 기점으로 설정돼 있다. 이밖에도 이후 2007년 11월 열린 남북국방장관급회담 때 우리측이 준비해간 지도에 나타난 공동어로구역 역시 NLL을 기점으로 등면적으로 설정됐다. 

이에 반해 국정원이 발표한 대변인 성명에 기입된 지도를 보면, 강화도 위쪽의 육상 군사분계선을 따라 서해상 서남방향으로 사선으로 선을 그어놓고 우리 해군이 그 선 아래까지 후퇴하는 가설을 세웠다. 국정원은 지도 밑에 “공동어로구역 설정시 우리 군함만 덕적도 북방선까지 일방적으로 철수하게 됨”이라고 썼다.

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을 했던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은 “이런 지도 자체는 정상회담 전후로 본 기억이 없는 지도로, 김정일 위원장 얘기를 지도로 완전히 옮겨놓은 지도”라며 “과연 국정원이 누굴 위해 일하는 조직인지 의심케하는 지도”라고 비판했다.

군사평론가인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도 “이는 국정원이 회의록 텍스트만 발췌왜곡하는 정도가 아니라 지도와 그림까지 왜곡한 것으로, 정상회담과 완전히 다른 지도를 만들어놓아 버렸다”며 “어떻게 얘기해도 설명이 안되는 지도”라고 지적했다.

▷국정원은 노무현 등면적 지도 몰랐을까

노 전 대통령의 등면적 지도가 김 위원장에 전달된 보고서에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을 국정원이 알고 있었는지도 관심사로 떠오른다. 국정원은 회의록 내용을 근거로 대변인 성명과 NLL 지도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김경수 본부장은 “당시 노 전 대통령이 ‘등면적 어로구역 지도도 포함돼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으며, 회의를 통해 검토와 재가했던 것”이라며 “이 보고서는 정상회담 직전에 최종적으로 완성됐으며 그해 9월 말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에 보고됐으며 회의과정에 국정원장과 국정원 간부들이 참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김 본부장은 “자료가 김정일 위원장에 전달된 것은 김만복 원장도 알고 있었다”며 “이를 현재 국정원이 상식적으로 몰랐을 리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 대변인은 1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의 등면적 지도 전달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를 묻자 “답할 필요가 없다. 답하지 않겠다”며 “대변인 성명에서 쓴 것이 전부”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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