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localCode=krcn&contentsId=GC05305310

* 선양은 중국 도착,출발 국제공항이 있고 요녕성 박물관이 있는데다, 거리가 있지만 석대자산성, 고이산성 등이 근처에 있는지라 여정상 반드시는 아니지만 하루쯤은 머물게 되는 듯합니다. 여기에 서탑 지역이 거의 중심가라 식사하러 갈 수도 있구요.
* 2013-14년 사진이라 현재와는 거리가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일부 사진은 생략했습니다.



한민족 유민의 공간, 서탑 코리아타운


한자 : 韓民族 流民의 空間, 西塔 코리아타운

지역 : 요령성 심양시 화평구  


심양조선관 : 1637년~1645년

초기 서탑 : 1910년

서탑의 축제 : 2002년


한민족 공생의 장, 서탑 코리아 타운. 
조선족 동포와 우리 교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서탑 코리아타운을 소개한다.


심양시 화평구(和平區)에 위치한 서탑(西塔)은 중국 내 가장 큰 규모의 코리아타운(Korea-town)이다. 청초에 건립된 심양 4탑의 하나인 연수사 서탑(西塔)에서 지명이 유래하였으며, 500m의 서탑가를 중심으로 상가와 주거 지역이 형성되어 있다. 서탑의 면적은 2.58㎢에 이르며, 2013년 기준 조선족 호적 인구가 8,338명, 상주 왜래 인구와 한국인을 합해 2만 여명의 한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전통적인 조선족의 집거지에서 중국으로 진출한 한국 교민들의 상업 활동 및 거주지로 공간의 의미가 확대되면서 한국의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중국 속 한국’으로도 불리고 있다.



심양(沈陽), 유민(流民)의 역사가 흐르는 공간


심양은 중국 5대 도시이자 요령성의 성도이다. 역사적으로 심양의 옛 이름은 봉천(奉天)이며, 만주어로는 무크덴(Mukden)이다. 심양(沈陽)이라는 지명의 심(沈)은 혼하(渾河)의 원래 이름인 심수(沈水)에서 나온 것이며, 양(陽)은 중국어로 강의 북쪽을 가리킨다. 즉 ‘심수의 북안’이라는 뜻이다. 한대에는 요동군에 속했고, 뒤에 고구려의 영토에 있다가 다시 당의 지배하에 들어 심주가 되었다. 요동을 장악한 후금은 수도를 1625년 요양에서 심양으로 옮기고 1634년 성경(盛京)이라 개칭하였다. 1644년에 입관, 북경을 국도로 정한 뒤에는 심양을 배도(陪都)로 삼았다. 19세기 말에 러시아와 일본의 동북 침략이 시작되자 심양은 외세 침략의 목표가 되었고, 1931년 봉천[지금의 심양]에는 일본관동군이 진출하여 만주 점령의 교두보로 삼았다. 심양은 대륙 침탈의 관문 도시였다. 1945년 이후 심양은 항일 전쟁에 승리하고 중국 공산당 정부가 들어선 후에 다시 심양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중국 동북 지역 너른 만주 벌판은 한민족 시원(始原)의 땅이다. 특히나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역사로 이어지는 한민족 고토(古土)로서 이미지가 강렬한 역사의 공간이다. 심양이 자리 잡고 있는 만주 지역은 역사 이래로 고구려의 유민들이 발해의 신민으로, 발해의 유민들은 다시 이 공간속에서 면면히 살아남아 오늘날 현대 중국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가하면, 중국 동북 지역의 심장이랄 수 있는 요령성 심양은 병자호란의 결과로 조선의 60만 피로인[被虜人; 포로]이 대륙으로 끌려가야 했던 민족 수난의 현장이요, 일제 강점기 수많은 백성들과 뜻있는 지사들이 조국의 광복을 꿈꾸며 천리를 마다않고 달려가 무장 투쟁을 전개한 공간이 바로 만주 벌판이다. 이들은 만주의 척박한 땅을 일구며 피폐한 삶을 개척하였고, 조국 광복의 그날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던졌다. 이들의 후손들이 지금도 심양을 비롯한 동북지역 전역에서 한민족의 자긍심을 가슴에 품고 중국의 신민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한민족의 유랑은 끝나지 않고 있다. 동토의 땅 북녘을 등지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는 탈북자들이 만주 벌판의 중국 동북 삼성으로 스며드니 이곳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한민족의 유랑처요, 현대판 유민의 공간이기도 하다.


