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localCode=krcn&contentsId=GC05301962


노하심 고분군 (老河深 古墳群)


중문 : 老河深墓群

지역 : 길림성 장춘시 유수시 대파진 후강촌 노하심둔 남쪽.  44°32'12"N 126°25'36"E

크기 : 약 5,000㎡



정의


길림성(吉林省) 장춘시(長春市) 유수시(榆樹市) 대파진(大坡鎭) 후강촌(后崗村) 노하심둔(老河深屯)에 있는 부여 시대의 고분군.



위치


노하심 고분은 유수시 대파진 후강촌노하심둔 남강에 위치하며, 서쪽으로 400m 거리에 제2 송화강(松花江)이 흐르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넓은 평원이 형성되어 있다. 남쪽으로는 2.5㎞ 거리에 황어권(黃魚圈) 유적이 위치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노하심 고분군은 1978년 마을 주민이 취토(取土)하는 과정에서 처음 발견되어 1980〜1981년 정식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3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는데, 하층은 서단산(西團山) 문화층, 중층은 부여(夫餘) 문화층, 상층은 말갈(靺鞨) 문화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형태


노하심 고분군의 하층에서는 서단산 문화 주거지 2기가 확인되었다. 주거지는 말각 장방형의 수혈식(竪穴式) 주거지로 바닥과 네 벽면을 불다짐을 하고 있으며, 주거지 내부에서 노지와 주공이 확인된다.


중층에서는 모두 129기의 고분이 조사되었는데, 무덤은 모두 장방형의 수혈 토광묘(土壙墓)로 중복 관계에 있는 무덤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비교적 엄격한 배열 형태를 보이고 있다. 79기의 무덤에 목질(木質) 장구(葬具)가 사용되고 있으나 대부분 부식되어 관인지 곽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관[곽]은 모두 관정을 사용하지 않고, 결구법을 이용하고 있으며, 일부는 관 표면에 붉은색의 칠이 칠해져 있다. 관 바닥에는 갈대·짐승 가죽 혹은 자작나무 껍질 등이 깔려 있다. 매장 방식은 모두 앙신직지의 일차장이고, 장법은 단인장·양인동혈합장(兩人同穴合葬)·양인이혈합장(兩人異穴合葬)·삼인이혈합장(三人異穴合葬) 등이 보인다. 일부 잔존한 관재에 약간의 소성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상층에서는 말갈 무덤 37기가 조사되었는데, 대부분 유적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무덤은 석관묘 7기, 목관묘 7기, 토광묘 23기이며, 대부분 단인장이며, 소수의 이인장(二人葬) 혹은 삼인장(三人葬)이 보인다. 그밖에 6기는 화장묘이다.



출토유물


노하심 고분의 하층에서 출토된 유물 중 완형(碗形)은 토기 8점, 석기 2점이며, 나머지는 모두 잔편이다. 석기는 석부(石斧)와 환상기 두 종류이며, 모두 마제(磨製)이다. 토기는 모두 수제(手製)에 무문(無文)으로 주요 기형으로는 정(鼎), 관(罐), 완(碗) 등이 있으며, 그 중 삼족기(三足器)가 가장 많이 보인다. 이밖에도 소량의 토제 가락바퀴도 출토되었다.


중층에서는 모두 4,2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용도에 따라 생활 용구·무기류·생산 도구·거마구·장신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생활 용구는 모두 1,093점으로 이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토기로 모두 114기의 무덤에서 출토되었으며, 종류로는 관·호(壺)·두(豆)·배(杯)·반(盤)·완·충(盅) 등이 있다.


이밖에도 소량의 동복(銅鍑)·동경(銅鏡)·동대구(銅帶鉤)·대잡(帶卡)·환(環)·동포(銅泡)·소철도(小鐵刀)·철추(鐵錐)·동전(銅錢) 등이 출토되었다. 무기류는 43기에서 212점이 출토되었으며, 종류로는 검·도·창·화살촉·화살통·투구·갑옷·호심경(護心鏡) 등이 있다.


생산 공구는 33기에서 65점이 출토되었으며, 종류로는 낫·가래·괭이·끌·숫돌 등이 있다. 거마구는 24기에서 117점이 출토되었으며, 종류로는 표(鑣)·함(銜)·차세(車轊)·장식품 등이 있다. 장신구는 97기의 무덤에서 확인되며, 수량이 가장 많다.


종류로는 금은 귀걸이, 골진(骨瑱), 유리진(琉璃瑱), 마노주, 구슬류, 동팔찌, 은·동완식(銀·銅腕飾), 금·은 반지, 신수패식(神獸牌飾), 호문패식(虎紋牌飾), 녹문패식(鹿紋牌飾), 화초문패식(花草紋牌飾) 등이 있다.


상층에서는 18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대다수가 조잡한 형태의 소형 생활 용기와 무기류이다. 토기는 모두 54점이 출토되었는데, 관이 52점, 완이 2점이다. 철기는 모두 105점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심하게 부식되어 있다.


종류로는 철도, 철촉, 철대잡, 철갑옷편, 가위 형태의 철기, 철환 등이 있으며, 청동기는 모두 8점으로 동대잡, 동포식, 동식건, 동천, 동환, 동전 등이 있으며, 은으로 제작된 팔찌와 귀걸이가 있다. 이밖에도 옥이나 마노, 유리 등으로 제작된 장신구와 석기 등이 있다.



현황


노하심 고분군 유적은 2010년 발굴 당시에 만들어진 트렌치가 깊은 웅덩이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발굴 당시에 쌓아 놓은 퇴적토가 높게 쌓여 있다. 발굴지 주변은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노하심 유적은 처음으로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된 부여 유적으로 부여의 묘제(墓制)와 문화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더불어 동북 지역과 한반도에 북방 초원 지역의 문화가 어떻게 전파되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참고문


吉林省 文物 考古 硏究所 編, 『楡樹老河深』(1987)

박양진,「묘장 자료의 사회적 분석과 유수노하심 묘지의 일고찰」(『한국 상고사 학보』29, 1988)

오영찬,「유수노하심 유적을 통해 본 부여 사회」(『한반도와 중국 동북 3성의 역사문화』, 서울대 출판부, 1999)

이종수,「무덤의 변화 양상을 통해 본 부여사 전개 과정 고찰」(『선사와 고대』30집, 2009)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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