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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를 다시 보자 3] 고구려사 쟁점들…(9)고분벽화
기사입력 2004-05-31 18:00:00 기사수정 2009-10-09 21:34:51


강서대묘 안 칸 북벽에 그려진 현무도에선 중국 수·당 고분벽화의 장식성과 사실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배경을 장식하는 구름, 연꽃, 천인 등이 사라진 텅 빈 공간에서 상상의 동물 현무가 신비로운 기운을 내뿜고 있다.-사진제공 전호태 교수

《고분벽화는 죽은 자의 생전(生前) 영광을 기리거나, 내세(來世)에서 누리고 싶은 삶을 형상화한 그림을 무덤 안에 표현한 장의(葬儀)미술의 한 장르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경우 신라와 가야에서는 모형을 껴묻는 습속이 오래 지속된 반면 고구려에서는 일찍부터 무덤 방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행했다. 고구려의 옛 땅에서 발견된 100여기의 벽화고분 가운데 벽화 내용이 비교적 충실히 남아 있는 것은 30여기에 불과하다.》

● 외부 문화를 고구려화한 고분벽화

고분벽화에서 읽을 수 있는 고구려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고구려가 외부 문화의 수용에 적극적이었으면서도 새로운 문화 수용에 나름의 기준을 적용했고, 또 일단 받아들인 문화요소들을 ‘고구려화’했다는 사실이다.

초기 고분벽화를 대표하는 안악 3호분과 덕흥리 벽화고분, 중국 지안(集安)의 각저총 벽화 등에서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다. 비교적 중국 화풍의 흔적을 강하게 담고 있는 안악 3호분 벽화 대행렬도(357년)에서도 구성과 내용에서 이미 중국 허베이(河北) 및 랴오닝(遼寧)지역 한(漢) 위(魏) 진(晉) 시대의 고분벽화에서 유행했던 행렬도의 특징은 사라져 가고 있다.

덕흥리 고분벽화 행렬도(408년)에 이르면 중국 고분벽화 행렬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요소들은 더욱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벽화의 등장인물 가운데 여인들의 얼굴과 복장은 고구려적 특징을 뚜렷이 담아 낸다. 각저총 벽화에서 ‘고구려’는 그 모습을 더욱 뚜렷이 드러낸다. 점무늬 저고리와 바지 차림의 벽화 속 남녀의 얼굴과 표정에서 전형적인 고구려인의 모습을 읽어 낼 수 있고, 간결하고 효과적인 화면 구성에서는 고구려 특유의 미감을 확인할 수 있다.

 

● 연꽃무늬와 비천의 독창성

중기 고분벽화에서 고구려는 다른 문화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주제와 구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연꽃으로만 장식된 고분벽화들이 고구려 전기의 주요 도시인 지안을 중심으로 유행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다.

동아시아에 불교가 크게 유행하면서 주요 왕조나 국가가 불교 신앙의 산물을 다수 만들어 냈지만, 고분 벽화의 주제로 연꽃무늬를 창안해 낸 경우는 고구려가 유일하다. 연꽃무늬 고분벽화는 427년 평양 천도 이후 전성기를 구가하던 고구려의 사회적 자신감이 만들어 낸 문화 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평양을 새로운 국가의 중심으로 삼은 뒤, 고분벽화는 지안과 평양을 중심으로 진행된 고구려의 이원적 문화 흐름이 한 줄기로 모아지던 시대적 현상을 담아 낸다. 쌍영총 벽화의 연꽃은 남북 문화권 별도의 표현 전통이 하나로 어우러지며 새로운 유형을 창안해 내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쌍영총 및 수산리 2호분 벽화의 등장인물들은 지안 지역 벽화에서 드러나는 건실함과 평양의 부드러움이 어떻게 만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안악 2호분 벽화의 비천(飛天)은 장천 1호분 벽화에서 처음 모습을 보이는 불교적 의미의 비천이 고구려인 특유의 얼굴과 미소를 담은 존재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안악 2호분 벽화의 비천은 후기 강서대묘 벽화에서 좀 더 세련된 모습으로 재탄생한다.

