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080741001&code=940100


통진당 제소 기획한 법원행정처…“쓸데없는 짓, 뻘짓이라고 생각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입력 : 2020.07.08 07:41 수정 : 2020.07.08 08:30


“저 문건을 받고는 요즘 하는 말로 ‘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렇게 하면 원고 패소입니다. 저걸 가지고 탄압이니 뭐니 (검사가) 질문을 해서 저는 굉장히 당혹스러웠고요. (…) (문건 내용이) 흔히 하는 말로 ‘쓸데없는 짓’, 속된 말로 ‘뻘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진만 전 판사(현 변호사)가 격한 단어를 써가며 말했다. 그가 ‘쓸데없는 짓’, ‘뻘짓’이라고 표현한 문건은 <통진당 지역구 지방의원 대책 검토(내부용·대외비)>다. 2015년 2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심의관이었던 김종복 전 판사(현 변호사)가 작성했다. 당시 이 전 판사는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내의 출입구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내의 출입구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 문건은 2018년 5월 대법원 특별조사단이 사법농단 사건 조사결과와 함께 공개하면서 논란이 됐다. 문건에는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에도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던 지방의회의원들의 직을 상실시키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들로 하여금 행정소송을 제기하게 하는 방안이 담겨있다. 소송의 종류·청구취지·청구이유 등 구체적인 제소 방법까지 기재돼있다. 소송의 양 당사자 중 누구 말이 맞는지를 판단하는 게 법원의 역할인데, 법원행정처가 일방 당사자의 제소 유도를 검토한 것이다.


특별조사단은 “대단히 부적절한 문건들”이라며 “상고법원 입법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통진당의 재창당 움직임 견제 방안을 청와대에 제시함으로써 청와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준비를 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검찰은 수사 끝에 이 문건 작성 지시에 형법상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임 전 차장을 기소했다.


문건 작성 경위를 놓고 말들이 조금씩 엇갈린다.


이 전 판사는 임 전 차장에게 검토 지시를 받고 김 전 판사에게 전달해 문건이 만들어졌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임 전 차장에게 들은 말 전체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불일치’라는 단어는 기억난다고 했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 뒤 국회의원과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은 의원직이 상실됐는데, 지역구 지방의회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하는 ‘불일치’가 있어 검토해보라는 말을 임 전 차장에게 들었다는 게 이 전 판사의 증언 취지다.


통진당 제소 기획한 법원행정처…“쓸데없는 짓, 뻘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건 내용은 불일치에 대한 단순한 상황 보고가 아니라,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제소’하는 구체적인 대안을 포함한다. ‘제소’ 방안은 누가 꺼낸 것일까. 검사가 물었다.


“불일치하는 상태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지역구 지방의회의원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게 만드는 방안을 김종복에게 제시한 사람이 누구인가요?”(검사)


“그건 모르겠습니다. 저는 (김종복에게 검토를) 부탁하고 (인사발령 때문에) 떠났습니다. 그리고 잊어버리고 있었죠. 나중에 (임 전 차장에게) 전화를 받고 김종복에게 (문건 작성을) 빨리 좀 했으면 한다고 전달한 게 아닌가 싶은데. 기본적으로 제가 담당한, 주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억이 잘 안납니다.”(이 전 판사)


반면 김 전 판사는 검찰 조사 등에서 이 전 판사로부터 제소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이 전 판사는 “기억이 없다”고 했다. 문건이 만들어지기 전 이 전 판사는 김 전 판사에게 자치단체장 명단과 소속 정당 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이 현황자료는 문건에도 첨부됐지만 이 전 판사는 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임 전 차장이 제소 방안을 꺼낸 것은 아니지 아니지 않느냐는 임 전 차장 측 변호인 질문에 대해서도 그는 “저도 기억이 잘 없어 힘들었다”고 했다.


<통진당 지역구 지방의회의원 상대 제소>라는 제목의 2쪽짜리 요악 문건도 있다. 검찰은 요약 문건은 법원 바깥의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본다. 문건 내용이 삼권분립에 반하고 헌법 위반에 해당할 여지가 있는데 사법부 외부에 전달되는 게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고 검사가 물었다.


이 전 판사는 “제소한다고 해서 원고가 승소한다는 게 아니었다”며 “‘에라, 질 텐데’ 이런 생각은 할 수도 있었겠지만 (통진당을) 탄압한다, 이런 생각은 안했다”고 했다. 문건 내용은 허황된 것이라는 말이다.


이 전 판사는 자신은 문건에 관심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임 전 차장의 지시사항을 김 전 판사에게 알려주고 김 전 판사가 작성한 문건을 임 전 차장에게 보내준 ‘전달자’에 불과했다고 했다. ‘불일치’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당시 스스로 생각했는지에 관해 이 전 판사는 “저는 그런 생각도 안했고 (인사발령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통진당 제소 기획한 법원행정처…“쓸데없는 짓, 뻘짓이라고 생각했다”


임 전 차장 측은 김 전 판사가 문건 내용에 대한 우려를 표해 임 전 차장이 공감하고 결과적으로 문건을 ‘킬’했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된다는 입장이다. 김 전 판사는 “임 전 차장에게 대면보고를 할 당시 이게(문건이 외부로) 알려지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한다. 논리의 일관성을 맞춘다는 게 실제 소송에서는 별로 의미도 없는데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고 한다. 임 전 차장 측 변호인은 “임 전 차장이 적극적 목적의식을 갖고 있었고, 그런 관점에서 문건 작성을 지시했던 것이라면 김종복의 반대의견에 반박하거나 재검토 지시를 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이 전 판사는 통진당 행정소송과 관련해 ‘소 각하는 부적절’이라는 내용이 담긴 법원행정처 문건 작성에도 참여했다. 문건 작성에 참여한 판사들 중 최선임이었고 팀장 역할을 했다.


이 전 판사는 이 문건은 각하·기각·인용 등 가능한 모든 결론을 분석한 것이지, 특정 결론을 도출하는 내용이 아니라고 했다. ‘소 각하는 부적절’이라는 말은 국가를 상대로 하는 행정소송에서 국민의 권익 구제를 위해 각하는 지양돼야 한다는 이론적 근거가 있다고 했다. 문건 작성에 참여한 이은상 전 판사(현 교수)는 증인으로 나와 “이 전 판사가 ‘가상의 주심 판사가 된 것처럼 모든 상정 가능한 방안에 대해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통진당 행정소송을 통해 헌재와의 관계에서 법원 위상을 강화할 수 있던 상황에서, 법원행정처는 이 문건을 일선 법원에 전달돼 재판 개입 의혹을 받았다. 이 전 판사는 “저 문건은 누가보더라도 김종복의 과한 표현이 담겨있기 때문에 (일선 법원에) 전달될 수 없는 문건”이라며 “저는 행정처 내부 문건이라고 분명히 이야기했다, 내부 문건이라고. 문건을 봐도 그렇다. 저것이 그대로 나간다는 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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