심양 서탑 코리아타운은 바로 그 중심에 있다. 이곳은 민족의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심양 중심부의 서북쪽에 위치한 화평구 서탑 지구에 들어서면 길게 뻗은 550m의 서탑가를 사이에 두고 아리랑, 경회루, 백제원 등 한국적인 간판은 물론 평양관, 진달래, 동명관 등 북한 음식점이 즐비하다. 조선족 백화 상점, 풍물 시장에선 조선족 동포들의 삶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조선족 동포들과 한국 사람, 북한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지내는 ‘코리아타운’ 이자 ‘민족 융합의 장(場)’이다. 오늘도 한글 간판과 한국어로 소통하는 조선족동포, 한국 교민, 북한인들을 서탑가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다.



서탑 코리아타운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심양의 서탑 지역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와 더불어 한국인들이 가장 먼저 진출한 지역이다. 심양시 인민 정부의 홈페이지에는 화평구 서탑가 지구를 ‘중국 최대의 코리아타운’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는 조선족 동포들이 밀집해있고, 한국인들이 대거 진출하여 상업 활동을 이루고 있는 집거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탑은 언제, 어떠한 과정으로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렀을까?


심양은 『심양 도성 황묘비(沈陽都城隍廟碑)』의 기록에 따르면, 원대에 고려 여진 만호부(高麗女眞萬戶府)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고려충선왕은 원 무종을 옹립했던 공으로 1307년 심양왕에 봉해지기도 하였다. 당시 심양을 포함한 요양 지역에는 몽골 침략으로 전쟁 포로나 이민해온 고려 유민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요동지(遼東志)』에는 14세기 중엽 심양 일대의 조선인 인구가 지역 총인구의 10분의 3을 차지했을 정도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17세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해 심양에 붙잡혀온 포로와 인질들이 5·60만 명에 이른다고 하였다. 1637년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등은 심양에서 8년을 인질 생활로 보내야 했다. 당시 붙잡혀 온 포로들은 청인들의 노비, 군인으로 팔려가 죽거나 정착하여 점차 중국 민족의 일원으로 동화되기도 하였다. 서탑 지역으로 조선 민족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중국 민족』(2003, 9·10월호) 자료에 의하면, 19세기 중엽부터 많은 한인들이 심양부근의 혼하·요하·포하 일대로 이주하여 벼농사를 지으면서 서탑 지역을 중계역으로 삼았다고 하며, 1882~1887년 조선인 서상륜과 백홍준이 서탑 동관 교회에서 한글로 된 『성경』을 출판했다고 한다. 1900년 5월경 평안북도 영성군의 안봉태가 중국인 유씨와 왕씨의 도움으로 서탑 밑에 처음 조선집을 짓고 장사를 시작했으며, 1910년경부터 일제의 수탈을 피해 조선인들의 중국 망명이나 이주가 러시를 이루면서 당시 서탑 지구에 정착한 조선인가구가 50여 호에 이르렀다. 1911년 압록강철교가 부설되고 안동과 봉천을 잇는 안봉선[지금의 심단선]이 개통되자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이주한 한인들이 대거 서탑으로 밀려들면서 한인거리가 형성되었다. 1910-20년 사이 매년 중국 동북지구로 이주해온 조선인들의 수가 1만 2천여 명에 이르렀다.


1919년부터 한인들은 서탑 지역에서 수공업과 상업에 종사하면서 만주의 군벌과 일제에 대항하였다. 특히 3. 1 운동 이후 서탑은 애국 지사들의 독립운동 근거지로 활용되었으며, 1920년대 초 압록강 이북으로 이주한 조선인의 수는 약9만 8,657명에 달했다. 1945년 광복을 맞아 많은 조선인들이 대거 고국으로 귀국하게 되면서 서탑은 침체 시기를 맞았다. 당시 조선인이 경영하는 소기업이 7개, 상업체 30개, 봉사업체 28개 수준이었다.


