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pgr21.com/pb/pb.php?id=freedom&no=28470
"임진왜란 해전사 - 4. 한산섬 달 밝은 밤에 (3차출동) - Pgr21"에서 "6. 조선군이 불리했는가?" 부분만 따로 가져와서 제목을 붙였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이 불리했는가
2011/04/16 10:37:41  눈시BB

하나 더 의문을 얘기해보고 끝내고자 합니다. 왠지 해전을 다루는 얘기들을 보면 조선 수군이 아주 불리한 상황에서 싸워 이겼다고 하죠. 불멸의 이순신에서도(글 쓰면서 보는데 재밌긴 하네요. 휴... 뭐 일단 김명민씨 연기는 짱입니다) 병력이 10분의 1에 불과한데 어쩌구 저쩌구 합니다. 마찬가지로 육지에서 경상도는 다 먹힌 상황에서 바다에서만 이겼다 이런 느낌만 나구요.
 
글쎄요. -_-a 93년에 명에 보고하기 위해 집계한 병력에서 전라좌수영은 오천, 우수영은 일만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전라우수영이 좌수영 수준의 병력만 끌고 온 건 병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전라감사 등의 명으로 절반 정도만 끌고 왔다고 봐야겠죠. 충청수군 역시 한참 후에야 참전합니다. 육군에 차출되었거나, 한양으로 올라오는 길을 막기 위해 병력을 놔두고 온 것으로 봐야 됩니다.

전라좌수영의 병력이 모두 참전했을 경우 오천, 우수영 역시 그 정도의 병력을 끌고 왔다면 일만이 됩니다. 판옥선마다 125명씩 탔다고 가정하고 계산할 경우 병력은 6750, 기타 협선과 사후선에 탔을 병력까지 계산한다면 조선 수군의 규모는 한산도 대첩 당시 일본 수군의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죠. 천이천 단위로 적보다 적거나 오히려 많을 수는 있지만요.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한산도 대첩에서는 그냥 일개 부대가 꺾인 거고 조선의 대군이 조그만 와키자카의 함대를 집단으로 다굴한 거라고 폄하하기도 하죠.
 
어려운 상황이기는 했습니다. 주력인 전라좌수군이 꺾이면 조선 수군의 앞날은 예상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불리한 상황은 아니었죠. 수적으로도 그랬고, 판옥선의 이점도 컸으니까요. 하지만 수적으로 크게 불리한 상황에서 이뤄낸 전투는 아닌 겁니다. 육전을 수행하기에는 적었을 뿐 임진왜란 내내 조선 수군은 열세한 상황에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싸웠고, 거의 피해를 입지 않고 이겼다는 게 의의죠. 

비슷하게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수전에 능했다는 게 있죠. 심심하면 보이는 게 와키자카가 해전을 잘 해서 어쩌구저쩌구 -_-; 하지만 일본 수군은 이제까지 언급했듯 수송선 호위용일 뿐이었고, 수군으로 출전한 다이묘들도 그저 바닷가에 접했기 때문일 뿐입니다. 구루지마나 구키 같은 경우 해적 출신이긴 하지만 정말 일부였죠.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히데요시가 통일하는 과정에서 양성한 가신 중 하나였고, 같은 칠본창이었던 가토 기요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에 비해 능력이나 영지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됐습니다. 이건 가토 요시아키 역시 마찬가지였죠. 이후 그가 세력을 불린 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을 배반한 이후였습니다.

아무래도 이순신의 승리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강한 적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이런 말들이 계속 나오는 것 같습니다만... 무리수입니다. 오히려 불멸의 이순신이 일본에 방영된 후 "아니 와키자카가 이렇게 대단한 장수였다니" 하는 반응이 있었다는군요. -_-; 에휴... 적이 강해야 승리가 더 빛을 발한다고 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일본 수군은 수가 적고 허접했습니다. 네. 허접했죠. 계속 깨지다가 육군까지 동원했지만 수전에 약한 건 여전했죠. 조선 수군은 화포가 있었고 판옥선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기는 게 너무도 당연했을 수 있죠.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수전에 약하다 하나 그들 역시 악귀 같던 왜군들이었으며, 조선 수군 역시 몇 차례의 왜변 빼면 육군처럼 전투 경험이 없다시피 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조선 수군을 "저기 왜놈들 아니 수급들이 도망간다" 수준으로 키운 건 바로 이순신이었죠. 막말로 어린애가 사람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들고 어른에게 덤비면 어른도 상처를 입습니다. 하지만 해전 내내 조선 수군이 입은 피해는 상처라고 보기도 힘든 수준이었죠. 

김경진님은 "한국에서 해전을 다룬 책들은 해전이 모두 일본 수군만으로 행해졌다고 말하고 있어서 (이 때문에 와키자카 명장설이 나올 수밖에 없죠) 일본인들에게 논리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일본 수군은 다 합쳐 만 명도 안 되니까요.

이렇게 까이는 게 얼마나 보기 안타까웠던지 원균은 이순신이 없는 조선 수군이 어떻게 변하는지 똑똑히 보여주고, 소수로 엄청난 다수를 이길 수 있게 해 줍니다. 원균의 유일한 공이죠. -_-;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이니 뭐니 하면서 까는 건 당연히 미친 짓이고, 과장도 필요 없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은 그 자체로 위대하니까요.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