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34290.html?_fr=mt2


[단독] ‘아동성착취 영상배포’가 고작 징역 4개월? 판사들 “전면 재검토해야”

등록 :2020-03-26 11:59 수정 :2020-03-26 16:46


대법,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양형기준 신설 추진

설문조사,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배포 징역 4개월부터

판사들 "양형기준 설정 방식 전면 재검토해야"

전문가 “기존 관행 벗어나 사회 변화 발맞춰야”


대법원. 한겨레 자료사진.

대법원. 한겨레 자료사진.


판사들이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추진 중인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 설정 작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공개 비판했다. 최근 대법원이 양형기준 설정을 위해 법관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의 양형 범위가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법원 내부에서 나온 것이다.


26일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대법원 젠더법연구회 소속 판사 등 법관 13명은 텔레그램 ‘엔(n)번방’ 사건 등과 관련해 대법원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범죄 양형기준 설정을 위해 판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글을 25일 밤 법원 내부 게시망인 ‘코트넷’에 게시했다.


 판사들은 “(이번 조사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중대성과 피해의 심각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어서 설문 내용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현 상황에서) 양형기준이 마련되면 ‘솜방망이 처벌’이 재탕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엔번방 사건으로 여성과 아동에 대한 성착취 영상물의 제작·배포·소지 범죄에 대한 엄격한 처벌 요구가 높지만, 정작 양형기준을 신설하는 양형위원회의 대응은 그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더불어 판사들은 “양형기준이 국민 눈높이와 시대적 요청과 동떨어지지 않도록 법관뿐 아니라 국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 등을 거치기를 요청한다”며 “양형위원회 위원 구성에 있어 성비 등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는지도 검토해 달라”는 뜻을 전했다.


대법원은 다음달 20일 양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11조’의 적절한 양형기준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조항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범죄의 형량을 규정하고 있지만 판결 선고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양형기준’이 따로 없어 문제로 지적돼 왔다. 이에 대법원도 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1심을 담당하는 판사들을 대상으로 해당 법조항에 대한 적정 양형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대법원은 설문 결과를 양형기준 설정을 위한 기초 자료로 쓸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설문조사 항목을 보면, 양형위원회는 “14세 여자 청소년”의 성착취 영상에 대한 제작·판매·배포·소지 범죄에 대한 양형 보기로 7∼10개 항목을 제시하며 적절한 양형을 선택해 달라고 질문했다. 그러나 보기에 제시된 양형 범위는 법정형에 비해 지나치게 낮게 설정돼 있다.


예컨대 영상물 제작 범죄의 경우 법정형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이지만, 설문지에는 양형(기본영역) 보기로 징역 ‘2년 6개월∼9년 이상’까지만 제시됐다. 또 영리 목적으로 성착취물을 판매한 범죄(법정형 징역 10년 이하)와 배포 범죄(법정형 징역 7년 이하)의 양형 기본영역 부분의 보기는 ‘징역 4월 이하’부터 ‘3년 이상’ 사이에서만 고르도록 했다. 이는 여러 감경 사유를 고려해 형량을 몇 년까지 깎아줄 수 있는지 묻는 질문의 보기 항목과도 동일하다.


판사들은 “디지털 성범죄 중에서도 성착취 영상과 관련된 것은 더 심각한 가해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동에 대한 현실 공간에서의 성착취 및 가상공간에서의 영상 범죄가 피해자에게 가하는 피해의 정도를 고려할 때 보기로 제시된 양형의 범위가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음란물 제작과 판매, 배포, 소지가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디지털 성범죄 특성을 고려했을 때 제작과 그 밖의 범행 간 양형 격차가 지나치게 큰 점도 지적했다.


이들은 설문지에서 형량 ‘감경사유’로 아동 피해자의 처벌 불원이나 의사능력 있는 피해 아동의 승낙 등이 포함된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법관들은 “아동·청소년의 경우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서도 보호될 필요가 있고, 중범죄에서 처벌불원 의사를 감경요소로 고려해야 하는지 수년간 문제제기가 있어 온 점을 고려할 때 처벌불원을 대표적인 특별감경인자로 설정하는 것은 적절한지 의문”이라 비판했다. 또 “아동은 취약자로서 연장자의 말에 복종하기 쉽고, 아주 낮은 수준의 유인과 협박에 의해서도 성 착취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성착취에 있어 승낙이나 계약이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은 노예제에서나 용인될 법한 시각”이라고도 주장했다. 그러면서 해당 범죄 피해자의 특성을 심도 깊게 조사해 설문을 다시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형사정책연구원 장다혜 부연구위원은 “그간의 판례에 따라 양형 구간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낮은 형량을 선고해 온 양형 관행을 반영한 것”이라며 “(대법원이) 과거 양형을 반영할 것이 아니라 사회 변화에 맞게 적절한 형벌을 집행하도록 실효성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설문자료 결과는 분석 중이고, (질문) 내용과 관련해 위원회가 열리기 전 공개할 수 있는 바는 없다”고 전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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