그러나 1948년 해방 후 중국 정부의 민족 정책에 따라 중국 각지에 흩어져 살던 조선족들이 다시 서탑으로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서탑은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1988년 김학수의 심양 코리아타운 건설 노력이 진행되었고,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으로 진출하려는 한국인들이 심양을 사업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으로면서 서탑은 한인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서탑은 우리말이 통하고 우리의 문화가 유지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중국에 첫발을 딛는 교민들에게 있어 심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최적의 공간일 수밖에 없었다. 1995년 서탑은 중국 동북 지역 조선족 용품과 한국 제품의 최대 집산지가 되었고, 2002년부터는 심양시의 대외 경제 투자 유치 계획에 따라 심양 주재 교민 사회와 한국인(상)회 등을 주축으로 ‘심양 한국주’가 서탑에서 개최되었다. 심양 한국주는 서탑 코리아타운 한인 사회의 단합과 협력을 도모하는 중요한 축제로 성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국 동북 지역 한류의 허브, 서탑


서탑가를 걷노라면, 귀에 익은 노래가 들린다. 지나치는 음식점, 술집, 백화점할 것 없이 서울명동 거리에서 듣는 한국 가요들을 심양 서탑가에서 같은 시간에 듣고 있는 것이다. 심양 서탑은 중국 동북 지역 한류의 허브와 같은 곳이다. 한중간에 인적·물적 교류가 확대되면서 서탑은 중국내에서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연길시와 더불어 가장 빠르게 한국 문화가 유입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 문화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아이돌 가수, 「대장금」과 같은 문화 예술 분야의 한류는 이미 생활 깊숙이 자리매김 된 듯하고, 이제는 가전 제품, 생활 용품 전반에 한국 상품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이른바 ‘경제 한류’의 단계에 있다. 이러한 흐름에는 2002년부터 서탑을 거점으로 매년 여름에 개최되는 ‘심양 한국주’가 한류 바람을 선도한 것에서 기인한다.


특히 한류 열풍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준 행사는 2009년 제8회 행사의 메인 이벤트였던 「KBS 전국 노래 자랑」이었다. 추석 특집으로 진행된 「KBS 전국 노래 자랑」은 중국 지역에서 처음 열린 상징성이 있기도 하거니와 그동안 한류의 열풍을 뜨겁게 달구었던 중국 땅에 한류 전파의 첨병인 대중 가수, 아이돌 가수들이 대거 출연함으로써 중국 동북지역의 조선족사회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하였다. 또한 ‘2010 중국 글로벌 한상 대회’의 이벤트인 「KBS 열린 음악회」 역시 한류 전파에 많은 역할을 하였다. 이미 2009년 「KBS 전국 노래 자랑」을 통해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매우 높아진 상태에서 「KBS 열린 음악회」가 열리게 됨으로써 심양 한인 사회와 중국 동북 지역 조선족 사회, 나아가 중국 사회에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한류 이전에 이미 중국 조선족의 대표적 문화 예술 단체인 조선족 문화 예술관을 중심으로 조선족 민족 문화 예술 활동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었다. 이들의 활동은 ‘조류[조선족류]’로 불려 지며 중국 사회에서 조선족 민족 예술 문화의 선도적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이들 ‘조류’와 심양 한국주를 통한 ‘한국 문화[한류]’의 접변은 새로운 ‘신한류’라는 문화적 특징을 갖게 하였다. 이렇듯 심양 한국주는 중국내, 특히 심양과 중국 동북 지역의 한류 확산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서탑은 바로 그 중심에 있다.



