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간 비옥한 농지였던 이곳이 이렇게 될 줄이야...
[2013년 영산강 도보순례기행] 넷째날
13.07.27 18:11 l 최종 업데이트 13.07.27 18:11 l 우원식(reform1-1)

저와 영산강 시민단체인 영산강 네트워크, 광주환경운동연합이 공동주최해 7월 11일부터 16일까지 5박 6일간 영산강 136km, 350리 전구간을 도보로 돌아봤습니다. 

2013년 영산강 도보순례는 우리강 도보순례(2005년 섬진강, 2006년 금강, 2007년 한강, 2008년 낙동강) 다섯 번째로 열리는 행사로 이번 주제는 '영산강, 생명의 강으로'입니다. 영산강은 한강, 낙동강, 금강과 함께 대한민국 4대강으로 불리지만, 유일하게 4대강 중 사람이 먹지 못하는 물입니다.

이번 기행은 호남의 젖줄이라 불리면서도, 먹지 못하는 물로 외면 받는 영산강의 현실을 돌아보고 영산강을 다시 생명의 강으로 바꿀 방법은 무엇인지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5박 6일간의 여정을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알리고 영산강의 현실을 같이 고민하고자 합니다. 눈 맑은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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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강 도보순례 4일차 구간(승촌보-나주대교-가흥리-죽산보-신곡리) ⓒ 우원식

영산강 도보순례 관련 사진자료 등을 모아둔 하드디스크에 말썽이 생겼습니다. 소중한 기록이 허망하게 없어질 뻔 했습니다. 다행히 복원이 되었고, 그래서 영산강 도보순례 현장기행을 늦게 올리게 됐습니다.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서울 등 중북부 지방은 연일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고 있습니다.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우려된다고 합니다. 부디 큰 탈 없길 기원합니다. 영산강 용소부터 걷기 시작한 지 4일째. 이곳 남도의 하늘은 물 한 방울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인지상정, 목덜미를 따라 쉴 새 없이 흐르는 땀을 닦으며 수도 없이 시원한 빗줄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이내 비 때문에 고통 받은 많은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날은 4대강 사업으로 생긴 보와 보 사이를 걸었습니다. 어제 종착지였던 승촌보와 죽산보 사이 27㎞ 구간입니다. 보와 보 사이의 의미는 단순히 물리적 개념을 넘어 사회적, 정치적 의미입니다. 그래서였겠죠. 도보일행은 어느 때보다도 더 근심어린 눈으로 강을 바라보았고, 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걸었습니다. 과연 영산강은 무엇이 변했고,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물에 굉장히 약한 꽃들, 왜 강변에 심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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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강유역환경청의 간이 수질 측정 장비를 이용해 승촌보 인근의 수질을 측정하고 있다. ⓒ 우원식

오늘 예정된 일정 중 하나는 승촌보에서 조금 떨어진 구간의 물을 영산강환경청의 간이 수질 측정 장비를 이용해 즉석에서 측정해보는 것이었습니다. 측정 결과는 PH 8.7 약알칼리성이고, DO, 즉 용존산소도 양호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지난 주에 비가 와서 전반적으로 수질 개선 효과가 있었고, 또 간이 측정 장비로는 수질 검사의 핵심 요소인 BOD(생물학적 산소요구량)와 COD(화학적 산소요구량)을 측정할 수 없어 종합적인 수질상태를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조금 아쉬웠습니다. 올해부터는 환경부가 국가수질측정망을 통해 측정된 다양한 수질 지표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우리 강의 수질이 궁금하다면 온라인으로(물환경정보시스템) 그 결과를 확인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길을 따라 가다보면 강 주변의 넓은 부지에 핀 많은 꽃을 볼 수 있습니다. 노랑, 보라, 흰색이 어우러진 꽃무더기는 그나마 태양열을 잔뜩 머금은 아스팔트 자전거길을 걷는 도보 일행의 지친 기분을 달래주었습니다. 자운영, 기생초 등의 이름을 가진 꽃들은 작은 바람에도 방긋 웃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도보 일행 곁에는 환경청에서 환경지킴이로 활동 중인 분들이 동행을 해줬습니다. 지역을 누구보다 잘 알고, 누구보다 강과 강 주변의 오염 행위를 잘 감시하며 강을 깨끗이 지키기 위해 애쓰시는 분들입니다. 

