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 동영상’ KBS ‘뉴스9’에는 없다
[캡처에세이] 리포트를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는 KBS뉴스
입력 : 2013-07-26  10:14:31   노출 : 2013.07.26  10:14:31 민동기 기자 | mediagom@mediatoday.co.kr    

국회 국가정보원 국정조사 특위 기관보고 이틀째인 지난 25일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이 영상자료를 공개했다. 이 동영상에는 경찰이 국정원 쪽의 증거인멸 행위를 방관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담겨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30초 정도 분량의 이 동영상은 “경찰이 대선 사흘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수사결과를 발표한 지난해 12월16일 오전 4시에 찍힌” 것이다. 한겨레는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실 수사관의 대화를 보면 ‘지금 자도 돼요’라는 질문에 ‘지금 댓글이 삭제되고 있는 판에 잠이 와요?’라고 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선을 앞두고 경찰이 국정원 댓글사건을 은폐하려 한 증거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5일 KBS MBC SBS 지상파 방송3사는 관련 내용을 여야 공방 혹은 폭로전으로 처리했다. SBS는 <8뉴스> ‘야 댓글 은폐 동영상 폭로전’ 리포트에서 “국정원 국정조사는 오늘(25일)도 고성과 파행으로 얼룩졌다. 여야가 서로 동영상 폭로전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2013년 7월25일 SBS <8뉴스> 화면 갈무리
 
SBS는 경찰이 국정원 댓글사건을 은폐하려 한 CCTV 영상과 국정원 여직원 집 앞에서 농성을 벌이던 민주당 당원이 기자를 폭행하는 동영상을 함께 묶어 여야 공방식으로 처리했다. 방송뉴스의 고질적 병폐인 여야 공방프레임을 적용한 것. 하지만 두 사안이 ‘동등하게’ 비교될 만한 사안일까. 그렇지 않다. 
 
이번에 공개된 동영상은 국정원 댓글의 증거인멸 상황을 경찰이 직접 목격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한겨레가 오늘자(26일) 3면에서 지적했듯이 “국정원이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혐의로 고발된 뒤 끊임없이 제기돼온 증거인멸 의혹이 사실상 꼬리를 밟힌” 셈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선거법 위반 댓글이 73개 뿐’이라는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는데 적어도 이번에 공개된 동영상을 보면 검찰 수사는 이미 상당한 증거인멸이 이뤄진 뒤에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SBS는 좀 나은 편에 속한다. 그나마 경찰이 국정원 댓글사건을 은폐하려 한 CCTV 영상을 <8뉴스>에서 내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KBS와 MBC는 메인뉴스에서 관련 동영상을 내보내지 않았다. MBC는 국정조사 특위에서 공개된 내용을 잠깐 보여주면서 “국정원 여직원 인권유린 의혹과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의 축소의혹을 놓고 여야는 또 공방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2013년 7월25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확실한 영상’만큼 방송뉴스에서 좋은 소재가 어디 있을까. 그것도 국정원 댓글의 증거인멸 상황을 경찰이 직접 목격하는 장면을 담고 있는 영상이라면 영상 자체를 방송화면에 보여주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MBC는 동영상 자체화면이 아닌 ‘어두운 현장 화면’을 스치듯이 보여줬다. 
 
MBC는 이어 “민주당은 국정원 댓글 수사과정의 경찰 수사관들이 주고받은 말들을 공개하면서 축소, 은폐 의혹을 집중제기했고, 새누리당은 국정원 여직원 감금 의혹을 문제 삼았다”고 전했다. 양비론과 공방 위주 보도의 전형이다. 
 
그래도 MBC는 KBS에 비해 훨씬 나은 편에 속한다. 같은 날 KBS <뉴스9> ‘감금·대선개입 등 공방’ 리포트는 도대체 무슨 내용을 전하려 했는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SBS와 MBC는 이른바 ‘국정원 동영상’과 관련해 여야가 공방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한 반면 KBS는 도대체 어떤 내용을 시청자들에게 전하려 했는지 알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동영상은 <뉴스9> 화면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의미가 모호한 단어들만이 리포트에 난무한다. 
 
문제의 KBS 리포트  ‘감금·대선개입 등 공방’을 소개한다. 
 
2013년 7월25일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여야는 국정원 댓글 사건과 경찰 수사 발표가 서로 매관매직의 결과물이라며 비난을 주고 받았습니다. 여당은 공직을 미끼로 야당이 전직 국정원 직원을 회유했다, 야당은 당시 서울청장이 보신을 위해 수사결과를 왜곡했다고 주장했습니다 … 여기에 새누리당은 오피스텔 불법 감금, 민주당은 경찰의 부실 축소 수사 의혹을 각각 앞세워 충돌했습니다 … 경찰의 수사가 대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공방도 이어졌습니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재판이 진행중이라며 입장 표명을 피했습니다. 내일은 국정원 기관보고가 예정돼 있습니다.” 
 
KBS뉴스엔 동영상이라는 단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당연히(!) 국정원 댓글의 증거인멸 상황을 경찰이 직접 목격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는 내용도 리포트에 없다. 아무런 맥락 없이 “여야는 국정원 댓글 사건과 경찰 수사 발표가 서로 매관매직의 결과물이라며 비난을 주고 받았다”는 식의 리포트를 내보낸다. 
 
리포트를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는 KBS뉴스라는 얘기다. 핵심인 이른바 ‘국정원 댓글 동영상’을 피해가면서 뉴스를 제작하려 하니 이런 ‘기형적인 보도’가 나오는 것이다. KBS뉴스의 현 주소가 이렇다.

한겨레 2013년 7월26일자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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