축제로서의 심양 한국주, 그 시작과 가능성


심양에서 개최되고 있는 대표적인 한국 문화 축제인 ‘심양 한국주’는 중국 동북 3성을 비롯한 중국내에 한국의 문화를 홍보하고 선양하는 가장 대표적인 행사이자 축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2013년까지 12회차 행사를 치러 온 심양 한국주는 중국 측인 심양시 인민 정부와 한국 측인 심양 총영사관이 공동으로 주최하며, 심양 한국인(상)회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종합 경제·통상·문화 행사의 성격을 가진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심양 한국주의 성공으로 중국 각 지역의 한인 사회에서도 ‘한국 주간’ 행사들이 지속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현재 중국심양에서 시작되어 중국 각 도시로 확산되어 개최중인 ‘한국 주간’ 행사 도시들은 심양, 하얼빈, 장춘, 제남, 청도, 성도, 중경, 대련 등이다.


심양한국 주간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살펴 보면, 심양시 인민 정부가 먼저 발판을 마련하고 한국이 적극 참여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심양시 인민 정부가 중국 동북 진흥 전략의 중점 기지로 성장하고 있는 심양의 경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한국 기업들의 심양 경제 투자 유치 목적의 교역 행사를 개최하면서 시작되었다. 다시 말해 심양한국 주간 행사는 중국 측에서 투자 유치 목적으로 먼저 제의를 하고, 한국 측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양새를 취한 행사였다고 하겠다. 비록 중국 측의 이해 관계에서 기인한 측면은 있지만, 한국 측에서도 심양 한국주 행사를 통하여 서탑을 중심으로 한 교민 사회, 나아가 심양을 거점으로 한 중국 동북 3성의 조선족 사회, 한인 사회가 뭉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에 행사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는 것이 당시 행사추진에 적극 참여했던 봉용택 수 석부회장(한국인 상회) 증언이다. 그는 심양 한국주 행사가 갖는 의미에 대해 “비록 심양 한국주가 중국 정부(심양시)에서 만든 행사지만 우리 교민과 기업체들이 한번쯤 한자리에 같이 모일 수 있어 그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심양 한국주 행사를 통하여 서탑과 심양, 나아가 중국 동북 지역에서 활동하는 우리 교민과 조선족 동포 사회가 한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모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고 하겠다.


심양에는 홍콩일본 기업들도 많이 들어와 있었지만 한국에 제안을 한 것은 한국이 투자를 할 수 있는 규모나 위치에 있다고 봤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국주간 행사를 만들어 주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한국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도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심양에 대한 우리 기업의 진출은 12만 명에 달하는 조선족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최근에는 심양의 발전 잠재력에 착안해 롯데그룹이 심양 북역(北驛)에 20억 달러를 투자해 서울 잠실 롯데월드 2배에 달하는 복합 단지를 건설하였고, 포스코(POSCO), SK, 금호 석유 화학 등 대기업의 투자도 진행되었다.



심양 한국주의 변천


2002년 요령성급 행사로 첫 행사를 치룬 심양 한국주는 2007년에 중국 국가급 행사로 격상되었다. 행사의 위상이 변하면서 초기 서탑에서 진행하던 행사들이 심양 시내의 심양 과학궁, 올림픽 축구 경기장 등으로 분산 개최되었고, 행사의 규모나 성격, 지원 부분에서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심양한국 주간의 초기에 성황을 이루었던 서탑 중심의 소규모 단위 이벤트나 노변에서 행해지던 소소한 프로그램들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 자리에 대형 이벤트성 행사들이 개최되기 시작하였다. 제8회 심양한국주의 메인이벤트이자 대표적인 한류행사인 「KBS 전국 노래 자랑」과 제9회 심양 한국 주간과 2010 중국 글로벌 한상 대회의 메인 행사인 「KBS 열린 음악회」는 서탑 지역이 아닌 심양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려 한인들의 거점인 서탑을 벗어나게 됨으로써 한민족의 생활 터전에서 펼쳐지는 ‘장날’과 같은 축제의 형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는 현실적으로 서탑에서 대형 이벤트를 개최할 수 있는 장소가 없었었을 뿐만 아니라 초기 행사 때와는 많이 변한 교통 사정과 2008년 북경 올림픽을 전후한 국내 문제 등이 영향을 끼쳤다.