오래 활동한 한 환경지킴이분이 각양각색의 꽃 이름을 알려주셨습니다. 가히 '꽃박사'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일행이 꽃들을 보며 그저 감탄하고 있을 때, 지킴이 분은 영산강에 만개한 그 꽃들을 보며 아쉬워했습니다. 만개한 꽃들 대부분이 모두 사료용 꽃이라는 것, 그리고 거의 대부분이 외래종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사료용 꽃은 파종 후 개화에 이르는 시기가 짧고 물에 굉장히 약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물과 거리가 먼 수변 지역의 꽃은 잘 피지만, 제방에 심은 꽃들은 조금만 물이 차면 쉽게 시들어 버립니다. 일행이 확인한 바로도, 제방 위에는 꽃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얼마 전 비로 모두 졌다는 것입니다. 왜 이 꽃들이 4대강 사업으로 영산강변에 자리잡았는지 답이 나옵니다. 쉽게 피기 때문에 좋은 그림을 만들기 쉬웠다는 것이겠죠.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부분 외래종이기 때문에 우리 토종 꽃은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태계의 외래종 유입은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기 쉽다고 합니다. 배스, 블루길, 뉴트리아 같은 외래종들은 우리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외래 식물 전파가 과연 식물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우리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늦가을 이후에도 물이 빠지지 않아 보리농사 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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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주민들은 "죽산보 때문에 초봄 보리농사를 망쳤다"고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 우원식

지천이 영산강 본류와 합류되는 구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물결 방향이 지천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지천의 물이 본류에 합류하기 때문에 물결은 본류로 흘러가야합니다. 근데 왜 그럴까요? 

4대강 사업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을 때, 환경단체를 비롯해 4대강 반대론자들은 '역행침식'을 이야기했습니다. 말 그대로 본류 물이 지천으로 역류하는 것입니다. 특히 보 주변은 많은 물을 흘려보내기 때문에 지천 합류부 밑바닥을 깎아버려 더 심각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 예상이 맞아 떨어진 것 같습니다. 마치 필름을 뒤로 감는 듯 거꾸로 흐르는 물은 자연법칙도 거스르는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 일정 중 가장 눈여겨봐야 할 중요한 현장은 죽산보 근처 나주시 공산면에 자리한 가황리 마을이었습니다. 이 마을에는 대대로 논농사를 대규모로 짓던 비옥한 농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에 죽산보가 들어선 이후 논에 비정상적으로 물이 많이 차기 시작했습니다. 40~50년 이상을 이 마을에서 농사를 지어온 분들은 처음 겪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 원인은 보로 인한 지하수위 상승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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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을 따라 도보순례단이 걷고 있다. ⓒ 우원식

한눈에도 강의 수위가 제방 너머 논보다 더 높아 보였습니다. 논 밑에 자리한 지하수위를 높여 논이 침수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을 주민들은 "추수가 끝난 늦가을 이후에도 물이 빠지지 않아 초봄 보리농사를 망쳤다"면서 성난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일행은 인근 죽산보 회의실에서 관리소장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보가 침수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은 이미 알고 있고, 그에 대한 연구용역을 수행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하수 유입과 관련한 유속, 유량 등에 대한 조사 없이 단순 지하수위 측정에 치중한 연구용역이었습니다. 

설령 지하수위가 이전 시기보다 높아졌다는 결과가 나와도 그 원인이 보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없는 연구가 될 것입니다. 또 다른 논란이 일 것입니다. 평온하게 농사를 짓던 이 마을 주민들에게 과연 죽산보는 어떤 의미일까요? 이미 함안보 등 다른 강에 설치된 보 근처에서 흔히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4대강 사업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또 한 번 심각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네모반듯한 강에서, 어떤 이야깃거리가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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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강 사업의 상처를 안고 유유히 흐르고 있는 영산강 ⓒ 우원식

우리 조상들은 영산강을 영산강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자기 마을 앞 강에 각자 이름을 붙여 불렀습니다. 이곳 나주시 다시면과 공산면 주변 마을 주민들은 금강, 동강 등으로 불렀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본류를 통칭하는 영산강으로 통일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 각자 자기만의 영산강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다양한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승촌보와 죽산보 사이에서 강은 깎이고 다듬어져 더 반듯하게 변했습니다. 굽이쳐 돌던 물은 양안을 휘감아 돌지 않고 천천히, 얼핏 유유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미 수많은 보가 설치돼 보와 보 사이의 강이 저수지처럼 고여 있는 강, 긴 직사각형처럼 네모반듯한 강에서 앞으로 어떤 이야깃거리가 생길까요? 시간이 더 흘러 어떤 이야기를 전승하게 될까요? 아마도 조상들처럼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환경문제와 더불어 강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문화적 다양성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하루였습니다.

죽산보 못 미쳐 영산강을 내려다보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조선 중기 유명한 문인 백호 임재 선생이 공부하던 영모정이 있습니다. 영모정을 올라가는 돌길 옆에 임재 선생 생전 마지막 말이 있습니다. 

"중국 주변 8오랑캐가 모두 스스로를 황제라 부르는데, 오직 조선만이 중국을 황제로 부른다. 부끄러운 내 죽음에 울지 말라." 

이 비문은 마치 독창성을 잃어가는 영산강을 가여워하는 말 같습니다. 

지금 저와 영산강 시민단체인 영산강 네트워크, 광주환경운동연합은 담양을 거쳐, 광주를 지나면서 4대강 사업이 완성된 뒤 우리 강이 어떻게 변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우원식님은 민주당 국회의원입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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