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ihoilbo.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467707 (고구려의 새로운 자료 5-3)
http://www.kihoilbo.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468557 (고구려의 새로운 자료 5-3)
* "5-1이 없고 5-3이 두개입니다. 부제는 검색 편의를 위해 내용에 따라 붙였습니다. "고구려의 새로운 자료" 연재 내용이 섞여 있어 비슷한 내용들끼리 묶어 편집했습니다.)

고구려의 새로운 자료 5-3
고구려의 요동진출 
연천선사박물관 관장 2012년 05월 31일 (목)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나라를 세워 기원 668년에 신라와 중국 당조(唐朝)에 의해 패망되었다. 존속기간은 705년이다. 그 사이의 지배자 국왕(國王)은 28인(人)이다. 고구려는 태조왕부터 고국양왕까지 약 200년 동안을 가장 발전된 시기로 보고 있다. 광개토왕 통치 시 고구려는 가장 발전된 시기로서 강역이 남한의 한강 이남까지 차지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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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명의 왕위가 이어지면서 자연적인 재난 즉, 지진·벼락·홍수 등의 재난과 백성의 굶주림 등은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었다. 

기원 3세기 초에 중국대륙 내에 변화가 발생해 동한(東漢)이 쇄망하고, 후에 위(魏), 촉(蜀), 오(吳)나라 등 3국이 세워졌다. 이 3국의 정립은 고구려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중국 위나라 시기에 현도군에 공손씨(公孫氏) 세력의 고구려현(高句麗縣)이 세워졌다. 정치적 분쟁 즉, 중국과의 싸움의 흔적이 패왕조산성(覇王朝山城)에서 발견되었다. 출토된 철제의 창[鐵帽, 철모], 끝이 둥근 칼[環首刀, 환수도], 철제 등자[鐵馬 鐙子, 철마등], 철제 화살촉[鐵箭頭, 철전두], 철갑편(鐵甲片) 등이다. 이것은 중국 위와 고구려 군인들 싸움에 철제 무기가 대량으로 사용된 것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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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지역은 토양이 매우 비옥한 곳으로 경제와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돼 인구가 조밀하고 자원이 풍부했으며, 중원문화(中原文化)를 흡수하는 곳이며, 동부 소수민족이 분리하게 되는 주된 중심 지역이 됐다. 서한(西漢)초기에 요동지역에 가구가 5만5천975가구가 있었으며 인구는 27만2천539명이 될 정도였다. 고구려에서는 이른 시기부터 요동지역을 차지하려고 노력했으나 한번도 성공한 예가 없었다. 

군사전략 시각에서 보면, 요동지역은 역대로 ‘영웅백전지[英雄百戰之地]’였다. 예를 들면, 기원 105년에 고구려 태조왕(太祖王)이 군대를 이끌고 요동을 공격해 초기에 약탈6현(掠奪六縣)했지만 중국 동한(東漢) 요동태수 경섭(耿夔)의 반격을 받아 고구려 군이 대패했다. 이 예가 고구려가 요동 최초 공격의 실패였다. 그 이후에 태조왕은 동한(東漢)에 평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태조왕은 10여 년 동안 다시 요동 공격을 준비해 재차 요동지역 현도군(玄菟郡) 화려성(華麗城)을 공격했으나 한(漢)나라의 강한 반격을 받았다. 

또 한 예로서 기원 121년에 한나라와 부여가 연합해 고구려를 공격해 큰 손실을 주었으며, 이로 인해 고구려의 요동지역 확장계획이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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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8년에 중국 한무제(漢武帝)가 한반도 지역에 4군(郡)을 설치했다. 진번(眞番)·임둔(臨屯)·낙랑(樂浪)·현도(玄菟郡) 등이다. 현도군은 한반도 함경도내, 낙랑은 청천강과 낙림산맥 부근, 임둔은 낙랑의 동쪽, 그리고 진번은 오늘날 남한 한강의 남쪽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북한 대동강가의 낙랑과 대방(帶方) 2곳만 확인되었으며 기타 지역은 고고학적으로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상기한 낙랑과 대방군은 고구려에 의해 기원 313년과 314년 사이에 모두 패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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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한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311년 가을, 고구려 군이 요동 서안평(西安平)을 점령했고, 313년 고구려 군이 낙랑군을 섬멸했으며, 포로는 남녀 2천여 명에 달했다. 314년 고구려군이 대방군(帶方郡)을 점령했고,  315년 고구려 군이 현도성(玄艸밑兎城)을 점령,  319년 요동의 묘용씨(墓容氏)의 자성(慈成)을 점령,  320년 겨울에 고구려 군이 요동(遼東)을 점령한 것으로 되어 있다. 즉, 이 예들은 한반도 북부의 중국왕조 설치군을 완전히 제거한 기록을 보여 주고 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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