2010년도 심양 한국주(9회)와 동시 개최된 ‘2010 중국 글로벌 한상 대회’는 심양과 서탑을 중심으로 사업하는 한인 사회[조선족, 한국 교민]가 전 세계의 관심 속에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활약 중인 한상(韓商)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활동한 이래 2010년 심양에서 첫 한상 대회가 열린 것이다. 중국에서 열린 첫 번째 한상 대회인 ‘2010 중국 글로벌 한상 대회’는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기업가 1200여 명과 조선족 기업가, 중국인 기업가 등이 대거 참석하였다. 세계 각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상간의 네트워크를 마련하여 시장 정보를 교환, 중국 내수 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열린 국제 규모의 비즈니스 행사였다. 심양은 과거 조선조에도 한중 무역의 현장으로 봐도 무방한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바로 병자호란 당시 심양에서 8년간의 볼모 생활을 해야 했던 소현세자와 강빈은 심양 조선관 무역을 통하여 국제 무역에 대한 경험을 했었던 것이다. 당시 심양은 조청간의 국제 무역 도시였으며, 그러한 역사적 사연을 간직한 심양에서 한상들의 회합이 이루어진다는 점은 상기할만하다.


심양 한국주를 다시 서탑에서 개최할 것을 요구받아오면서 2010년대 이후 서탑에서 다시 크고 작은 행사들이 개최되기 시작하였다. 2012~2013년에는 심양 한국주 기간에 ‘서탑 미식 문화절’이 만들어졌고, 서탑가의 상가 앞 긴 회랑의 기둥을 활용하여 ‘조선족 문화 특색 거리’가 만들어지면서 서탑 조선족 민간 예술 단체의 순회 공연도 이어지는 등 서탑 일대가 다시 활기를 찾는 모습이다.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행사들이 더 많아졌다. 2014년엔 심양 한국주 행사가 13회를 맞는다. 심양 한국주가 심양의 조선족 사회, 나아가 중국 동북 지역 한인 사회의 단결을 도모하는 매개체 역할은 물론 한류[한국 문화] 전파의 허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며, 여전히 진행형이다.



코리아타운에서 ‘서탑성’으로


심양은 중국 동북 지역 최대의 도시답게 빠르게 변하고 있다. 서탑도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목하‘개발 중’이다. 이러한 서탑 코리아타운의 변화를 주도하는 곳이 바로 심양시 화평구 서탑 가두 판사처이다. 서탑 지역의 중심가인 서탑가 500m거리에는 ‘조선족 특색 문화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2012년 화평구위, 화평구 정부의 비준으로 중점 건설 프로젝트로 선정되어 자금을 지원받고 서탑가의 거리를 대대적으로 개선한 사업이다. 바로 서탑 가두 판사처와 박매화당공위 서기의 작품이다. 이 프로젝트는 서탑가의 인도에 받쳐 있는 89개의 기둥을 활용하여 민족 특색의 문화 공간을 만든 작업이다. 현재 서탑 가두 판사처가 서탑을 개조하는 일환으로 벌이는 사업들은 다양하다. 과거 조선족 기업인들의 주도로 조선족 문화 예술을 지원하는 사회 기부 행동인 ‘심양 현상’과 같은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지금은 서탑의 이미지를 궁극적으로 변화시키는 도시 정비 계획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전의 낡고 음침했던 서탑가 뒷켠의 골목을 정비하는 골목길 개조 사업은 물론, 어수선하던 조선족 음식 상품점 거리를 청결한 시장으로 개조하였다.


아울러 연변가 동쪽에 있던 옛 시장을 서탑 서남쪽의 심양조선족 6중학 운동장에 설치하기도 하였다. 서탑의 연변가 동쪽 일대는 현재 대규모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서울 광장’으로 명명한 대형 쇼핑몰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특히 박매화서기는 서탑에 대형 문화 활동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시정부에 계획서를 제출하고 비준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박매화 서기가 계획하는 아리랑 예술촌은 한국에서 설계를 하여 가져왔고, 1만 2,000㎡에 달하는 규모로 조성하는 민족적 특색이 가득 묻어나는 문화 예술 활동 공간이라고 했다. 아리랑 민속촌은 일종의 ‘민족 문화 예술의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는 현재 진행 중인 연변가 동쪽 개발과 서탑개조 계획이 완수되면 서탑은 새로운 ‘서탑성[서탑 타운]’으로 거듭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기존의 한민족 거주 공간으로서 코리아타운 개념을 넘어서서 민족문화의 특색이 가득한 현대식 도시로서의 서탑, 즉 ‘서탑성’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서탑은 현재 진화중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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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원, 『조선족의 오늘』(신유, 2002)