● 사실적이면서도 초월적인 사신도

6세기를 전후해 고구려 고분벽화는 다시 한번 외래의 문화 요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구성과 내용을 창조적으로 바꾸어 나간다. 5세기 중엽 이후 중국 남북조를 중심으로 진행된 세련된 사실화, 장식화의 흐름이 고구려에 수용되면서 고분벽화도 일정 시기 그 영향 아래 들어가는 것.

진파리 1호분과 4호분의 벽화는 중국의 남북조 회화에서 크게 유행했던 역동적 기운의 흐름을 그대로 담아 내고 있다. 퉁거우(通溝) 사신총 현무의 배경에 보이는 빠르게 흐르는 구름, 진파리 1호분 벽화에서 강한 기운의 흐름을 타고 하늘에 흩날리는 연꽃 봉오리와 연꽃은 6세기 고구려가 동아시아를 풍미하던 회화적 사조에 등을 돌리기보다는 이 흐름에 적극 참여해 이를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 했음을 보여준다.

6세기 중엽∼7세기 고구려 고분벽화는 중국 남북조에서 받아들인 새로운 사조를 고유의 미적 감각을 바탕으로 재구성, 재창조하는 과정을 잘 드러낸다. 사신(四神)을 주제로 한 강서대묘 벽화에서 청룡과 백호, 주작과 현무는 더 이상 구름과 연꽃, 상서로운 새나 천인들을 배경으로 삼지 않는다.

텅 빈 공간은 오히려 깊어졌고, 보이지 않는 기운으로 가득 찼으며, 사신은 그러한 세계의 주인으로 하늘로 내닫고 포효하는 존재다. 강서대묘 벽화의 현무는 우주질서의 재현자다운 신비로운 기운을 내뿜고, 강서중묘 벽화의 백호는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신수(神獸)의 얼굴을 지닌 서방세계의 수호자다. 여기서 중국 수, 당의 고분벽화가 보여주는 장식성이나 사실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동북아시아의 패자(覇者)이자 동방의 강국으로 군림하던 고구려가 독자적 문화를 창안하고 나름의 문화권을 설정하고 유지해 나갔음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끝>

● 中, 고구려 환도산성 왕궁터 사진공개

중국이 그동안 공개해 오지 않던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 고구려 환도산성(丸都山城)의 왕궁터와 태왕릉 부근에서 발견된 광개토왕 시호가 적힌 청동방울 사진이 공개됐다.



중국의 문화재청이라 할 국가문물국은 최근 발간한 ‘2003년 중국 중요 고고 발현(發現)’에 이들 사진을 비롯해 최근 지안시에서 발굴한 고구려 유적과 유물 사진을 게재했다.

국내성이 공격받을 경우 방어용으로 지은 산성으로 추정돼 온 환도산성은 3년 전부터 그 중심부 8000m²에 이르는 왕궁터의 발굴조사가 진행돼 왔다. 특히 이 왕궁터에서 제례용(祭禮用)으로 보이는 팔각 건물터 두 곳이 발견돼 주목됐다. 최근 경주 나정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팔각 건물도 왕조의 제례(祭禮)와 관련된 건물로 추정되고 있듯이 이 팔각 건물도 제례와 관련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지안시 태왕릉 부근에서 출토돼 국내 학계에 보고된 ‘辛卯年 好太王(신묘년 호태왕)’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청동방울 사진도 공개됐다. 호태왕은 광개토왕의 시호라는 점에서 태왕릉과 광개토왕의 관련성을 두고 학계에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 밖에 태왕릉 인근 임강묘(臨江墓)에서 발굴된 강인한 인상의 남자 얼굴의 굴대비녀(수레바퀴와 차축을 연결하는 부품) 사진 등도 함께 공개됐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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