김태준 편저, 『문학 지리. 한국인의 심상 공간(하-국외편)』(논형, 2005)

강위원, 『조선족의 문화를 찾아서』(역사 공간, 2008)

임영상외, 『코리아타운과 한국 문화』(북코리아, 2013)

신춘호,「심양 코리아타운 ‘서탑’과 한국 문화」(『재외 한인 연구』24, 2011)

중국 심양 한국인(상)회 (http://sykorean.com/mw/)

The ASIA N (http://kor.theasian.asia/archives/29825)

인터넷료녕신문 (http://www.lnsm.ln.cn/detailMenu.aspx?id=21503&cid=42&tid=2)

중국 조선족 종합 뉴스

http://www.korean3040.com/bbs/board.php?bo_table=0301&wr_id=13037

한민족 신문 (http://www.hmzxinwen.com/news/9423)

심양시 인민 정부 (www.shenyang.gov.cn)

『블루오션 화평(藍海和平)』(제1호), 심양시 화평구위 간행물

인터뷰(봉용택, 당시 심양한인(상)회 수석 부회장 , 2011 1. 7. 서탑 경회루)

현지조사(1995년∼2014년 현재 다수)


심양시에 위치한 서탑가이다. 2014년 현재 제3회 심양 한국 주간 서탑 미식 문화제가 개최되는 심양시 조선족 제6 중학교 뒷편 거리 모습이다.


심양시 서탑가. 심양시 조선족 제6 중학교 주변에서 바라 본 코리아 타운이 형성된 서탑가이다. 도로 양 옆 건물에 한글로 적힌 간판이 군데 군데 보인다.


서탑 특색 거리. 심양시 화평구 서탑가에 위치한 서탑 트색 거리이다. 조선족들 상품 특히 음식이 주로 판매되는 시장이다. 김치, 고춧가루, 젓갈 등 주로 조선족 음식들이 판매되고 있다.


서탑 특색 거리 모습. 심양시에 위치한 서탑 특색 거리 모습이다. 조선족들이 주로 김치, 장뇌삼, 순대, 떡, 건어물, 고춧가루 등을 판매하고 있다.


서탑 특색 거리 입구. 심양시 화평구에 위치한 서탑 특색 거리 모습이다. 이곳에서는 조선족 음식, 지역 특산물이 판매되고 있다.


서탑 특색 거리 입구. 심양시 화평구에 위치한 서탑 특색 거리 모습이다. 이곳에서는 조선족 음식, 지역 특산물이 판매되고 있다.


서탑 거리. 요령성 심양시 서탑 거리의 2000년 모습이다.


심양시 서탑 조선족 소학교. 심양시에 위치한 서탑 조선족 소학교이다. 서탑 조선족 소학교는 심양시 조선족 제6 중학교 운동장 담장 옆에 위치한다.


심양시 조선족 문화 예술관. 심양시 시부대로에 위치한 심양시 조선족 문화 예술관이다.


심양 조선족 백화점 측면 모습. 심양시 시부대로에 위치한 심양 조선족 백화점 측면 모습이다. 심양 조선족 백화점에는 조선족 음식, 한국 식품, 악세서리 가게, 화장품 가게 등이 있다.


심양시 제12회 조선족 민속 문화제. 심양시 시부대로에 위치한 심양 조선족 백화점 측면 모습이다. 심양 조선족 백화점에는 조선족 음식, 한국 식품, 악세서리 가게, 화장품 가게 등이 있다.


2012년 심양 한국주 개막식. 요령성 대극원에서 개최된 2012 중국 심양 한국주 행사 개막식으로 요령 가무단, 심양시 조선족 연의회, 요령 발레단, 요령 민족악단 등 예술 단체들이 출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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